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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et Bl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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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et Blvd.(1950)

감독 : Billy Wilder
주연 : William Holden (Joe Gillis)
Gloria Swanson (Norma Desmond)
Erich von Stroheim (Max von Mayerling)


0. Synopsis

헐리웃의 3류 시나리오 작가인 조는 시나리오가 팔리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몇개월째 자동차 할부금을 갚지 못하자 조의 차를 압류하기 위해 해결사(?)들이 찾아와 그를 닥달하고, 그들을 피해 달아나던 조는 우연히 Sunset 대로에 있는 어느 외딴 저택 안으로 도망친다. 버려진 고성 같은 그 저택에는 왕년의 무성영화 스타였던 노마 데스몬드와 그의 집사 맥스가 살고 있었다. 잊혀진 옛 스타인 노마는 과거에 벌어들인 돈으로 그 저택에 칩거해 호사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었지만,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계에 화려하게 복귀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던 조는 그녀의 시나리오를 손봐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노마 역시 이를 받아들여 그를 자신의 저택에 (강제로) 머무르게 한다.

노마 데스몬드. 그녀는 20년대 무성영화의 전성기를 풍미한 여배우였지만, 이제는 늙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혀진 존재였다. 하지만 노마 자신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헐리웃에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 자신에게 노마 데스몬드라는 이름은 스타 그 자체였으며, 스타는 영원히 질 수 없는 별이었던 것이다. 노마의 망상과 그에 따른 독선적인 행동은 조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지만, 조는 이내 노마의 집에서 누릴 수 있는 사치스러운 삶에 빠져든다.

그러나, 조가 자신에게 향하는 노마의 호의가 심상치 않다는걸 느끼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노마의 저택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파티가 열리는날, 조는 그 날의 파티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준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당연한 듯 자신의 연인인 것처럼 행동하는 노마를 뿌리치고 조는 도망치듯 저택을 빠져나오고, 자신의 오랜 친구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친구의 약혼녀이자 자신의 시나리오를 퇴짜놓은 당사자인 베티와 다시 만난다. 하지만 이 탈출(?)도 잠시, 자신의 짐을 챙겨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노마의 집사인 맥스에게 전화를 건 조는, 노마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그녀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침대에서 흐느끼는 노마 앞에서 그는 호사스러운 삶을 보장해주는 그녀의 정부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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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기도한 노마와 그녀의 상처를 바라보는 조

한동안 조와 노마의 생활은 평온했다. 조는 그저 노마 곁에 머무르는 것만으로 경제적 근심 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고, 노마는 조의 존재로 인해 마음의 안정을 찾고 본격적으로 영화계로의 복귀를 준비한다. 명망있는 현역 감독이자 과거 노마 자신을 무척 아껴줬던 세밀 B. 드밀 감독에게 자신의 시나리오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드밀로부터 답신이 없자 노마는 점점 초조해하는데, 어느날 드디어 영화사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드밀 감독이 직접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노마는 전화받기를 거절하고, 다시 연락이 없자 직접 드밀 감독을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드밀을 만나러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스튜디오로 찾아간 노마는, 거기서 자신을 기억하는 수위와 조명기사, 그리고 옛 스타를 기억하는 젊은 배우들에 둘러싸여 자신이 여전히 인기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한편 드밀은 왜 직접 자기에게 전화하지 않았냐는 노마의 질문에 당황해하는데, 사실 드밀은 노마의 시나리오를 제대로 읽지도 않았고 따라서 노마에게 연락하라고 누구에게 시킨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적당히 둘러댄 드밀은 몰래 사람을 시켜 누가 노마에게 연락을 했는지 알아오게 한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른 감독으로 실은 노마의 오래된 골동품 차를 빌리기 위한 것이었고, 밖에서 기다리던 맥스와 조 역시 지나가던 스텝들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노마를 실망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노마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한편, 노마가 드밀을 만나는 동안 조는 영화사에서 일하는 베티를 우연히 만난다. 그녀의 사무실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동안, 베티는 과거 자신이 퇴짜놓았던 조의 시나리오 중에서 아이디어는 괜찮은 스토리가 있다며 자신과 함께 시나리오를 새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베티 역시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것보다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하는 작가 지망생이었기 때문이다. 조는 몇 번을 거절하지만 베티의 집요한 부탁에 승낙하게 된다.

그날 밤부터 조는 노마 몰래 집을 빠져나가 밤새 베티의 사무실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한다. 조는 노마와의 삶에서 빼앗겼던 창작의 자유에 깊이 빠져들지만, 편집증적인 노마의 눈을 계속 속일 수는 없었다. 어느날 밤 집을 빠져나가던 조의 앞을 집사 맥스가 막아선다. 맥스는 노마가 불안해하고 있다며 조에게 경고를 하는데, 조와 맥스가 말싸움을 하던 중 맥스가 바로 노마의 전성기를 이끈 감독이자 그녀의 첫 남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맥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조는 계속 밤마다 베티의 작업실에서 밤새 작업을 한다. 그리고 베티와 조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지만, 조는 노마의 정부로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를 차마 베티에게 털어놓지는 못한다. 한편, 노마는 조의 방에서 베티와 조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시나리오를 발견하고 그들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한다. 이를 위해 노마는 베티의 방에 익명을 가장해 전화를 걸어 조가 다른 여자의 정부라는 사실을 밝히는데, 그 순간 이를 발견한 조가 노마의 손에서 수화기를 빼았는다. 그리고 조는 베티에게 모든걸 설명하겠으니 노마의 집으로 찾아오라고 말한다.

반신반의하며 노마의 집으로 찾아온 베티. 조는 그녀를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그 집에 노마 데스몬드의 저택이며 자신이 노마에게 빌붙어 사는 정부임을 밝힌다. 그리고 베티에 대한 자신의 감정 역시 거짓이었다고 말하며 베티를 떠나보낸다. 노마는 이런 모습을 보며 기뻐하지만, 베티를 떠나보낸 조는 노마를 무시한 채 묵묵히 자기 방으로 돌아가 짐을 꾸린다. 그리고 노마는 자신의 애원을 뿌리치고 떠나는 조의 등 뒤로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다음날 아침, 경찰과 함께 옛 영화 스타의 살인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몰려든다. 사람들로 어수선한 방 한가운데서 살인 경위를 묻는 경찰의 질문에 노마는 넋이 나간 듯 아무 반응 없이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다듬기만 한다. 그러던 중 한 기자가 뉴스 카메라가 도착했다는 말을 하자, 노마는 맥스에게 드디어 영화 촬영이 시작된다며 얼굴에 화색을 띄며 방 밖으로 나간다. 어떤 씬을 촬영하는지 묻는 노마의 질문에 결연한 표정의 맥스는 그녀에게 공주가 계단을 내려와 왕자를 맞이하는 장면이라 설명을 하고, 자신도 과거로 돌아간 듯 뉴스 카메라 옆에 서서 큐 사인을 보낸다. 할 말을 잃은 채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노마는 무성영화 특유의 과장된 동작으로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카메라를 향해 걸어온다. 그리고 화면 가득 그녀의 모습이 잡히면서 영화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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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 사이를 빠져나와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는 노마. 그로테스크하다.


1. 왜 "Sunset Blvd." 인가?

비단 영화뿐이 아니라, 제목은 대개 어떤 작품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간혹 "무제"라는 제목으로 읽는 이의 참여/해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작가는 제목을 통해 관객에게 작품의 outline을 설정해 준다. 때문에 대체로 영화 제목들은 무난하다. 키워드를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한다던지, 추가적인 서술을 위해 약간 변용한 문구가 제목으로 들어간다.(최근 한국 영화에서 "~~의 ~~" 라는 제목이 많이 보이는데, 키워드를 '간결'하게 '서술'한다는 장점 때문일 것이다).

그럼 "Sunset Blvd."는 뭔가. 영화에서 사건의 발단은 주인공 조가 자동차를 압류하러 온 해결사(?)들을 피해 도망치다가 노마의 저택으로 숨어드는데서 시작되는데, 노마의 저택이 있는 길이 바로 이 Sunset Blvd. 다. 문제는 영화에서 그 이후로 Sunset Blvd. 라는 길 이름이 언급되는 일은 거의 없다는거다.(마지막에 베티에게 노마의 집 주소를 불러줄 때 정도?) 그렇다면 왜 감독은 하필이면 길 이름을 따서 영화 제목을 붙였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실제 Sunset Blvd.는 LA의 Beverly Hills 앞을 지나 Santa Monica Beach로 이어지는 대로의 이름이다. 지금도 이 길을 지나다보면 길 양쪽으로 안쪽을 전혀 들여다볼 수 없도록 나무로 벽을 둘러친 이른바 유명인들의 저택들을 볼 수 있다.(정확히 말하자면, 저택의 '담장'을 볼 수 있다.) 이들 대다수가 보통 수백만불에서 수천만불에 이르는 대저택들인데, 사생활 보호를 명분으로 담장 안 쪽으로 완전히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들을 따라붙는 수많은 파파라치들을 고려하더라도, 이 곳은 뭔가 기교한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담장 안의 삶이 얼마나 화려할지 몰라도, 겉에서 보기에는 스스로를 바깥 세계와 단절시켜 유폐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 노마 데스몬드가 살고 있었다. 저 담장들 뒤 어딘가에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여왕으로 군림하는 그녀가 있다해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동네, 그 곳이 바로 Sunset Blvd.다. 그리고 그 이름를 그저 영화의 배경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제목으로 내세움으로 해서, 감독은 이 영화가 노마 데스몬드라는 어느 개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거리에 사는 누군가 혹은 누군가들에 관한 영화임을 슬쩍 암시한다. 마치 자기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따라 웃는 사람에게, 차마 쿡 찌르면서 "웃긴.. 이거 니 얘기거든?" 이라고 말해줄 수 없을 때 쓰는 의뭉스러운 농담처럼.


2. Norma Desmond 혹은 Gloria Swa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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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와 조. 뒤쪽의 사진이 젋은 시절의 노마 데스몬드, 즉 Gloria Swanson 이다.

노마 데스몬드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보이는 Gloria Swanson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950년에 Sunset Blvd.를 촬영하기 전에 그녀가 찍은 영화의 수는 무려 65편에 달한다. 1920년대는 그야말로 전성기였는데, 1년에 보통 6~7편의 영화를 찍은 걸로 나온다. 하지만 1930년대에 이르면 영화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1933년, 1934년, 1941년 한 편씩의 영화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활동을 중지한다. 그리고 1950년, 바로 이 영화 Sunset Blvd. 에서 흘러간 옛 스타 역을 맡으며 10년만에 헐리웃에 복귀한다.

다시 말해, Gloria Swanson은 노마 데스몬드와 너무나도 겹친다. 그녀 자신이 바로 과거의 무성 영화 스타였으며, 이제는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배우였다. 촬영 당시 53세였던 Gloria는 50세의 노마를 연기했다. 노마 데스몬드는 바로 Gloria Swanson 자신의 패러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녀는 역사상 최초로 자기 자신을 패러디한 배우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도 이 영화는 남다른 의미를 가졌나보다. 빌리 와일더 감독이 마지막 신의 컷을 외쳤을 때 Gloria Swanson은 울음을 터뜨렸고, 촬영 쫑파티(?)에서 그녀는 아래와 같은 말로 자축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매우 위대한 순간에 있습니다. 노마 데스먼드가 마침내 작별 인사를 고한 거예요.

그리고, 의미심장하게도, Gloria Swanson의 다음 작품은 TV 드라마가 된다.


3. 화려했던 시절은 가고

그런데, 영화에서 흘러간 옛 영광을 상징하는건 노마라는 캐릭터만이 아니다. 노마의 집사인 맥스 역을 맡은 Erich von Stroheim은 20년대 전성기를 보낸 감독이었다. 노마가 집에서 자신의 옛 영화를 돌려보며 자아도취에 젖을 때, 맥스가 영사기를 돌리는 옛 영화가 바로 Erich von Stroheim이 감독하고 Gloria Swanson이 주연한 "여왕 켈리"다. 그리고, 노마의 집에 가끔 찾아와 브리지 게임을 즐기는 손님들 중 "유령같이 창백한 얼굴에 뻣뻣하게 굳은" 말라깽이 신사는 다름아닌 코미디 영화의 대부인 버스터 키튼이다. 도대체 이게 다 뭔가? 영화 안과 밖을 이렇게 뒤섞어 놓으면서 빌리 와일더가 하고 싶은 말이 뭐란 말인가.

본명으로 출연하는 세실 드밀 감독은 촬영장에 찾아온 노마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잠시 앉아 촬영하는거 구경이라도 하고 있게나. 요즘은 영화 만드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거든"

물론 노마가 무성 영화 스타였기 때문에, 이 말은 유성 영화로의 이동을 뜻할 수도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노마가 자신의 머리 장식을 치고 지나가는 마이크를 보고, 그게 뭔지 몰라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1950년)가 미국 영화사의 중대한 대변화가 발생한 때라는거다.

1948년, 미 연방대법원은 메이져 스튜디오들이 극장 체인을 소유하는 것이 독과점에 해당한다는 이른바 "파라마운트 판결"을 내린다. 이 판결은 20세기 폭스, 유니버셜, 콜럼비아 등과 같은 메이져 스튜디오들이 막대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영화 제작에서 배급, 상영까지를 수직적으로 연결해 운영하던 "스튜디오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했다. 자신들이 만든 영화의 상영을 보장하던 극장을 잃음으로써 메이져 스튜디오들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줄어든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때마침 전국적으로 보급된 TV가 영화의 영역을 크게 잠식해 들어오면서 더 이상 과거의 거대한 스튜디오 시스템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결국 메이져 영화사들은 영화 제작에서 손을 떼고 배급에 주력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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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파라마운트사 스튜디오 입구.

물론 스튜디오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는 것은 이 영화가 개봉되고 몇 년 후의 일이다. 하지만 변화의 바람은 이미 불어오고 있었다. 스튜디오 시스템이 흔들리면서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은 스타들과 감독들이었다. 각 스튜디오에 전속으로 소속되어 얼굴마담 역을 했던 스타들은, 홍보부터 시작해 모든 분야에서 뒤를 받쳐주던 스튜디오가 사라지면서 오직 자신의 능력만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경쟁에 내몰리게 된다. 감독들 역시 마찬가지의 상황에 처하는데, 스튜디오 시스템 내에서 시스템이 요구하는 영화를 그저 찍어내기만 했던 시대가 가고 자신의 개성을 확실히 살려 대중에게 직접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옛 영광을 잃어가고 있는건 바로 영화 산업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빌리 와일더는 스튜디오 시스템의 총아이면서도, 포스트 스튜디오 시스템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몇 안 되는 감독 중 하나였다. 스튜디오 시스템은 획일적인 시스템 속에서 영화를 대량생산하는(이것도 포디즘의 영향일 듯 하다) 방식이었는데, 때문에 감독의 개성은 거의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한 시스템 속에서도 자신의 개성을 확실히 살리는 영화를 만들어내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그였기에, 변화의 바람을 누구보다 먼저 잡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 "Sunset Blvd."는 아직도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고 있는 헐리웃에게 보내는 빌리 와일더의 경고의 메세지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빌리 와일더의 태도는 거만함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는 주인공 조의 시체가 풀장에 둥둥 떠 다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은 자신의 시체를 보면서 "그렇게 풀장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하더니 결국 풀장에서 죽었군. 꼴 좋다"며 조소한다. 이와 같은 자조적인 톤과 죽은 이의 회상이라는 설정은 영화의 분위기 전체를 이끈다. 이 우울한 냉소야말로 빌리 와일더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바로 스튜디오 시스템의 적자였으며, 그 시스템에 정부처럼 빌붙어 왔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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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장에 빠져 죽은 조의 시체를 경찰들이 건져내고 있다.


4. 완성도 높은 수작

물론,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빼 놓고도, 영화는 그 자체로 수작이다. 왠만한 영화 애호가들의 걸작선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이유는 사실 영화의 완성도 덕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느와르 영화에서 이어져온 높은 컨트라스트의 흑백화면은 강렬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을 주고, 주연들의 연기는 캐릭터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진다. 특히 Gloria Swanson의 연기는 전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녀가 아닌 노마 데스몬드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당분간 노마 데스몬드라는 이름을 잊기는 힘들 것 같다.

약간 여담이지만, 옛 영화를 즐기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서의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할 수록, 즉 감독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늘어날수록 이야기의 얼개가 느슨해지는건 정말 아이러니다. 오늘날, 생각하며 볼 수 있는 영화는 극히 드물다. 눈이 즐겁고 신기한 장면이 늘어날수록 머리 속은 하얘지는건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의 영화가 그저 엔터테인먼트일 뿐이라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우리 시대의 빌리 와일더는 어디에 있는걸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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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8)

starmaru:

디자인도 사진도 글도 날로 좋아지네 ^^
'선셋대로'는 뮤지컬이기도 한데, 같은 내용?

수띵:

Thanks. 근데 디자인이야 뭐 남이 만들어놓은거 퍼오는거니 ^^;
뮤지컬과 같은 내용 맞아. 영화가 원작이고 그걸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뮤지컬로 만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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