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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07 Archives

August 28, 2007

Ratcatcher

2-ratcatcher.jpg

Ratcatcher(1999)

Director : Lynne Ramsay
Cast :
William Eadie ... James
Tommy Flanagan ... Da
Mandy Matthews ... Ma
Leanne Mullen ... Margaret Anne


햇살이 부드럽게 드는 창가. 한 아이가 창가에 늘어진 반투명한 커튼 속에서 몸을 빙빙 돌리며 커튼을 몸에 휘감고 있다. 슬로우 모션으로 잡힌 아이의 동작은 부드러운 햇살과 어우러져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뜻하지 않게 마주친 이 인상적인 오프닝에 한참 취해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소년의 뒷통수를 팍 때리면서 영화는 급격하게 현실로 튕겨지듯 돌아온다. 아니 이런, 덩달아 나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갑자기 정신이 확 든다.

스코틀랜드의 신예 여성 감독 Lynne Ramsay의 첫 장편영화 Ratcatcher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쩌면 이 첫 장면만으로도 영화의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년의 천진난만함과 반투명한 커튼을 통해 보이는 몽환적 세계가 불쑥 튀어나온 손 같은 거친 현실에 깨어지는 모습 말이다. 이 첫 장면부터 이미 암울한 결말을 예상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 강렬함은 관객을 영화 속으로 빨아들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소년의 이름은 라이언. 커튼 뒤 세계에서 엄마 손에 끌려나와 (아마도 이혼하여 따로 살고 있는 듯한) 아빠를 만나러 가야 한다. 하지만 이를 원치 않는 라이언은 창문 너머로 운하 옆에서 놀고 있는 제임스를 보고 몰래 도망쳐 제임스에게로 달려간다. 운하 옆에서 서로 밀치고 진흙을 던지며 노는 아이들. 그러던 그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과격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물 속에 라이언의 엎드린 몸이 둥실 떠 있고 제임스는 이를 망연자실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도망친다.

이 죽음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베이스라인이 된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서 라이언의 죽음은 사고로 간주되지만, 우리는 제임스가 라이언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기서 묘한 긴장감이 형성된다. 사고사로 알려진만큼 라이언의 죽음은 영화에서 재빨리 잊혀지는데, 나를 당혹스럽게 했던건 제임스 역시 금새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비록 사고이긴 했지만, 친구를 죽였다는 사실이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걸까? 이 묵직한 불편함은 영화 내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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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쨌거나, (내가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감독이 이끄는대로 제임스의 일상으로 돌아가보자. 영화의 배경이 되는 70년대 글래스고우의 한 아파트촌(아마도 저소득층을 위한)의 풍광은 스코틀랜드의 잿빛 하늘만큼이나 우중충하다. 건물 옆으로는 오염되어 짙은 녹색을 띈 운하가 자리잡고 있고, 쓰레기 수거인들의 파업으로 몇 주째 치워지지 않은 검은색 쓰레기 봉지가 여기 저기 쌓여 있다. 그리고, 하늘만큼이나 어두운 사람들. 가난에 쫓겨, 세상에 치여 사는 아파트 주민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피로감이 가득하다.

이 배경은 고스란히 이 지역의 아이들이 그 안에서 뛰놀며 지내는 환경이다. 어른들이 일을 하러 나간 동안(혹은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동안) 아이들은 운하 주위를 어슬렁거리거나, 시멘트 도로 위에서 뛰놀거나, 아니면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쥐를 잡으며 시간을 보낸다. 좀 더 나이가 든 아이들은 슬슬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을 괴롭히고, 여자아이들을 희롱한다. 이게 제임스가 속해 있는 세계이다. 친구의 죽음을 차치하고도, 그의 세계는 이미 턱없이 암울하고 팍팍해 보인다.

가족이라고 별다른 위안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제임스의 엄마는 강하다. 자식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이유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조차 크게 안아 보듬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고 강하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월세를 내지 못해 관리인이 찾아오자 테이블 밑으로 숨을 수밖에 없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그녀에게, 매일밤 늦게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잠드는 그녀에게 제임스는 마음껏 기댈 수가 없다. 거기에 그저 매일 술이나 마시며 축구경기에나 열광하는 아빠, 비밀스런 외출에 몰두하는 누나, 그리고 고자질쟁이 얄미운 동생 등 가족은 소년에게 피난처라기보다 또 다른 전장에 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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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임스에게 위안이 되어 주는 존재는 친구 마가렛-앤이다. 제임스보다 나이가 많은 마가렛-앤은 아마도 제임스에게 기댈 수 있는 엄마를 대신할 존재였을 것이다. 제임스의 아빠가 불량배들에게 상처를 입고 돌아와 엄마를 때릴 때 제임스가 집을 뛰쳐나가 찾아간 곳은 마가렛의 집이었다. 동네 불량스러운 아이들에게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으로 시달리고 있는 마가렛-앤 역시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대하지 않는 제임스에게 의지한다. 마가렛의 집 욕조에서 둘이 들어앉아 서로를 씻겨주며 장난치는 장면은 (역설적으로 노출이 가장 심한 장면임에도) 이 영화에서 첫 장면인 커튼 신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천진난만한 유년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욕조'가 제임스에게 가지는 의미는 유별나다. 제임스가 언제나 바라는 소원 중 하나는 욕조가 달린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다. 욕조가 없어 부엌 바닥에 통을 놓고 목욕을 해야하고, 식구수에 비해 턱없이 좁아 서로 끊임없이 부딛혀야 하는 제임스네 가족은 정부에 넓은 주택을 배정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그래서, 집안 분위기가 좋아질 때면 제임스가 으례 묻곤 하는 말도 이거다. "그럼 우리 이제 욕조 달린 화장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가는거야?" 아마도 이 표현은 가난에서 벗어나는게 어떤건지에 대해 아이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일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 소박한 소망은 실현되지 못한다.

대신, 충족되지 않는 모성에의 갈망을 마가렛에게서 찾는 것처럼, 제임스는 버스를 타고 무작정 나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아직 건축 중인 빈 집에서 이 소망을 간접적으로 충족시킨다. 큰 밀밭에 접해 있고, 방이 세 개에 욕조가 달린 화장실이 있는 집. 그 집에서 제임스는 그저 빈 욕조 안에 드러누워 보고, 변기에다가 소변을 보고, 집 밖의 밀밭을 힘껏 달리다 덤불 속으로 몸을 던지곤 할 뿐이다. 낯선 장소에서 이 평범한 일상을 반복하는 모습은 담담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얼마나 이런 환경을 간절히 원하는지를 절절히 보여준다. 때문에 밀밭을 달리는 제임스의 밝은 표정에서 거꾸로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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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게 믿어버린다고 정말 현실이 그렇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제임스의 아빠가 쥐를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고도 쥐가 바다로 갔다고 말한다고 정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며, 친구 케니가 풍선에 쥐를 매달아 날려보내고 달나라에 가서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고 정말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단지 그렇게 상처를 피할 뿐이다. 외피를 두르듯 거짓으로 자신을 감싸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비껴간다. 그게 어른의 방식이다. 제임스가 아빠 몰래 담배를 빨아보고 맥주를 홀짝거리는 까닭도, 그렇게 쉬이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어른이 되고 싶기 때문일거다. 어쩌면, 드러나게 표현한 적은 없지만 어쩌면, 라이언의 죽음도 그렇게 덮으며 살려는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제임스가 애써 외면했던 현실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리고, 애써 비껴 가던 현실이 갑자기 제임스를 조여 오기 시작하는건 케니의 방아쇠 같은 한 마디 때문이었다. 풍선에 매달아 날려보낸 쥐가 잘 살고 있을지 물어오는 케니에게 제임스는 신경질적으로 답한다. 그리고 맞받아치는 케니.

"케니, 니가 쥐를 죽인거야"
"너도 라이언을 죽였잖아"

그랬다. 마가렛은 여전히 동네 불량배들에게 희롱을 당하고 있고, 가족이 새 집으로 이사가는건 요원해 보이기만 한다. 외곽에 있던 빈 집은 문이 잠겨 더 이상 들어가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제임스가 할 수 있는건 아무 것도 없다. 조사위원을 엉망인 집 안으로 들였다는 이유로 아빠는 "우리가 집을 못 구하면 그건 네 잘못이야"라고 소리치고, 도움을 청하는 마가렛의 절망적인 눈빛을 보면서도 어찌 하지 못한다. 불량배들이 운하에 던져버린 마가렛의 안경조차 꺼내 줄 수가 없다. 지쳐 잠든 엄마를 바라보면서 구멍난 스타킹 사이로 삐져나온 발가락을 덮어주는 것 외에는 해 줄 수 있는게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나는. 라이언을. 죽였다.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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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atcatcher는 불가피하게 (가장 유명한 쥐잡이인)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떠올리게 한다. 사나이는 피리 소리로 쥐들을 물 속으로 이끌어 빠져 죽게 했고, 아이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영화 말미에, 쓰레기 수거인들의 파업이 끝나고 군대가 동원되어 주거단지 내의 쓰레기 봉투들을 수거해간다. 그렇게 깨끗하게 치워진 거리는 묘하게 텅 빈 느낌을 주는데, 거리에는 뛰어놀던 아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쥐들도 사라지고, 아이들도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에겐 그 빈 자리만큼 큰 질문이 남는다. 그럼 쥐잡이는 누구였을까. 누가 쥐들을, 아이들을 물 속으로 내밀었는가.

물 속으로 가라앉는 제임스의 모습이 스치고 갑자기 화면은 밀밭을 가로질러 새 집으로 이사가는 제임스 가족의 모습으로 바뀐다. 얼굴 가득 웃을을 띈 채 이사짐을 들고 뒤따르는 제임스의 모습도 보인다. 이건 죽어가는 제임스의 환상일까, 아니면 실제 벌어지는 일일까. 선택의 당신의 몫이다. 그렇게 믿을 수도 있다. 모든게 잘 될 거라고, 결국 행복한 결말이 올 거라고. 피리 부는 사나이의 달콤한 피리 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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