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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07 Archives

April 2, 2007

FTA, 그리고 민주주의


ⓒHARLEY SOLTES / THE SEATTLE TIMES

이 사진은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반 WTO 시위의 한 장면이다. 시위대가 타워 크레인에서 내건 이 플래카드에는 "민주주의"와 "WTO"가 서로 반대편을 가리키고 있다. 물론 이 시위대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WTO로 대변되는 세계 무역 자유화의 흐름은 (특히) 저개발 국가들의 경제 시스템을 다국적 자본의 영향권 하에 종속시켜,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자국의 정치 시스템을 통해 스스로의 경제적 이해를 지키려는 모든 시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다국적 자본의 시대에 자유무역은 모든 정치적, 윤리적 가치를 모두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여 사실상 민주주의와 대립하게 된다.

이번 한미 FTA 체결이 내게 던진 의문도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였다. 나는 이번 FTA 체결에 반대하지만, FTA가 순수하게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국 자본주의에게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어차피 한국이 자본주의 국가이고, 자본주의 질서에서 세계적 차원의 무역 자유화가 하나의 대세라면, 무작정 그것이 나쁘다고만 외치고 있는 것도 무책임한 일일 수 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IMF 같은 위기를 넘어선 한국 경제의 잠재적 동력은 새로운 도전 속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박이지만, 역시나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생각한다면 시도해 볼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과연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그것도 대한민국 헌법 1조에서 말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의 역할을. 민주공화국의 이념에서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장치이다. 하지만 국민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 각각의 이해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서로 다른 이해들이 충돌하고 그 안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이 민주공화국 시스템에서 정치의 역할이며, 이 충돌과 조정의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의 이념이 실행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민주주의가 결코 다수결과 동의어가 아니다는 점이다. 민주공화국은 공화국 국민 전체의 이해를 대변해야지 그들 중 일부(수적으로 다수일 수도 있고, 권력을 잡은 쪽일 수도 있고)의 이해를 기계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경우에서 국민들 간의 이해관계는 서로 충돌한다. 국가가 어떤 정책을 통해 한 쪽의 이해를 반영하고 다른 쪽에 손해를 끼칠 수밖에 없음은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국가는 모든 국민의 목소리에 대답해야 한다. 99%가 이득을 보니 1%는 손해를 봐도 참으라는 것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그 1%의 국민에게조차 국가는 그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호명하며 국가가 그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공화국이다.

그렇게 국민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정치의 전당에 울려퍼지는 것, 그것이 의회정치의 목적이자 존재 의의다. 하지만, 조선시대 전제군주제의 영향이 아직 남아있는 것인지, 아니면 독재정권의 잔재 때문인지, 우리의 의회정치는 배신당했다. 인기보다 자신의 신념을 따르겠다는 대통령에게 배신당했고, 의석 수를 그저 자기 관리 하에 있는 나와바리 수 정도로 생각하는 거대 정당들에게 배신당했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만 중요할 뿐이지, 자신들이 누군가를 대리하는 대표일 뿐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해버렸다. 한 나라의 경제 시스템을 통째로 흔드는 협상의 정보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 의회로부터 차단되었고, 더 웃긴건 의회는 굳이 그걸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게 민주주의인가? 이게 공화국인가? 정치는 사라지고 오직 통치만이 남은 이 나라가 어떻게 민주공화국의 헌법을 내세우는가.

양극화가 어쩔 수 없다고? 전체 경제가 나아질 것이니 농업과 제약 쪽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손해는 피할 수 없으니 이를 보상해 줄 수 있는 기금을 마련하겠다고? 다 옳다고 치자. 그런데 그걸 받아들일지 말지는 당사자들이 결정할 문제다. 당신은 누가 손해를 보고 누가 이득을 볼지 결정하는 제왕이 아니다. 당신은 들어야 한다. 국민 하나하나의 목소리를. 그들의 떨리는 목소리를.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은 그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당신은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왜 그렇게 조급했는가 싶다. 왜 그렇게 근시안적인가 싶다. 스스로의 입으로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던 대통령이, 더디더라도 옳은 길을 가겠다던 '바보' 대통령이 왜 국가의 정치 시스템과 그 근본 가치를 붕괴시키면서까지 경제 문제에 올인해야 했는가 싶다. 당장 먹고 사는게 불가능한 나라도 아니건만, 아직도 독재정권의 잔당들이 의회정치를 모독하고 있건만, 왜 그리도 서둘러야만 했단 말인가. 그 자신이 직접 의회정치를 모독하고, 독재정권 잔당들의 기립박수를 받는 현실을 왜 기어이 만들고야 마는가.

아직 마지막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건, FTA가 의회의 비준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망신창이가 된 의회지만, 그리고 의회정치의 이념을 저버린 저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회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토론의 시간과 공간이 조금이나마 주어졌다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FTA의 득실을 저울질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도,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고 싶다. 우리에게 과연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우리의 민주공화국은 어디에 있는가.

April 4, 2007

봄 나들이

올 봄에 다녀오려고 생각 중인 곳들.

Tulip Festival

- 이번 주말에 다녀올 예정


Butchart Garden

- 캐나다의 Victoria 섬에 있는 곳. 4월은 어차피 튤립 등이 피는 시기라니까, 장미가 만발한다는 6월 정도에 가 볼 생각


Walla Walla

- 5월 12일, 13일 Balloon Stampede

- Walla Walla 근처에는 커다란 풍력발전 시설도 있다고 함


Palouse Falls

- 운전해서 약 4시간~4시간 반 정도 거리. Walla Walls 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한꺼번에 가 볼 생각.

April 8, 2007

망할 놈의 일기예보

한국 기상청이 일기예보 못한다고 욕을 많이 먹는데, 사실 여기도 만만치 않다 -_-

물론 워낙 날씨변덕이 심한지라(예컨데,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는데 한 시간 후에 창밖을 보면 비가 내리고 있기도 -_-;;) 예측이 힘들다는건 알지만, 적어도 대략적인 경향 정도는 제대로 알려줘야 하는거 아닌가 싶다. 물론 대개의 일기예보가 "구름이 끼는 날씨에 해가 날 가능성이 있고, 비가 올 가능성도 있다" 는 식으로 이루어지긴 하지만;;

지난주 내내 날씨가 좋다가, 일요일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어제는 부랴부랴 튤립 페스티발에 다녀왔다. 어제도 그리 날씨가 좋은건 아니라서 흐린 하늘에, 저녁 때가 다 되어서야 잠깐 해가 나는 정도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라디오를 틀어보니 밤 사이 계속 국지적인 소나기가 내리고, 내일도 그 분위기로 쭉 갈 거라는... 튤립 페스티발을 즐기기엔 그리 좋은 날씨가 아니었지만, 다음날 날씨가 저러니 그래도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다녀오긴 뭘 잘 다녀와. 창 밖으로 보이는 오늘 날씨는 구름 한 점 안 보이는 화창한 봄날씨를 자랑하고 있다;; 오늘 페스티발 간 사람들은 정말 좋겠구만 ㅠ_ㅠ 아까워서라도 주변에 가까운데라도 나가서 돌아다녀야겠다;;

ps. 훗, 결국 오후에는 비왔다;;

April 19, 2007

우리 안의 인종주의

Virginia-Tech 총격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사건이 벌어진 미국이 시끄러운건 이해가 되지만, 당혹스러운 것은 한국에서의 소란이다. 끔찍한 사건인건 분명하지만 이라크에서 수백명이 죽어가도 뉴스 기사 한 번 클릭 안하던 사람들이 이 소란을 피우는건 분명 인명의 소중함 때문은 아니다. 키워드는 단 하나다. "한국인" 심지어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으니 한국 정부가 미국민들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니, 내가 보기엔 그냥 그런 주장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이 "꽤" 있다.

대조적인건 미국 사회의 분위기다. 뉴스에서는 거의 24시간 이 문제를 방송하고 있지만, 실제 "Korean"이라는 단어를 듣기는 힘들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미국 사회가 비극에 대처하는 방식은 책임을 질 희생양을 찾는게 아니라, 우선 결속을 다지는 것부터 시작된다. 누가 잘못을 했니,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는 나중 이야기다. 추모 행사에서의 연설들은 "We will prevail(우리는 극복해낼거다)", "We are Virginia-Tech(우리는 버지니아 테크다)" 같은 메세지를 담고 있었다. 책임과 분노를 돌릴 외부의 적 없이도 이들은 스스로 치유하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한국 사회와 미국 사회가 얼마나 서로 다른 맥락으로 같은 사건을 대하는지가 드러난다. 같은 사건을 두고 미국 사회는 그것을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한 비극으로 이해한 반면, 한국 사회는 그것을 '한국인'과 '미국인' 간에 벌어진 인종의 문제로 접근했다. 아니라고 반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이 크나큰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 뿐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건을 인종의 문제로 접근한다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어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사진이다. 사건의 진범이 알려지기 전 어느 포탈의 뉴스에 달린 덧글인 것 같은데, 나는 이 글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다시피, 우리나라에도 몇 명의 중국 유학생이 있는데 방치해도 되냐는 글부터, 심지어 일본의 난징 대학살이 이해된다는 망언(!!)까지 넘쳐나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범인이 외국인으로 밝혀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끔찍하지 않은가.

미국민에 사죄해야 한다는 과잉반응(?)에서도 나는, "감히" 한국인이 미국인을 살해했다는 인종주의적 열등감의 혐의를 강하게 느낀다. 물론 그저 그들이 좀 과도하게 착한(혹은 착한 척하는) 거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만 보기엔 호들갑의 강도가 너무 세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에조차 둔감한 사람들이, 군인도 아닌 한 개인, 그것도 형식적인 국적만 한국인이고 미국에서 자라나 미국에서 살아온 한 개인의 범죄에 국가가 사죄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폭넓게 공감하고 있다는 것도 그 같은 혐의를 굳히는 또 다른 이유다. 한국인이 언제부터 그렇게 국제적 윤리의식이 강했단 말인가.

재미동포 사회가 이번 사건 이후 보이는 강박적 공포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상대도 세상을 바라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미국인들이 한국인들에게 린치를 가하거나 불이익을 줄 것이라는 두려움이 동포 사회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미국인들의 반응과 전혀 상관없이 동포사회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위기의식이 퍼지는 것은 이렇게밖에 이해할 수가 없다. 본래 공포는 자기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을 외부에 투사할 때 생겨나는 것 아니던가. 지금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인들의 분노가 아니라 그들에게 투사된 우리 내부의 인종주의가 아닐가 싶다.

April 22, 2007

1차 봄나들이 완료

화려했던 봄나들이 계획의 첫번째였던 꽃구경 사진들 정리가 끝났다. 오랜만에 필름 스캐너 돌리려니 두 배로 힘이 드네 ㅎㅎ 그래도 색이 제법 잘 살았다. 뿌듯.

UW 벚꽃

튤립 축제

다음 계획은 열기구 축제 등등인데, 거리가 좀 멀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요즘 일이 좀 바빠서 주말 계획 세우기가 여의치 않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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