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교육의 야만
뭐,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서도.
종종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라는 시를 찾아 읽는다. 싯구들을 천천히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깊은 적막이, 싸륵 싸륵 눈꽃 쌓이는 소리가, 톱밥난로의 온기가 느껴지며 그 붉게 어른거리는 불빛 속에 앉아 저마다의 상념에 잠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이게 내 기억 속 어딘가 묻혀있는 경험을 끌어내기 때문인지, 아니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각인된 이미지의 편린이 흘러나오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건, 이 시가 내 마음을 울리고, 내가 그로 인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집을 늘상 옆에 끼고 있을 수는 없기에, 이 시를 읽고 싶을 때면 인터넷 검색창에 "곽재구 사평역에서"를 쳐 넣어 시를 찾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진 페이지들에서 나는 종종 좌절하곤 한다. 링크 순으로 검색 순위가 메겨진다는 G 모사의 검색엔진 상위의 페이지들을 보면 시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기를 눌러보면 그 대표적인 페이지를 볼 수 있다.
사실, 나도 저렇게 시를 배웠다. 단어 하나하나에 밑줄을 긋고, 그게 무슨 뜻인지 받아 적고. 수미쌍관이 어쩌느니 대구가 어쩌느니. 내가 오랫동안 시에 관심이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거다. 나는 시를 읽고 감동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시는 그저 분석의 대상이었고, 시험에 나오면 이 시는, 이 단어는 이런 뜻이다라고 선택해야 하는 정답/오답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 역시나 같은 세계에 속해 있던 소설이 그나마 그 분량의 차이로 인해 낱낱이 해부당하는 치욕을 피해 오늘날까지 내 독서를 지속시킨 반면, 시는 완전히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그 본래의 형체를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여전히 시를 잘 못 읽는다. 그림에 문외한인 것처럼 시에도 문외한이다. 하지만 간혹 몇몇 작품이 내 무지의 장막을 뚫고 들어와 빛을 비추는 날이 있다. 그리고 그 빛에 이끌려 나는 겨우 입시 교육이 내게 선물한 그 장막을 들추기 시작한다. 아마 이게 예술의 힘이 아닐까.
사평역에서 - 곽재구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듯
한 두릎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 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속에 던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