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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07 Archives

March 13, 2007

I'm back

짧았던 2주간의 한국 출장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

갈 때 비행기는 괜찮았는데, 올 때는 유난히 힘들게 타고 온 듯. 가뜩이나 잠도 잘 안 오는데, 옆에 앉은 인도 사람은 비행 내내 위스키니 맥주니 마셔대면서 버스럭대더라 -_-+ 그나마 비행시간이 2시간 정도 짧은게 다행.

워낙 빠듯했던 일정이라 미처 사람들도 다 못 만나고 돌아왔다. 그나마 우선 순위를 조정해서 보고픈 사람들만 겨우 보고 돌아왔는데, 돌아오니 사장님께서는 소개팅이라도 좀 했냐고 물으시네. 아는 사람 만날 시간도 없었는데 모르는 사람 만날 시간이 있었겠습니까!!

대략 1년여만에 나간 한국은 기억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신없었다. 특히 서울. 뿌연 공기에 높은 빌딩들 사이로 사람들은 버글대고, 차들은 왜 그렇게 무섭게들 운전을 하는지. 아무래도 나는 도시보다는 전원 생활이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비행기 타려고 인천 공항 돌아오는 길에 공항 근처 아파트를 보면서 "그나마 여기가 낫네. 나중에 한국 오면 이 근처로 집 구해야하나" 라는 생각도 -_-

가방 안에 책이 한 짐이다. 배송비 아껴보겠다고 담뿍 주문을 해서 들고왔는데, 수화물 중량 초과로 추가 비용 3만원 낼 뻔 했다 -_- 다행히 공항의 이쁜 언니가 이번엔 그냥 해주겠다고 해서 패스. 다음에는 정말 중량 신경 쓰면서 짐을 싸야 할 것 같네.

아아.. 피곤하다. 화요일 저녁에 출발해서 화요일 오전에 도착하는 일정이다보니 고생한거에 비해 주말까지는 그대로 남아 왠지 억울한 느낌도 든다. 그래도 이번 주말은 간만에 여유 있게 지낼 수 있을테니. 주말까지 힘내서 화이팅!!

March 17, 2007

Jet Lag

이번에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그야말로 최악의 비행 중 하나였는데, 옆에 앉은 인도 남자는 계속 과자봉지 부스럭대면서 술을 마셔대는 데다가 사방에서 아기가 울어대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게다가 평일에 돌아오는 바람에 쉬지도 못하고 다음날 바로 출근해서 일하는 바람에 최악의 시차적응 실패로 고생하는 중. 어제는 몸이 좀 나아지나 싶었는데 지금 이렇게 새벽 4시에 깨서 글을 쓰고 있네 -_-

그제는 하루종일 말 그대로 비몽사몽. 특히 점심 이후로는 머리가 멍하고 몸까지 오슬오슬 추워서 도무지 뭔가를 집중해서 할 수가 없었다. 겨우 버티다가 퇴근해서는 밥 차려먹고 가능한 오래 버티다 잠든게 오후 10시 반. 거의 정신을 잃다시피 잠들었는데, 번쩍 정신이 들어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반이었다 ㅠ_ㅠ 성질 한 번 버럭 내고 다시 잠들었다가 또 깨니 3시 반이고, 뒤척대면서 4시 반까지 버티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그대로 버티다간 또 하루가 멍하게 지나갈 것 같아 난해한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근데 평소면 10분이면 눈이 감겼을 그 책이 왜 그리 잘 읽히는 것이냐!!! 30분 넘게 읽고 있다가 이대로면 밤 새는거 금방이다 싶어 책을 덮었다. 다음 작전으로는 이불 속에 최대한 몸을 또아리를 틀어 몸 전체로 온기가 퍼지게 만드는 방법을 선택. 오오.. 효과가 있었다. 그래도 6시 정도에는 잠이 든 것 같았고 8시에 일어나니 그런대로 버틸만하다는 느낌.

덕분에 어제는 그럭저럭 건전하게 하루를 보내고, 밤 12시 정도까지 안 자고 버티는데 성공. 12시 경에는 엄청나게 졸리긴 했지만, 이 정도면 시차적응이 되겠구나 싶었는데.. 또 새벽 4시에 깨 버렸다 ㅠ_ㅠ 그것도 잠깐 화장실 가고 싶어 깨는 정도가 아니라 삽시간에 정신이 말똥말똥 해지면 어쩌란 말이냐구우우우~ 어흑. 그래도 오늘은 휴일이라 아침에 회사 가야한다는 강박은 없어 좋네.

조금 놀다가 어떻게든 다시 자려고 시도해 봐야쥐 ㅡ,.ㅡ 근데 이 시간에 깨면 왜 이리 배가 고픈지.

March 18, 2007

St. Patrick's Day

이미 지나긴 했지만, 어제(3월 17일)는 St. Patrick's Day 라고 하는 날이었다. 사실 미국 자체의 국경일이나 명절은 아니고 아일랜드인들의 명절로 아일랜드에서는 3월 17일이 공휴일이다(이번 해는 토요일과 겹쳐서(!!!) 다음주 월요일에 쉰다고 한다). 미국에 워낙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많기 때문에 여타 민족들의 명절들(에컨데 우리의 설날이자 중국인들의 설날인 Chinese New Year는 China Town 같은 곳만 시끌벅적하지, 전체적으로는 조용하다)에 비해 꽤 떠들썩한 주간이 되곤 한다. 알고보니 케네디도 아일랜드계라고 하네.

St. Patrick 은 기원후 4~5세기 경 아일랜드에 로마 카톨릭을 크게 퍼뜨린 인물으로, 아일랜드인 수호성인이다. Irish Church 같은 곳에 보면 녹색 옷을 입고 뱀을 밟고 있는 인물이 그려진 스테인드 글라스를 볼 수 있는데, 이 인물이 바로 St. Patrick 이다. 아일랜드에는 뱀이 살지 않는데, 전설에 의하면 St. Patrick 이 아일랜드에서 뱀을 몰아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과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아일랜드에 뱀이 살았던 적이 아예 없었다고 한다. 카톨릭에서 뱀이 상징하는 바를 생각해보면 아마 당시 아일랜드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드루이드교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싶다.

월드컵 같은데서 종종 봐서 알겠지만,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색은 녹색이다.(심지어 해리포터에 나오는 퀴디치 월드컵에서도 ㅋㅋ) 아마도 St. Patrick의 옷 색에서 유래한게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인지 St. Patrick's Day 에는 녹색이 들어간 옷을 입는게 전통. 3월 17일에는 녹색 옷을 입은 아일랜드인들이 거리로 나와 행진을 하며 St. Patrick's Day를 자축한다. 특히 미국 건국 초기부터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많이 자리를 잡은 동부 도시(대표적으로 보스턴)들은 도시 전체가 녹색으로 출렁이곤 한다고 한다. 심지어 2005년에는 시카고 강에 염료 같은걸 풀어서 강 전체를 녹색으로 물들이는 짓을 하기도 -_-

아일랜드인이 아니더라도 St. Patrick's Day 에는 녹색을 입어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특히 학교 같은 곳에서는 난리가 나는데, 옷에 녹색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꼬집히기 때문. ㅋㅋ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 옷 입는 스타일에 녹색이 들어가기가 쉽지가 않은데, 다행히 녹색 옷이 있어서 차려입고 나섰다. 기념으로 사진 한 방!!

PICT1121.JPG

March 19, 2007

나는야 한국 사람

아침으로 토스트를 구워 먹는데, 이번에 산 식빵이 Milk & Honey 라고 되어 있는데 좀 눅눅한 느낌이 들면서 느끼하다. 거기에 치즈까지 한 조각 끼워넣어 먹으니... 음;;

잠시 어떻게 느끼함을 참아보려다가 얼른 나가서 냉장고를 열고 총각김치 한 조각을 베어먹고 왔다. 흑, 이 맛이 역시 최고다. ㅡ.ㅜ

March 24, 2007

그 해 여름

어제 저녁은 간만에 금요일 저녁의 여유(흑, 다음날 아침에 일찍 안 일어나도 된다)를 만끽하며 영화 한 편을 봤다. 회사 사람들이 카피해준 영화가 몇 개 있었는데, 다른건 다 무슨 영화인지 알겠는데 이 영화(<그 해 여름>)는 전혀 사전 정보가 없어서 보기 시작.

영화 자체는 너무 평이했다. 사실 진부한 스토리에 클리셰로 범벅이 된, 살짝 평균 이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지는 영화였기 때문에 진지하게 영화평을 쓰고 싶은 생각은 안 든다. 그래도 배우하고 캐릭터가 나름 인상적인 부분이 있는데,

우선 배우 이병헌은, 약간 미스캐스팅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생이라고 하기엔 이젠 약간 나이들었다는게 느껴지고(요즘 대학가 가보면 대학생들이 얼마나 어린지(!!) 느낄 수 있더라), 그렇다고 반백의 노교수로 분하기에는 얼굴에서 드러나는 삶의 깊이가 너무 얕다. 배우 자체보다도 흥미를 끄는건 이병헌이 분한 캐릭터다. 뭐 캐릭터 자체가 좋다기보다, 어째 실제 인물인 김진균/김세균 교수 형제분들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 반백의 장발(?)도 그러하거니와, 두 분 모두 역시 나중에는 사회 참여적인 학자가 되었지만 대학생 때는 날라리(?)였다고 하고.. 집안이 유복했다는 설정도 비슷. 김진균 교수님은 2004년 지병으로 별세하셨다. 뭐, 지극히 주관적인 인상이니 꼭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리고 수애. 흑, 이쁘다. 뭐랄까 요즘 보통 예쁘다고 하는 타입하고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독특한 매력을 가진 배우. <나의 결혼 원정기>에서는 강단있는 모습이 좋았는데, 여기서는 좀 청순가련형이다. 사실 캐릭터 자체는 그닥 인상적일게 없는데, 그 역을 소화한 배우가 너무 예쁘게 잘 어울려서 눈길이 가는 경우.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약간 촌스러운(?) 옷차림이 왜 그리 이뻐 보이는지 ㅎㅎ

참 오랜만에 연예인 보고 가슴이 설레보네 ^^;

March 29, 2007

신입생 환영회, 그리고 나

대학교 때 일이다. 요즘도 있겠지만, 매년 초 대학에서는 '새내기새로배움터(새터)'라는 행사가 열린다. 일종의 신입생 캠프인데, 순수하게 학생회 주관의 행사라 학교 측의 보조는 어느 정도 있지만 대부분 학생들이 직접 뚝딱거리며 준비하고 운영하는 행사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정례화되고 규모도 있는지라 지도교수님들도 매번 신입생들에게 인사도 할 겸 들리곤 하는, 나름대로 공식 행사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3학년 때(97년), 당시 학내에서는 양성평등 및 학내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에 이러한 활동들이 활발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아무튼 문제는 이러한 정당한 문제제기가 당시 학생회를 운영하고 있던 기존의 '운동권' 남성들과 어느 정도 불편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운동권 문화 내에는 가부장적 가치관이 폭넓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때문에 운동권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학생회 차원에서는 대놓고 부정하지는 못하나 그렇다고 탐탁치는 않아하는, 다시 말해 그리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로 이 활동들을 대했었다. 여성 활동가들 입장에서는 운동권이라는 사람들은 또 하나의 억압을 창출하는 권위적인 마초들이었고, 몇몇 운동권들 입장에서는 여성 활동가들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를 가지고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에 불과했다.

자, 어쨌거나 서로의 명분을 부정하지 못하는 이상 양쪽의 관계는 그저 "불편한" 사이 이상은 아니었는데, 학생회가 주관하는 새터에서 양쪽이 맞부딛히는 상황이 발생했다. 여성 활동가들 입장에서는 새터는 새로 대학에 들어오는 신입생들과 양성평등과 학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동시에, 매년 새터에서 반복되는, 각 과에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남성중심적 문화에 문제제기를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예컨데, 각 과에서 과가(과 노래)라고 지어부르는 노래에는 성적 표현들이 담긴 경우가 많았으며, 술을 강권한다던가 술에 취한 여학우의 몸을 더듬는 일 등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성추행 같은 경우는 그나마 금방 문제의식이 공유가 되었지만, 문제는 각 과들이 나름대로 전통(?)으로 삼아오던 것들에 문제제기가 이루어지자, 발끈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발끈하는 사람들의 주된 논지는 "너무 과민반응 아니냐" 였다. 다 재밌자고 하는 얘긴데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누구에게는 재밌는 일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수치심을 줄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당시 기계과 같은 경우는 구호로 "정력 기계"와 같은 문구를 사용했는데, 이게 실제로 사라지기는 그로부터 2~3년이 더 걸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과에는, "지신밟기"가 있었다. 전통문화 중 하나의 "지신밟기"와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 이 행사는 새터에서 단과대 전체가 함께 모이는 행사 후에 행사장에서 숙소로 돌아올 때 남학생들이 죽 늘어서서 상채를 숙여 다리를 만들고 그 위를 여학생들이 밟고 숙소까지 오도록 하는 놀이였다. 기억하기에는 비단 우리과만이 아니라 공대의 많은 과들이 해왔던 전통(?)이었는데, 암튼 그 해 우리과 내에서도 이 행사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밑에 깔리는 역할을 하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위에 올라가는 여학생들을 두고 몸무게가 어떠니 하는 말들이 오가는게 다반사였고, 심지어는 올라간 여학생이 떨어져 땅을 밟으면 과가 일년 내내 재수가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여학생들에게 수치심을 줄 수도 있고, 게다가 위험하기도 한(떨어져서 다칠 수도 있다) 행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과, 전통적으로 별 문제 없이(?) 해왔던건데 뭘 새삼스래 문제삼냐는 의견이 충돌했던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후자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뻤던건, 무엇이 옳은가를 판단하기보다는 양쪽의 의견을 적당히 절충하고자 했었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이 행사를 할지 말지 결정할 책임이 있는 위치에 있었는데, 역시나 결정에 책임이 있었던 다른 한 친구는 별 이상한걸 가지고 문제삼는다며 아예 일찌감치 논쟁에서 빠져버렸다. 덕분에 절충을 시도했던 나는 논쟁의 한가운데에 서서 지신밟기를 하지 말자는 사람들의 문제제기를 온 몸으로 육탄방어하는, 다시 말해 지신밟기를 죽어도 해야겠다는 입장이 되버리고 말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전통이니까"라는 말밖에는 할 얘기가 없는 상황이었던지라, 나는 온갖 궤변들과 잡설들을 늘어놓으며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 아, 진짜, 이 때 내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면 쪽팔림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런 기억은 왜 이리 안 희미해지는지.

어쨌거나, 실제 행사날이 되어서 나는 (어리석게도) 역시나 절충적으로 지신밟기를 짧은 구간에서만 하고 숙소로 돌아가자는 결정을 내려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길었던 짧았던, 그건 행사를 진행한거였다. 덕분에 새터 이후 나는 지신밟기를 옹호한 것에 대한 반박과 더불어 결정의 독단성에 대한 비판까지 한무더기로 감수해야했고, 자기 의견 없는 어설픈 절충이라는게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달리는 기차 위엔 중립이란 없다는걸 온몸으로 배웠다고나 할까. 절충을 시도하거나 중립을 가장하는건 쉬운 선택이지만, 그건 사실 자기 의견을 갖는 대신 대세를 따르겠다는 기회주의에 가깝다. 가장 어려운 선택은 옳은 일과 그른 일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옳은 일과 '쉬운 일' 사이의 선택인 법이다.

약간 딴 길로 이야기가 샜지만, 새삼스래 옛날 기억을 들쳐낸 까닭은, 요사이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벌어지는 일들 때문이다. 수많은 네티즌들은 이들을 비난하고, 당사자들은 "과장되었다", "다 같이 즐겼다"와 같은 변명을 하는데, 폭력의 강도는 다를지언정 이들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환영행사를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고, 이것을 '전통'으로 받아들이는 의식구조는 나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고 느껴진다.

비오는 날 정문앞 팬티바람 얼차려
대학폭력 ‘시끌’하니 조심조심 ‘얼차려’
대학 신고식, 폭력 넘어 성희롱

이해한다. 하나의 집단이 관습적으로 해오던 일이 외부의 비난에 부딛혔을 때 당사자들이 느끼는 반발감을. 이해한다. 억압/피억압의 계급구조가 영구적인게 아닌 이상(시간이 지나면 당했던 사람들이 선배가 되어 가해자의 위치에 선다) 이것을 그저 하나의 통과의례로 생각할 수도 있음을. 하지만, 앞서도 말한 간단한 사실, 누군가의 즐거움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들이 원하는 동질감이라는 것들이 꼭 폭력적인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을음 깨달아야 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들 당사자들의 심리이다. 입시 교육 체제 안에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할 기회를 박탈당한 이 땅의 청소년들이, 어떤 집단적 정체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대체하는 현상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설혹 환영회에서 자신이 모욕을 당하는 경우조차도 그것을 집단 내부로 들어가는 통과의례로 받아들이는 이유 역시, 어떤 동질적 집단에 소속되기를 바라는, 그래서 누군가가 나의 정체성을 규정해주기를 바라는 강한 심리적 욕망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모든 목소리에 대해 이들은 강한 반발을 느끼는 것 역시, 이것을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어렵사리 획득한 집단적 정체성에 대한 공격으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 나는 이들을 향한 외부의 비난이 다분히 소란스럽게만 느껴진다. 물론 문제제기는 필요한 일이다. 한겨레 신문의 문제제기가 없었다면, 이러한 관행은 여전히 계속되며 개개인의 마음 속에 폭력을 내면화시키고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을 밀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외부의 지적은 훌륭한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적어도 표면적으로나마 관행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희생되는 이들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게는 문제가 가려질 뿐이다. 네티즌들의 비난이 거세지고 말초적일수록(도대체 전문대라서 그렇다는 식의 이야기가 어찌 그리 공공연하게 발언될 수 있단말인가), 징계니 감사니 어쩌니하는 관료주의적 처방만이 횡횡할수록, 그들의 마음에는 자물쇠가 채워질 뿐이다. 그들은 계속 열린 개인을 배제하는 닫힌 집단을 유지할 것이며,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역시가 같은 식의 파벌과 집단에 의존하는 퇴행적 심리가 유지될 것이다.

기적에 가깝겠지만, 나는 그들 학교에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교수들이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이들을(대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성장할 기회가 없었던 겉늙은이들이다) 질책하기보다는, 함께 문제를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솜씨 있는 강사를 초빙해 집단적 정체성과 개인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 건강한 개인이 자리잡기를, 개인에 앞서 집단을 내세우는 폭력이 사그라들기를 바란다.

제발.

March 30, 2007

봄날에

봄날에 - 오세영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것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봄이 오면
잎새 피어난다는 것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잎새 피면
그늘을 드리운다는 것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나, 너를 만남으로써
슬픔을 알았노라.
전신에 번지는 이 초록,
눈이 부시게 푸르른 봄날의 그
꽃 그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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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 has come.
Ind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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