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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08 Archives

December 8, 2008

Day 2 : Across San Rafael Swell

새벽에 창 밖에서 일군의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떠들었다. 잠결에 듣기엔 스패니시 같았는데, 히스패닉에 대한 선입견 탓에 잘못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모텔에서 1층 방은 왠만하면 잡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면은 건강한 여행의 필요충분조건이니 말이다. 약간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니 기대와는 달리 계속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이런. 뭐 어쩔 수 있는 일은 아니니 일단 숙소 근처 맥도널드에서 Egg McMuffin 과 뜨거운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커피는 비오는 날씨와 유난히 잘 어울린다. 평소 즐겨 마시는건 아메리카노지만, 비오는 날에는 그냥 드립 커피도 나쁘지 않다. 차 안에 커피향이 퍼진다.

Salt Lake City 는 돌아오는 길에 들르는 걸로 계획을 잡아놔서 오늘은 그냥 관통해 지나간다. 출근 시간에 도심을 통과하는데도 다행히 길이 별로 막히지 않는다. 차들은 주로 도심인 Salt Lake City로 들어오고 있어 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이 쪽 길은 한산한 편이다. 30분 정도 달려 Provo 근처에 이르자 드디어 주간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격인 US-6 로 빠져나오는 갈림길이 나온다. US-6 은 산등성 사이의 계곡으로 길이 이어지는데, 계곡 입구에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낮게 깔린 구름과 함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뼈마디를 드러낸 산세와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길은 왠지 낯설지가 않다. 지금쯤 붉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 사이로 단풍놀이 나온 사람들로 가득할 강원도의 어느 산골도로가 떠오른다. 하지만 미국 북서부에서는 붉은 단풍 구경이 쉽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산에는 상록수들이 많고,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무들은 은행잎처럼 노란 색으로 물들이거나 아니면 그냥 갈색으로 시들며 겨울을 맞기 때문이다. 관목류인 Heath 가 붉게 물들기는 하지만, 땅 위로 낮게 자라는 탓에 온 산을 불태우기는 버겁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가을은 따스함이 덜하게 느껴진다. 아니, 어쩌면 그저 먼 땅에 나와 있는 이방인의 허한 가슴 탓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곳 유타에서의 느낌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 하다.


US-6 를 타고 Helper 로 향하는 길

고개를 넘어가자 갑자기 풍경이 변한다. 완만하던 경사길도 갑작스래 급경사로 바뀌더니, 주변으로 솟아오른 절벽 사이로 내려꽂힌다. 지리한 등정을 마치고 쏟아져 내리는 롤러코스터를 탄 마냥 본격적으로 모험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빠른 속도로 산을 내려가니, 풍경 또한 빠르게 변한다. 한 때 이 지역 광산업의 허브 역할을 하던 Helper 를 지나 Price 라는 도시에 이르자, 산은 사라지고 드넓은 평원이 눈 앞에 펼쳐진다. 비구름도 점점 사라지고 파란 하늘이 많아지고 있다. 여기서 다시 US-6 을 벗어나 US-10 을 타고 Castle Dale 으로 향한다. 오늘의 주된 방문지는 Castle Dale 에서 들어갈 수 있는 San Rafael Swell 의 북부지역이다.


Castle Dale 로 향하는 US-10 에서. 하늘이 많이 맑아졌다.


San Rafael Swell 의 경계를 이루는 절벽들

San Rafael Swell 은 푹 꺼진 거대한 돔을 연상하면 된다. 물론 그 돔의 크기가 대략 서울시의 12배 정도 된다는 점은 잊지 말고. 그렇지만 사실 이 지역은 크게 기대한 것은 없었다. National Park이나 National Monument로 묶여 있는 곳도 아니었고, 그저 Buckhorn Draw 를 보고 가려고 경로를 잡다 보니 통과하게 된 곳이다. 하지만, 막상 들어서보니 이 곳의 풍광도 만만치 않다. 낮아진 지대로 물이 모여들고, 그 물이 다시 바위를 깎아 다양한 지형들을 만들어 낸 덕이다. 처음에는 그저 널찍한 황무지 지대처럼 보이지만, 중심부를 향해 갈수록 다양한 풍경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중 Highlight는 Wedge Overlook 이라는 곳에서 볼 수 있었다.


Wedge Overlook 에서 바라본 Little Grand Canyon


절벽 바로 위를 지키고 있는 나무 한 그루

Wedge Overlook 이라는 곳은 애초에 정보조차 없던 곳이었다. 길을 달리다 표지판이 보이길래 차를 돌렸는데, 의외의 대박을 만났다. 아찔한 절벽에서 내려다보는 계곡의 모습은 Grand Canyon 보다 못할 것이 없어 보인다. 역시나, 안내판을 보니 Little Grand Canyon 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다. 계곡 아래로는 San Rafael River 가 흐르고 있다. 저 작은 물줄기가 이 깊은 계곡을 깎아냈으니, 이 풍경 안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쌓여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문득 하늘을 보니 다시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계속 비구름에 쫓겨다니고 있는 기분이다.

차를 다시 돌려 나와서 조금 더 가니 원래 목적지로 향하는 Buckhorn Draw Road 로의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부터 지대가 계속 낮아지더니, 잠시 후에는 아까 Wedge Overlook 에서 내려다보던 계곡 밑바닥으로 길이 이어진다. 바닥에서 거꾸로 올려다 본 계곡은 역시 까마득히 높다. 이 높이가 인간을 아득히 넘어서는 무언가를 연상시켰을까. 수천년전 어떤 사람들이 이 곳의 사암 절벽에 어떤 흔적을 남겨 두었다. 바로 Buckhorn Draw Pictograph 이다.


Pictograph이 그려져 있는 사암 절벽

여기에 그려진 그림들의 의미는 불분명하다. 수천년 전의 그들과 오늘의 나 사이에는 그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큰 문화적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 아주 오래 전 내가 서 있는 이 곳에 서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그림은 수천년의 시간을 살아남과 그와 나 사이를 매개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를 상상하듯, 그도 먼 훗날의 어느 누군가를 상상하고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그림이 수천년의 시간을 살아남아 누군지도 모를 이에게 그 의미를 전하고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모른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렇게나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수천년을 먼저 살아 이 기록을 남긴 그 누군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Buckhorn Pictograph


날개를 달고 있는 사람

붉은 염료로 그려진 벽화에는 뱀, 가축, 곤충 등과 함께 일군의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들 중에는 날개가 달린 천사와 같은 모습을 한 형상도 눈에 들어온다. 신적 존재를 그린 것일까? 모닥불 주변에 모여 하늘을 향해 손을 벌린 사람들도 보이고, 뱀을 만나 놀란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 그림들은 일련의 주술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Buckhorn Draw 에는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붉은 염료로 그려진 인물들의 가슴에 후대의 누군가가 노란색의 구멍을 그려 넣었다는 점이다. 이는 또 어떤 의미였을까? 원래의 그림을 그렸던 이들이 어떤 이유에서 덧씌운 것일까? 아니면 그들 이후에 이 땅을 차지한 사람들이 이전 주인들의 수호신을 물리치고자 행한 일종의 주술적 살인 행위였을까? 그 누구도 답을 모르는, 수천년 묵은 미스테리다.


Buckhorn Draw 로부터 I-70 을 향해 나오던 길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남긴채, 다시 길을 나선다. Buckhorn Draw 를 떠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절벽들이 점점 뒤로 밀려나면서 다시 평원 지역이 나타난다. 다소 단조로워 보이는 이 길을 따라 남쪽으로 계속 달리면 San Rafael Swell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I-70 을 만나게 된다. 다음 목적지는 오늘밤 머물 Moab 이다. I-70 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리다가 US-191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된다. 비포장 도로를 계속 달리다가 I-70에 다시 들어서니 비단길을 달리는 것 같이 조용하다. 평소에는 highway 달리는게 그렇게 시끄러웠는데, 사람 감각이라는게 이렇게 웃기다;; 음악을 크게 틀고 I-70 를 달리다보니 갑자기 거대한 바위 절벽이 솟아오르며 다시 그림 같은 풍경이 나타난다. 그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 이런 풍경을 만난다는게 놀랍다. 이곳에서는 나 또한 풍경이 되어 달린다.


S 자 곡선을 그리며 달리는 I-70

US-191 에서 Moab 에 이르기 전에 Dead Horse Point State Park 이라는 곳에 들렀다. Canyonland National Park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어 대개는 한꺼번에 들르거나 지나치는 곳인데, 시간이 약간 애매하게 남아서 오늘 저녁에 들르기로 결정했다. Colorado River 가 크게 굽이치며 흐르는 gooseneck 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근데 이름이 좀 웃긴다. 우리 말로 바꾸면 "말 죽은 곳 주립공원"인데 예전에(아마 개척시대?) 누군가의 말이 여기까서 와서 죽었나보다. 올라가는 길에 있는 캠핑장 이름은 더 가관이다. Horsethief Campground = 말도둑 캠핑장. 하긴 도로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말은 가장 큰 재산 중 하나였을테니, 말이 죽거나 도둑 맞으면 그만큼 슬픈, 즉 인상적인 사건도 없었을게다.


거위목처럼 휘어지며 흐르는 Colorado River

절벽 위에서 내려다본 Colorado River 의 모습은 압도적이다. 다만 오늘 나를 계속 쫓아다니던 비구름이 마지막까지 훼방을 놓는다. 비구름 덕에 절벽 아래쪽으로 빛이 거의 들지 않아 제대로 사진에 담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동시에, 저녁 햇살에 짙은 와인빛으로 물든 구름은 다른 장관을 선사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 넘어가는 저녁 햇살을 맞이하고 있다. 압도적인 규모의 자연 앞에서, 숨막히게 아름다운 저 석양 앞에서 사람들은 말을 잃는다. 애초에 인간의 예술은 바로 저 아름다움, 그 숭고함을 모방하는데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자연 앞에 "예술적"이라는 수사를 놓는 것은 온당치 않다. 지금 나를 넋놓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술 자체, 그 원형이다.


절벽 위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인간이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석양에 붉게 물든 비구름

날이 저물었다. Moab 으로 내려오니 날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진 후다. Moab은 이 근방 outdoor activity의 중심지이다. 도시는 꽤 큰 편인데, 숙박시설과 식당, 자전거 수리점, 여행사 등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 하이킹이나 산악 자전거 같은 육상 활동 뿐 아니라 카약이나 래프팅 같은 수상 활동도 많이 이루어진다. 특히 1800년대 개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카약을 타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를 탐험하는 여행이 인기다. 물론 관광객들이 많은 만큼 숙박비 등도 비싸다. 오늘은 2층에 방을 잡고, 모텔 앞 Denny's 에서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운다. 내일을 위한 에너지 비축이다.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To be continued...)

December 29, 2008

Day 3 - 1 : Island in the Sky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침형 인간은 못된다. 그렇다고 늦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하루 최소 8시간의 수면은 취해 줘야 하루가 편하다. 그러니, 일찍 잤다고는 해도 6시간만에 일어나는건 지독히도 힘들었다. 5시 반. 매일 이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면 아마 수면부족보다 스트레스로 먼저 쓰러졌을거다. 침대에서 간신히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짐을 꾸려 차에 싣는다. 이 모텔은 숙박비가 비싼 대신 간단하나마 아침 식사를 주니 식사를 하고 check out 을 할 생각이다.

이 시간에 일어난건 오직 하나 해 뜨는 시간에 Mesa Arch에 오르기 위해서다. 6시 반 정도가 됐지만 아직 하늘은 깜깜하고 별이 총총 떠 있다. 여유 있을 법도 하지만 모를 일이다. 태양은 내 예상보다 훨씬 민첩하게 움직이는 놈이니까.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아직 공원 관리인(Park Ranger)들은 출근 이전이다. 원래는 여기서 국립공원 연간 출입권을 살 예정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당일 이용 요금을 내고 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문제는 $10짜리 잔돈이 없어서 $20을 낼 수밖에 없었는 것;; 눈물을 머금고 $20을 집어넣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냥 들어갈까 1.724 초 쯤 고민했다.)

역시나,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약간 늦은 듯 하다. Mesa Arch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니 이미 하늘은 훤해져 있다. 서둘러 장비를 내리고 trail 을 따라 걷는다. 미리 찾아 본 정보에 의하면 10분 정도 거리의 쉬운 난이도의 trail 이라고 한다. 하지만 평소 운동도 안 하고 하루종일 앉아서만 일하던 몸이다보니 이 정도도 쉽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짊어진 카메라 가방과 삼각대를 감안하더라도 심각한 운동 부족임이 느껴진다 -_-; 어쨌든, 헉헉대며 오르막을 따라 걷다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Mesa Arch 다. 그 주변으로 10여명의 사람들이 이미 삼각대를 펼치고 진을 치고 있다. 나중에 보니 단체로 기념 사진도 찍는 걸로 봐서 어느 동호회 혹은 학교에서 단체로 온 듯 했다.


Mesa Arch 아래로 보이는 풍경


역광 속에 실루엣으로 지형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다행히 많이 늦지는 않아서 지평선 부근에서 수평으로 들어오는 빛이 붉게 어른거리는 Mesa Arch 를 담을 수 있었다. 사암 절벽에 반사된 햇빛이 Arch 아랫 부분을 붉게 물들인다. 수평 방향에서 들어오는 햇빛은 지면 근처의 지형들을 실루엣으로 잘 드러내고 있는데, 붉은 arch 를 프레임 삼아 사진을 담으니 멋진 조화가 이루어진다. 조금 더 있으면서 찍어도 될 법 했지만, 사람들이 내려오기 전에 얼른 장비를 챙기고 다시 길을 내려온다. 빨리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삼각대를 서로 부딛히며 단체로 우루루 걷는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를 다시 뻬서 Canyonland National Park 의 최정상인 Grand View Point 로 향한다. 가장 안 쪽에서부터 시작해 바깥으로 나오면서 둘러볼 예정이다.

Canyonland National Park 은 크게 4 개의 구역(district)으로 구분된다. The Island in the Sky, the Needles, the Maze, 그리고 이들을 관통해 지나가는 두 강(Green River, Colorado River) 유역들이다. 이 중 the Maze 는 off-road 로만 접근할 수 있어 이번 여행에서는 일찌감치 제외를 했고, 강 주변은 카약을 타는 투어가 있는데 역시 시간 관계상 다음을 기약했다. 남은 2 개의 구역 중 오늘 방문한 곳이 바로 the Island in the Sky 구역이다. 이름이 시사하듯, 이 구역은 Canyonland National Park 의 가장 높은 지대에 속한다. 평균 해발 고도 6,100 피트(= 1859m, 대략 한라산 높이다)의 고지대까지 차를 끌고 올라가 주변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Grand View Point 에서 보이는 Canyonland N.P.


깊게 패인 계곡

Grand View Point 는 Island in the Sky 구역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 곳에서는 Canyonland National Park 전체가 360도 파노라마로 눈 앞에 펼쳐진다. 광대하다. 사실 너무 광대해서, 어떻게 사진으로 담아야 할 지를 모르겠다. 차마 셔터를 누르지 못하고 잠시 trail을 따라 걷는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서인지 다른 관광객들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혼자 여행다니면 심심하지 않냐고 묻곤 한다. 혼자 다니던 누군가와 함께 하던 각각의 장점이 있겠지만, 혼자서가 아니라면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고독"이다. 이 넓고 낯선 공간 속에 홀로 존재함을 느낀다는 것,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오로지 나 자신만이 느껴지는 그 끝없이 깊은 평화로움을 말이다. 그런데, 이 곳은 뭔가가 다르다. 그저 홀로 있다는 느낌을 넘어서 아예 존재에 대한 느낌마저 무뎌진다. 눈 앞에 펼쳐진 저 자연의 광대함과 어우러진 다른 어떤 감각이 나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완벽한 정적이었다. 바람 소리도, 새 울음소리도, 부스럭거리는 수풀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절대 무음의 세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혹은 읽고 있는 순간 잠시 주변의 소리에 귀기울여보라. 혼자 있는 순간조차 우리는 소음 속에 살아간다. 머언 경적 소리나 하수구 물 내려가는 소리, 혹은 째깍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까지. 이 모든 소리가 사라진 세계를 상상해 보라. 그것도 귀를 막아 얻은 닫힌 침묵이 아니라, 세계를 향해 열린 침묵의 세계를. 잠시 바위 위에 걸터 앉는다. 나는 이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곳에서는 "나"를 잊는다. 오직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과, 뺨에 와 닿는 차가운 공기의 감촉만이 나의 육신을 증거할 뿐, 이 곳에 앉아 있는 나는 오로지 사유로만 존재할 뿐이다.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외딴 곳으로 숨어들었던 은둔자들이 갈구했던 평화와 명상의 시간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 것 같다.


아침 식사 중인 chipmunk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뭐, 그래봐야 10분 정도지만;;) 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관광객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사진으로 몇 장 담는다. 여전히 어떻게 사진으로 담아야 할지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단 몇 컷을 담고 다시 차로 향한다. 아침 식사 시간인지 chipmunk 한마리가 풀숲에서 열매를 뒤지고 있다. 마주친 관광객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차를 돌려 Buck Canyon Overlook 으로 향한다. 이 곳은 사실 Grand View Point 와 거의 같은 조망을 보여준다. 높게 솟은 봉우리(mesa = 탁상 대지)와 붉은 대지, 깊은 계곡들. Overlook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판은 어떻게 이런 지형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를 설명해주고 있다.


절벽 위의 덤불.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은 자란다.


서부 영화에서 많이 봤던 장면이다 ^^;

Utah 에서 만날 수 있는 지형들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 흥미롭게도 이들 다양한 지형들이 생겨난 가장 큰 원인은 한 가지로 압축된다. 소금. 오래전, 지금의 Utah 지역은 캘리포니아 지역을 포함한 태평양 판(pacific plate)의 동부 연안에 해당했다. 이 판이 동쪽으로 밀려나면서 북미 판(north american plate)과 충돌을 했고, 이 과정에서 Utah 지역에 해당하는 바다가 양 쪽 판(plate) 사이에 갇히면서 닫힌 바다가 되었다. 이 닫힌 바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물이 증발되면서 바닥에 두꺼운 소금 침전물이 쌓이게 된다. 그리고 그 위로 다시 강물 등에 휩쓸려 온 토양이 여러 겹으로 쌓이면서 다양한 색의 사암지층을 형성한다.

자, 이제 무대 준비는 끝났다. 서로 부딛힌 판이 지진을 일으키며 두텁게 형성된 퇴적층을 위로 밀어올리면서 본격적인 자연의 조각이 시작된다. 바닥에 깔린 소금층은 여타 암석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끄럽기 때문에 그 위에 쌓인 암석층이 지형의 변화에 따라 미끄러지고 부딛히면서 조금씩 갈라지게 된다. 그 틈으로 물이 스며들면서 아래 쪽의 소금층에 이르게 되고, 소금이 물에 녹으면서 지하에 커다란 빈 공간이 형성된다. 그리고 이 빈 공간이 함몰되면서 그 위의 방대한 지역이 갑자기 땅 속으로 쑥 꺼지게 되는 것이다. 일부만 함몰되면 계곡이 되는 것이고, 일부만 남으면 Island in the Sky 같은 mesa 가 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Canyonland National Park 에서 볼 수 있는 스케일 큰 지형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 후에 비바람과 물의 침식작용이 세밀한 부분들을 만들어 나간다. 이 과정은 나중에 다른 장소에서 보다 자세하게 보게 되니 그 때 설명하도록 하자.


Green River Overlook 에서 내려다 본 풍경


계곡 부분만 확대한 모습

일단 Buck Canyon Overlook 을 떠나 Green River Overlook 으로 향한다. 너무 늦기 전에 Arches National Park 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이 곳이 Island in the Sky 구역의 마지막 방문지가 될 것이다. 이 곳에서는 Canyonland National Park 을 가로지르는 Green River 가 만들어낸 Y 자 모양의 계곡을 볼 수 있다. Green River 는 정말 문자 그대로 녹색으로 보인다. 수량은 많지 않지만 건조한 지형 속에 유일하게 물이 있는 곳이나 온갖 식물들이 집중되어 자라기 때문이다. 바위 위에 삼각대를 세팅한 김에 계곡을 배경으로 셀카도 찍어 본다. 이번 여행에서 몇 안되는 내 사진이다.


웃고 있지만 저 바위 너머는 천길 낭떠러지..;;

자, 이제 정말 Arches National Park 으로 떠날 시간이다. 장비를 다시 챙겨 차로 돌아가려는데, 아까 Grand View Point 에서 만난 사람들이 저 앞에서 걸어오고 있다. 서로 왜 쫓아다니냐고 농을 친 후에 제대로 통성명을 한다. 백인인 Scott과 중남미 계열인 Gabriel이다. 둘 다 Chicago 에서 왔는데, Gabriel 은 원래 고향이 Santo Doningo로 미국에 온지는 얼마 안 된다고 한다. 반면 Scott 은 미국 토박이로 이 지역은 여러 번 여행했다면서 여러 장소를 추천해 준다. 내 일정을 말해줬더니 Bryce Canyon의 Queen's Garden trail 을 강력 추천. 좋은 정보다.

이들과 작별을 고하고 차를 돌려 나선다. 다음 목적지는 Arches National Park 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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