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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 2008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야"

빌 클린턴의 유명한 선거 캠페인 슬로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Economy, Stupid!)"는 이제 워낙 여기저기서 차용되어 좀 식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못 찾고 변죽만 울리는 이들에게 "바보야"라고 일갈해 주는 이 구호만큼 명쾌한 구호도 흔치 않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차용해 봤다.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야!!" 물론 여기서 바보는 2mb 다.(아, 쓰고 보니 이 인간에겐 바보란 표현도 너무 우아하다.)

이 문장에는 두 가지 질문이 뒤따른다. 첫째, 왜 바보인가, 그리고 둘째, 왜 민주주의인가. 사실 첫번째 질문에 대해 답하는건 입만 아픈 일이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든 행동들은 그가 단 한 번도 철학적으로 사고해본 적이 없는 인간이라는걸 보여준다. 그의 행동들은 즉흥적이고 이득이 되는 방향을 찾는 본능적 감각에 지배된다. 이는 당면한 위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무언가를 쟁취하는 경쟁에서는 탁월한 장점이 되겠지만(그의 소위 말하는 '성공신화'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그 정수를 보여준다), 어떤 난관에 봉착했을 때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짚어내어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은 0 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래서 그는 바보다.

보다 중요한 질문은 두번째다. 왜 민주주의인가. 사실 이 두번째 질문이야말로 보수 언론과 정치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해 준다. 그들에겐, 민주주의는 과거완료형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해하는 민주주의는 20여년 전, 독재냐 민주주의냐라는 질문의 수준에서 그대로 멈춰 있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이 물러나고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되었으니 민주주의의 역사는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은 거기서 멈췄다. 백 번 양보해서, 그 땐 그걸로 충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강산도 두 번 바뀔 세월이 흘렀다. 불완전하나마 20여년 간의 경험은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를 잔뜩 높여놓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독재 상태와 비교해서 이해하지 않는다. 이제 민주주의는 보다 근본적인 의미를 지향해 간다. 그래서 문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네이버 국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민주주의란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이라고 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2008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두 가지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첫째는, 선거를 통해 적법하게 선출한 '민주' 정부가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지도 않고, 국민의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는 현상, 즉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 혹은 실패이다. 국민은 권력을 가지고 스스로 행사한다고 '정의'되나, 실제 권력은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거리의 정치로 나서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또 하나의 실패는 민주주의가 더 이상 고삐 풀린 시장을 통제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되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더 이상 그 소고기를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걸 잘 알고 있다. 이 실패는 신자유주의라는 맥락에서 따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문제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여부를 넘어섰다. 촛불 시위가 계속되고 경찰의 강경진압이 반복되고 여론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면, 정부는 아마도 미국과의 갈등을 최소화 하는 한도 내에서 일정 정도 물러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계속된 시위에 지친 국민들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애당초 민의와 동떨어진 저들은 조만간 다시 폭주를 시작할테고(아마도 대운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은 또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야 할 테니까. 그러지 않으려면, 우리는 또 다시 국민과 이미 유리된 저 강부자 정부가 국민 앞에 알아서 기는 ‘기적’을 기대해야 한다. 근데, 저 바보들한테 뭘 기대하란 말인가.

해서, 우리는 저 바보들에게 정확히 일러줘야 한다. 문제는 민주주의라고 말이다. 선거라는 간헐적 이벤트로 형식적으로 획득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끊임없이 국민들로부터 재신임 받는 보다 진일보한 민주주의라고. 사실, 대의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선거는 결코 저들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 수단이 아니다. 자금력과 조직력으로 무장한 기득권 세력은 손쉽게 선거의 이슈와 쟁점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유도해 나간다. 게다가 거대 정당들은 밥그릇 싸움을 할지언정 결국 과두 지배 체제를 구성하는 동료들일 뿐 아닌가. 따라서, 선거라는 프레임에 우리의 정치 활동의 한계를 지어버리는 대신, 우리는 더 직접적인 통제 수단을 요구해야 한다. 임기 중 언제든지 선출직 공무원들을 견제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의 도입 등과 같은 보다 직접적인 민주주의의 방안들을 찾을 때다. 거대 사회에서는 직접 민주주의는 불가능 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겐 네트워크가 있지 않은가. 이번 촛불 시위는 그 네트워크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이번 촛불 시위는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었고, 많은 과제를 남겼다. 어떻게 폭주하는 행정부를 제어할 것인가, 어떻게 의회를 대의 민주주의의 실질적 중추로 기능하게 만들 것인가, 공권력의 폭력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막을 것인가, 그리고 시장의 독재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어느 하나 쉽지 않고 깊은 고민과 실천을 요구하는 사안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 사태 덕분에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문제들을 극복해나갈 힘들의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이다. 촛불은 희망이다. 당신들이 바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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