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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4, 2001

Dancer in the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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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Lars von Trier
주연 : Bjork, Catherine Deneuve, David Morse


3분 37초의 어둠과, 은은한 음악. 이 잠시의 어둠에조차 나는 당황했다. 영화관에서 필름을 잘못 건게 아닐까 의심했고, 옆의 사람과 환불 어쩌구하며 농담을 했다. 하지만 실수였다. 그 순간이 중요했다. 그 느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느끼는 음악의 깊이, 그 절박함을 몸에 새겨 두었어야만 했다. 아, 자책하지는 말자. 사실 침묵은 너무나 기습적이라서 그게 영화의 일부분이라고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아쉬웠을 뿐. 대신 지금 이 순간, 불을 끄고, 음악을 다시 음미하자. Overture : Selma를 이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운동으로...

"왜 날 크왈다라고 부르지?"
"그냥, 전 그게 좋아요"

허름한 옷과 헝크러진 머리, 커다란 뿔테 안경. 애써 미소짓는 얼굴 너머로 엿보이는 피곤의 흔적. 가물거리는 눈으로 위험한 프레스기를 더듬듯 일을 하고, 밤이면 종이성냥을 만든다. 시간이 별로 없다. 그녀의 시력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고, 아들의 눈을 고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1년. 그 안에 수술비를 모아야만 한다.

너무나도 힘겨운 현실에서 셀마의 유일한 즐거움은 음악, 특히 뮤지컬이다. 시각을 통한 아름다움을 상실한 그녀에게 청각을 통한 아름다움은 더욱 절실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쓰는 시간은 극히 적다.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 저녁에 있는 마을 극단에서의 뮤지컬 공연 연습과 가끔씩 옛날 뮤지컬 영화를 보러 가는 극장이 전부. 대신, 채 해소되지 못한 현실의 갈증을 그녀는 환상 속의 뮤지컬 공연으로 풀어나간다.

셀마의 일상을 담는 카메라는 약간 거칠게, 끊임없이 흔들린다. 주변의 풍광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는 삭막한 모습. 반면 그녀의 환상 속 뮤지컬 장면은 매우 안정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카메라는 흔들림 없이 다양한 각도에서 셀마의 춤과 노래를 비추어준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던 안경을 벗고 노래를 부르는 셀마의 모습은 너무나도 행복하다. Fantasy.

하지만 이 극명한 대비는 셀마의 현실과 환상 사이의 간극을 의미하는 것. 그렇기에, 결국 환상은 현실의 슬픔을 메우지는 못한다. 아니, 환상은 견딜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반어일 뿐, 그래서 더욱 슬픈 것이다. 자신을 돌보아주는 동료 캐시와 함께 춤을 추고, 어쩔 수 없이 죽인 빌이 다시 살아나고, 어릴적 동경의 대상이었던 뮤지컬 배우 노비와 함께 춤을 추는 것 모두, 그녀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들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셀마는 캐시를 항상 '크왈다'라고 부른다. 후에 병원에 아들의 수술을 등록하면서 '올드리치 노비'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처럼(이를 단지 '위장'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만은 힘들다), 그녀는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뮤지컬 속의 인물로 부르길 좋아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조금이나마 무너뜨리려는 시도일 것이다.

영화의 제목 "Dancer in the Dark"는 바로 이러한 셀마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이 의미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감옥에서이다. 일상의 소음 속에서 리듬을 찾아내던 그녀의 예민한 귀에 감옥의 침묵은 죽음과도 같은 것. 아득히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를 듣기 위해 환기구에 매달려 있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필사적이다. 시각을 상실한 물리적 어둠과, 죽음을 앞둔 사형수라는 정신적 어둠 속에서 그녀에게 유일한 빛은 음악, 음악 뿐인 것이다. 그녀는 홀로 그 어둠 속에서 춤추고, 싸우고 있다.

그런데 이 '어둠'의 의미는 보다 포괄적이다. 그녀가 느끼는 '어둠'이 그녀만의 것이 아닌 탓이다.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면, 셀마를 극단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은 주변의 편견 어린 시선들이다. 빌의 아내는 그녀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위해 자신의 남편을 유혹하고 결국은 죽인 것으로 믿어버린다. 법정에서 검사가 그녀를 추궁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웃음이 나올 정도로 넌센스다. 평소에 그녀가 선의로 건낸 말들이 오히려 그녀에게 칼날이 되어 되돌아 오는 것이 과연 그녀의 순박함 때문으로만 돌려야 하는 것일까? 그녀가 이국인이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녀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미 '어둠'이 존재하고 있다. 결국 그녀를 둘러싼 또 다른 '어둠'은 그녀의 진정한 모습을 가려버린다. 그래서 홀로 외롭게 춤추고 있는 그녀의 아름답고 슬픈 모습은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에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결국 셀마는 이 깊은 어둠 속에서 교수대로 나아간다. 절망과 공포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캐시가 전해 준 것은 아들의 안경. 아들의 수술이 이루어졌음을,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 이루고자 한 것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한 그녀는 마침내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이것은 더 이상 환상이 아니다. 그녀의 얼굴에 묻어나는 행복감은 너무나 아름다워 또 다른 환상이 아닌가 의심케 하지만, 흔들리는 카메라가 이것이 현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현실과 환상이 드디어 일치된 것이다. 그리고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슬픈 춤도 끝이 나고 만다.

당신은 절망을 눈 앞에 두고 얼마나 강인할 수 있는가? 아니, 절망을 뻔히 알면서도 나아갈 수 있는가? 그렇게 해서라도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셀마의 춤이 주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Bjork의 연기와 노래는 이 모든 것을 완벽히 보여주고 있다. 캐시 역을 맡은 카트린 드뇌브가 Bjork의 연기를 두고, "그녀는 연기할 줄을 모른다. 그냥 그 사람이 되어버린다."라고 한 것은 너무나도 적절한 것이리라. Bjork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그리고 Bjork을 위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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