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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09 Archives

February 10, 2009

Day 3 - 2 : Arches National Park

Green River Overlook 을 마지막으로 Canyonland 을 떠나 Arches National Park 으로 향한다. Arches National Park 은 Canyonland National Park 에 바로 인접해 있는데, 자연적으로 생성된 아치(arch)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곳이다. 원래 계획은 이 곳에서 오후를 보내고 캠핑을 한 후 내일 아침 출발하는 것이었는데, 공원 입구에서부터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Campground Full" 인기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오전 11시부터 꽉 찰 줄은 몰랐다. 알고보니 아침 7시 반에 국립공원 문 열자마자 바로 등록이 끝났다고 하니,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거다. -_-

급좌절 모드로 들어갔으나, 그렇다고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숙박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계획된 일정대로는 움직이기로 한다. Information Center 에서 간단한 정보들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공원 안으로 향한다. 마침 일부 도로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차가 밀린다. 좁은 2차선 도로에서 공사를 하려니 한동안 멈췄다가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주차장이 있는 곳마다 들러서 늘어선 기암괴석들을 사진으로 담는다. 어디를 둘러봐도 파란 하늘과 붉은 사암이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흐흐, 대충 카메라 들이대고 찍어도 최소 엽서사진 정도는 나온다.


Three Gossips(수다 3인방)


Courthouse Rock


서유기에 나오는 부처님 손바닥 같지 않은가?


Balanced Rock


Garden of Eden


North Window


North Window 아래에서 올려다 본 모습

하지만, 사진을 찍다보면 하루 중 제대로 건질만한 사진을 얻는 때는 하루 중 두 번 밖에 없다는걸 깨닫게 된다. 해 뜨기 전후, 그리고 해지기 전후. 이유는 빛이다. 알다시피 사진이라는게 어차피 빛을 기록하는 작업인지라, 빛의 질(quality)야말로 좋은 사진을 좌지우지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해뜨기, 해지기 전후의 시간이 좋은 이유는 옆에서 들어오는 사광이 피사체의 입체감을 극대화 해주기 때문. 2차원의 사진에서는 피사체가 얼마나 입체적이냐는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사진 여행을 간 경우 낮 시간에는 대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촬영 장소와 방향을 물색하고 해지기 얼마 전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한다.

사전 조사를 통해, 그리고 Arches National Park 을 돌아다니면서 종합해 본 결과는 역시 일몰 무렵에 Delicate Arch 를 갔다가 내려와서 Balanced Rock 이나 Turret Arch 부근에서 별사진 촬영을 하고 새벽에 다시 Turret Arch 를 촬영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문제는 캠프장을 못 구한 관계로 새벽 촬영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것. 오늘 밤 별사진 촬영하고 나면 꽤 늦을텐데 Moab 까지 가서 숙박 후 다시 새벽같이 올라오는건 무리인 것 같다. 일단은 별사진 촬영까지를 가능한 일정으로 보는게 좋겠다. 저녁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 Arches National Park 구석구석을 천천히 돌아본다. 아쉬운 마음에 둘러본 Devil's Garden 의 캠핑장은 과연 명불허전이다. 아치들 사이에서 묶는 하루밤이라니. 다음에 오게 되면 꼭 저기서 묶어 봐야겠다.


South Window


Turret Arch
보통 사진에 담기는 방향과 반대쪽에서 찍었다.


Fiery Furnace
앞 쪽의 검은 선이 도로고 하얀 점이 RV 차량이다;;


Fiery Furnace 를 가까이서 찍은 모습


Devil's Garden Trail 입구
캠핑장에서는 저런 사암 벽 사이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다.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Skyline Arch. 절반 정도 크기였던 구멍이 어느날 바위가 툭 떨어지면서 2배로 커졌다고 한다.

돌아다니다 보니,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Delicate Arch 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해지는 시각은 7시 25분 경이지만, 산간지방인데다 올라가는데 시간도 걸릴테니 넉넉하게 5시 20분 정도에 출발을 한다. 사람들도 모두 시간 맞춰 이 곳으로 몰리는지 주차장에 차 대기가 힘들다. 주차장에서 Delicate Arch 까지는 대략 3 mile(4.8km).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계속 오르막만 이어지는 난이도가 꽤 높은 등산로라고 한다. 등산로 입구에서 지도를 보고 있는데, 한 커플이 내려오더니 사진장비를 한무더기 짊어진 나를 보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여자분은 "Oh my God"을 연발하는데, 또 가라면 안 갈 것 같다고 한다. 다행히도 진짜 아름답다고, 고생한 만큼의 가치는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길래 시작부터 이리 기를 죽이는지.

등산로는 정말... Oh my God 이었다 -_-; 거리는 3 mile 이 맞는데 대략 30~40도 경사의 사암 지대를 내리막 한 번 없이 주파하는 등산로였다. 게다가 해는 스멀스멀 지평선을 향해 가고 있으니 멈춰 쉴 수도 없다. 가장 힘든건 내가 지금 얼마나 온건지,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 평소 운동이라도 많이 해 둘걸 싶다. 얼마나 걸었을까, 사진가방이 어깨를 누르는지 팔에 피가 안 통해 살짝 저리기까지 한다. 때마침 한 할머니가 내려오다 내 옆을 지나면서 뭐라 중얼거린다. "Late...(늦었어)" 잉? 이건 또 뭔 소리냐. 나한테 한 소린지도 모르겠고, 제대로 들었는지도 모르겠는데, 아아아악... 신경쓰인다. 혹시 목적지에는 해가 넘어가 버린게 아닐까? 쫓아 내려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 답답한 노릇이다. 다행히 조금 후에 마주친 어떤 여자분이 저 앞의 모퉁이만 돌면 도착이라고 힘내라고 말해준다. 마지막 힘을 다해 언덕을 기어 오른다.

그리고 정말로 모퉁이를 돌자,


Delicate Arch

아름답다. 정말로. 내가 지금까지 본 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다. 저물어 가는 저녁 햇살이 어루만져 더더욱 붉어 보이는 아치가 조금씩 어두워지는 인디고빛 하늘 속에 우뚝 솟아 빛을 발한다. 아치 너머로는 멀리 La Sal Mountain 이 눈 덮인 흰 봉우리들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푸르고 붉고 하얀 풍경 위로는 날렵한 초승달이 떠 있다. 그리고, 아치 아래로 우아한 곡선을 그리면서 이어지는 경사면의 끝에 모여 앉아 경배하듯 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모두들 마치 긴 희열을 음미하는 것처럼, 그저 조용히, 미소짓듯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오직 느릿느릿 산 너머로 미끄러져 넘어가는 태양만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아치 아래의 곡면도 아름답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


달을 품다

일단 다양한 각도에서 필름 한 통 정도 촬영한 후 다시 사람들을 둘러본다. 나처럼 작정하고 사진 장비를 챙겨온 사람도 몇 보이지만, 사진기를 들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도착 직후에는 기념 사진을 남겼겠지만, 지금은 그저 석양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손을 잡고 앉아 있는 노부부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서둘러 증명사진(?)만을 남기고 돌아서는 투어(tour)보다는 이렇게 그 장소와 합일하는 시간을 갖는게 훨씬 의미가 클 것이다. 어떤 이는 간간히 고개를 들어 석양 속에 젖어 있는 아치를 바라보면서 책을 읽고 있다. 마치 책 속의 장면을 두 눈으로 확인이라도 하듯이. 이것 또한 한 장소를 기억 속에 영원히 새기는 또 하나의 특별한 방법일 것이다.


풍경을 즐기고 있는 노부부


아치 아래를 걸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해가 졌다. 하늘은 아직 밝지만 산 너머로 떨어진 태양은 더 이상 우리에게 빛을 던져주지 않는다. 올라올 때의 고행에 비하면 내리막 길은 훨씬 수월하다.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주차장까지 돌아온다. 어두워지면 내려오는 길이 험하다고 해서 헤드랜턴을 준비했었는데,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하늘에 남은 빛만으로도 충분해 굳이 랜턴을 꺼낼 필요가 없다. 차에서 사과와 물로 간단히 갈증을 가라 앉히면서 완전히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이제 본격적으로 별 일주 사진을 찍을 시간이다. 달이 떠 있으니 지상의 피사체와 별 일주를 모두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아까 미리 보아 두었던 Balanced Rock 근처의 주차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차들이 많이 다닌다. 조리개를 완전히 열어두고 촬영을 하기 때문에 자동차의 헤드라잇 불빛은 치명적이다. 대략 30분 정도 노출을 주려고 하는데, 10~15분 간격으로 차들이 계속 지나다녀 제대로 촬영을 할 수가 없다. 몇 번을 버벅대고 있는데 차 한 대가 주차장에 들어와 선다. 별구경을 나온 사람들이다. 노출 시작하고 기다리는 동안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 사진보다 이 기억이 더 많이 남는다. 멀리 커넥티컷(Connecticut)에서 Donna와 "Spybee"(별명인 듯 하다) 부부, 그리고 유타 주민인 Ron 과 Mary. 함께 하늘을 바라보고, 별똥별에 감탄하면서 경제 위기를 걱정하던 중구난방의 대화들. 그 모두가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Balanced Rock 주차장에서의 별 일주사진


Park Avenue 에서의 1시간 노출. 북극성을 중심으로 원형의 궤적을 보인다.

60대의 그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건 아마도 존대말이 따로 없는 언어를 사용해서가 아닐까 싶다. 예컨데, 만약 60대의 한국분을 만났다면 대화가 어땠을까. "자네 어디서 왔나?" "예, 시애틀에서 왔습니다." "혼자 여행하는데 몸 조심 해야지" "예 그래야죠" 등등. 하대를 하는 순간 어른은 일단 어른으로서의 의무(충고)에 충실하게 되고, 그에 맞춰 존대를 하는 순간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자기 검열에 걸려 더 많은 대화는 삼가게 되지 않을까? 언어는 관계맺음의 방식마저 규정한다. 문화적 차이도 분명 고려를 해야겠지만, 언어 자체가 규정짓는 위계가 서로 간의 장벽이 되는건 분명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잘 알지 못하는 이에게 말을 놓는게 여전히 불편한 까닭도 그 때문이다.

어쨌든, 밤은 깊어 가는데 여전히 주기적으로 차들이 지나다닌다. 아쉽지만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Turret Arch 근처로 가려고 했는데, 야간 공사 작업 중인지 길을 아예 막아 놓았다. 아쉬운대로 공원 입구 쪽에 있는 Park Avenue 에 차를 세우고 다시 촬영을 시도한다. 다행히도 Park Avenue 는 차도와 반대 방향으로 카메라를 세울 수 있어 지나는 차들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성공적으로 1시간 촬영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밤 11시가 다 되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내일 일정을 편안하게 가져가기 위해 Needles 근처인 Monticello 로 이동해서 숙박하기로 결정한다. 여기서는 1시간 정도 거리다. 어서 서둘러 가서 쉬어야겠다. 피곤한 하루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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