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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ue An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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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Blaue Engel (1930)

감독 : Josef von Sternberg
주연 : Emil Jannings - Prof. Immanuel Rath
Marlene Dietrich - Lola Lola


Synopsis

김나지움 교수인 Immanuel Rath는 학생들에게 매우 권위적이고 엄격한 교수다. 하지만 그의 권위는 외면적인 것일 뿐, 그의 학생들은 그를 전혀 존경하지 않는다. 어느날 Rath는 학생들이 Lola 라는 쇼걸의 사진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진을 압수한다. 그리고 한 학생으로부터 다른 아이들이 밤마다 Lola가 공연하는 술집 Blue Angel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술집으로 직접 찾아가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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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몰래 보던 Lola의 사진. 바람을 불면
사진에 붙은 깃털이 슬쩍 들려 올라간다.


거기서 Lola를 만난 Rath는 이내 그녀에게 매혹된다. 그는 어리숙하지만 그다운 방법으로 그녀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그녀 역시 자신을 숙녀로 대접하는 Rath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점점 더 Lola 에게 빠져든 Rath는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Lola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비록 교수로서의 지위와 사회적 인정을 포기하고 여기저기 공연을 위해 떠돌아야 했지만, Lola 와의 결혼에서 그는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생계를 위해 계속 쇼걸로 일하는 Lola와 아무런 벌이도 없이 그녀에게 의지해야 하는 Rath의 관계는 이내 역전되고 만다. 그녀의 사진을 사람들에게 팔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결국 술집의 손님들에게 사진을 팔러 다니게되고, 마침내는 직접 삐에로로 분하여 무대에 서게 된다. 그는 자존심의 상처를 입지만 여전히 Lola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전히 벌이가 넉넉치 못한 삶이 계속되는 가운데, 어느날 극단의 단장은 Rath에게 드디어 밥벌이를 할 기회가 왔다는 이야기를 한다. 말인즉, Rath가 떠나온 고향 마을로 돌아가서 공연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돌아온 교수"와 같은 문구로 홍보를 하면 그를 아는 사람들이 많이 보러 올 것이고 쇼는 흥행을 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당연히 Rath는 크게 분노하며 절대 가지 않겠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의 의견은 아무런 힘도 없을 뿐 결국 그는 고향 마을로 가게 된다.

자신의 옛 제자들과 동료 교수들 앞에 삐에로로 분장을 하고 무대에 선 Rath. 그런데 그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Lola가 마을에 있던 떠돌이 연주가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는다. 완전히 망신창이가 된 채 무대에 서 있던 Rath는 Lola가 이 떠돌이 연주가와 지분대는 모습을 보며 마지막 남아 있던 이성마저 잃어버린다. 공연 도중 광분하여 소동을 벌이던 Rath는 구속복을 입고 광에 갖히게 된다. 정신을 차린 후 그는 먼지투성이 외투와 찌그러진 중절모를 걸치고 술집을 빠져나오고, 비틀거리며 자신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김나지움의 교실로 향한다. 그리고, 자신의 권위의 상징이었던 교탁 앞에 선 Rath는 교탁을 움켜쥔 채 쓰러져 숨을 거둔다.


유성 영화 시대가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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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Rath 역의 Emil Jannings(왼쪽)과
Lola 역의 Marlene Dietrich


The Blue Angel(원제 : Der Blaue Engel)은 1930년에 제작된 영화다. 당시는 막 유성 영화가 처음 제작되기 시작한 시기였는데, 이 영화가 바로 독일에서 두번째인가로(확실치 않다 -_-) 제작된 유성 영화라고 한다. 일종의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데, 덕분에 이 영화에서는 무성 영화 시대의 미덕과 유성 영화라는 새로운 기술이 선사하는 매력을 모두 느낄 수 있다.

무성 영화의 미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는 바로 Rath 교수 역을 맡은 Emil Jannings다. 그는 무성 영화 시대부터 유명했던 배우인데, 때문에 대사보다는 연기 자체로 의미 전달을 하는데 능숙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극 중에서 가장 다양하면서도 격렬한 감정의 변화를 표출하는 인물인데, 그의 표정과 행동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도 영화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무대에서 Lola가 부르는 사랑 노래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 생각하며 부끄러워 하면서도 행복해하는 모습은 압권이다.) 아울러, 주위의 소품이 중요한 메타포로 사용되는데, 이것 역시 무성 영화 시대, 아니 정확히는 연극에서부터 이어온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배경이나 모자, 수염 등 어느 하나 허투루 스쳐 넘길 것이 없다.

반면, Lola 역을 맡은 Marlene Dietrich는 전형적인 유성 영화 시대의 스타다. 사실 그녀의 연기는 별로 대단할 것이 없다. 그녀는 시종 별다른 감정의 변화 없이 남자들에게 눈웃음을 흘리고 무대 위에 뻣뻣이 서서 노래를 부를 뿐이다. 그런데, 이 "노래"가 중요하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무성 영화 시대에는 없었던 강력한 무기가 새로 등장을 한 셈인데, 이 무기를 통해 Lola의 캐릭터를 강렬하게 관객들에게 각인을 시킨다. 예컨데, Lola가 부르는 Falling in Love Again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Falling in love again
다시 사랑에 빠지는건
Never wanted to
결코 그러려던건 아니었어요
What am I to do?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Can't help it
어쩔 수가 없어요

Love's always been my game
사랑은 항상 나한테는 게임 같은 것
Play it how I may
내가 하는 것처럼 즐겨요
I was made that way
나는 원래 그런걸요
Can't help it
어쩔 수가 없어요

Men cluster to me like moths around a flame
남자들은 불가의 나방처럼 내게 달려들죠
And if their wings burn, I know I'm not to blame
날개가 불에 탄다해도, 그건 내 탓이 아니에요

오! Femme Fatale 이여

dietrich-blue-angel%284394%29.jpg 공연 중의 Lola

여기서 Lola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어쩌면 Lola는 영화 속 요부(Femme Fatale)의 효시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Rath에 대한 Lola의 감정은 모호하다. 그의 친절에 감사하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지만, 그녀의 태도는 딱히 사랑이라기보단 "오는 남자 사양 않고, 가는 남자 잡지 않는다"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를 지배하며 복종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고, 이 힘이 Rath의 삶을 파멸로 이끈다. 비록 그녀는 자기 탓이 아니라고 노래하지만.

현대의 영화들에서 Femme Fatale은 보통 훨씬 더 적극적인 악역으로 그려진다. 그녀들은 음모를 세우고 미모로 남자들을 엮어 결국 그들을 파멸로 이끈다. 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Lola는 Femme Fatale 이라기엔 다소 모호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Rath를 유혹하지도 않고, 그의 파멸을 부추기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행동하고 게임을 하듯 사랑에 빠질 뿐. 하지만, 거꾸로 보면 현대의 Femme Fatale은 어쩐지 괴기스럽지 않은가. 온 몸으로 덮쳐오는(?) 그녀들보다는 무대 위에서 슬쩍 눈짓을 주며 노래를 부르는 Lola의 매력이야 말로 진정 거부할 수 없는 Femme Fatale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무너져가는 구세계

jann2%281118%29.jpg 삐에로 분장을 한 Rath

하지만, Rath의 몰락을 단지 사랑 때문에 파멸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읽기에는 영화는 너무 많은 부분에서 두 세계의 대립을 보여준다. 영화에는 크게 두 종류의 세계가 등장한다. 하나는 김나지움으로 대표되는 권위와 규율, 시간엄수의 세계고, 다른 하나는 대중들의 천국인 술집 Blue Angel 이다. 이 대립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유럽에서는 아주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일 것이다. 산업 자본주의와 매스 미디어의 발달은 이전 세대는 경험하지 못했던 "대중"이라는 강력한 사회적 집단을 만들어냈고, 이들 대중은 기존의 지배 계급의 권위를 인정치 않고 사회의 새로운 주류 집단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Rath의 비극은 바로 이 권력 이동의 과정에서 밀려나는 구세계의 비극이기도 하다.

예컨데, Rath가 고향 마을로 돌아와 삐에로 분장을 하고 무대에 설 때 객석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 동료 교수들과 대중들이 앉아 있다. 무대 위에 선 Rath의 머리에 마술사가 계란을 부딛혀 깨자, 그의 동료 교수들은 모욕이라며 발끈하지만 대중들(노동자의 복장을 한)은 환호한다. 화를 내던 교수들도 주변의 야유에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대중은 더 이상 기존 지배층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분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대중 문화의 응집체이다. 영화관은 오페라 극장 들과는 달리 노동자와 귀족들이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이 역시 과거의 권위가 무너졌음을 잘 보여주는 현상이었다. 감독은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의 이동처럼, 구세계도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세계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Rath의 비극적인 죽음은 바로 구세계에 대한 엄숙한 사망선고이기도 한 것이다.


낯선 영화에서 고전의 향기를 느끼다

기술적으로만 따지자면, 이 영화는 오늘날의 영화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사실 거의 80년 전 영화다 -_-) 조악하다고도 할 수 있다. 빈약한 조명과 단선적인 편집, 움직임이 거의 없는 카메라 등 오늘날의 "기교"라고 할만한 것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덕분에 플롯의 힘과 배우들의 연기, 세트와 배경의 매력이 담뿍 드러나는 것이 바로 옛 영화의 매력이다. 그리고 이 영화 The Blue Angel은 그 매력들을 찌~인하게 느낄 수 있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웰메이드 영화의 매끈함에 식상해진 당신이라면 꼭 한번 챙겨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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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

starmaru:

스토리라인이 일단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네.
대중과 권위집단, 그 둘 사이의 줄타기랄까.
한 번 보고 싶네. ^^

수띵:

엄..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을 듯 싶구만. 여기 도서관에서 고전영화 DVD 빌려서 복사한 다음에 한국에 가져가 팔까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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