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도서관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 공간이다. 사전적 정의를 따르면 도서관은 "온갖 종류의 도서, 문서, 기록, 출판물 따위의 자료를 모아 두고 일반이 볼 수 있도록 한 시설"인데, 내가 느끼는 도서관은 이런 기능적 정의를 넘어서는, "공간"으로서 독특한 매력을 가진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도서관은 먼 옛날 점토판에 쐐기문자를 기록하던 시절부터 인간 지식의 집결지, 보관소로 기능해왔다. 때문에 도서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 되곤 하는데, 보르헤스야말로 이 상징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도서관에서 책이 가득한 서가 한가운데 서 있으면 보르헤스의 우주가 뭔지 어렴풋이 느낄 것 같기도.
도서관에 대한 내 감정의 뒤편에 이렇게 거창하고 그럴싸해 보이는 배경을 깔아놓는게(^^;) 나 나름의 로망이라고 한다면, 현실적으로 내가 도서관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편안함이야말로,

요런데(British Library)도 가보고,

요런데(New York Public Library)도 가봤지만,

요렇게 생긴 동네 도서관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다 ^^; 물론 위의 두 도서관이 뭔가가 부족하다는게 아니다. 다만 여기서의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거리도 멀기 때문이고, 가까운 곳에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는 곳이야말로 최고가 아닐까 싶다. 주말 오후,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뽑아들고 도서관에 들어가서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꺼내들고 사진에 보이는 창가 소파(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인데, 저 날은 저 할아버지가 계속 차지하고 있었음 ㅠ_ㅠ)에 앉아있으면, 뱃속으로 퍼지는 커피의 온기만큼 느긋함이 몸 곳곳으로 퍼지는 기분이 든다.
예전에 고등학교 때에도 나는 조용한 자율학습 시간보다는 약간 어수선한 쉬는 시간이 훨씬 더 집중이 잘 된다고 느꼈었다. 이 습관은 여전한데, 고시생들에게 점령당해 책이라도 떨어뜨렸다간 수십개의 원망의 눈초리가 꽂히기 쉽상인 한국의 도서관에서는 도저히 집중해서 책을 읽는게 불가능했다. 나같은 사람에게는 스타벅스 같은 까페나, 출퇴근길의 지하철, 아니면 이 동네 도서관 같은 곳이 책 읽기에는 정말 딱 좋다. 이게 내가 우리 동네 도서관을 좋아하는 두번째 이유인데, 약간 어수선하다. 좋은 의미로.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도서관 열람실 한 쪽에는 이렇게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고, 도서관 회원이면 누구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프린트도 공짜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숙제하는 중고등학생들도 자주 눈에 띈다. 한 쪽 테이블에는 숙제를 잔뜩 펼쳐놓은 아이들이 앉아 있고, 그 앞에는 아이의 부모가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장면은 낮설지 않은 풍경이다. 다른 쪽 구석은 아동 도서 및 장난감들이 있어 아이들이 바닥에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그림책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심지어는 금요일 오후면 보드 게임 대회 비슷한게 열려서(물론 이건 별도의 방에서 열린다) 종종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환호성 소리도 들리곤한다.
한마디로, 이 곳의 도서관은 일종의 종합문화센터 같은 성격을 가진다. 당연히 이 곳에서 고시실 같은 정적을 기대하는건 무리다. 어느 정도의 어수선함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지만, 그렇다고 선을 넘는 사람도 없다. 어린 아이들조차 신기하게도 이 분위기 속에 적당히 뭍어든다. 참 "적당"하다고 말할 수 밖에. 이 적당히 자유로운 공기를 커피와 함께 홀짝이며 소파에 몸을 파묻는 그 기분이 나는 좋다.
감성적인 충족 외에도 이 곳의 도서관 시스템은 상당히 흥미롭다. 우선 이 곳 도서관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도시 하나 둘 씩 있는 도서관들이 네트웍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을 형성한다는 것. King County Library System(KCLS)가 이 도서관 시스템의 정식 명칭인데 http://www.kcls.org 에서 이 도서관 시스템에 관한 정보와 함께 도서 DB에 접근할 수 있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KCLS 에 속한 Issaquah Library다.
이 Library System은 굉장히 편리하면서도 효율적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책이나 DVD를 대출 신청을 하면 자신이 편한 곳의 도서관으로 책을 배달해준다. 예컨데 낮에는 회사에 있으니까, 회사 근처의 도서관으로 책을 가져다 달라고하면 그 곳으로 책이 배달된다. 반납 역시 편한 곳에 아무 곳이나 반납하면 되니 상당히 편리하다. 도서관 입장에서는, 각 도서관이 모든 책을 비치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유명한 책들이야 각 도서관에 몇 권씩 비치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책들은 몇몇 도서관에서만 구입해 모두가 공유를 할 수 있다. 도서관 간에 책을 옮기는 비용이 추가로 들겠지만, 책을 구입하고 유지, 관리하는 비용 측면에서 상당히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가 도서관에서 많이 빌리는건 책보다는 DVD다. 그 중에서도 고전영화들은 거의 없는게 없을 정도로 구비가 잘 되어 있어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영화사의 고전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 최근 영화도 DVD가 발매되면 거의 발매 당일로 도서관에 들어온다. 최신영화는 보통 80~100 copy 정도가 KCLS에 등록되는데 보통 등록 며칠 전부터 수백~수천명이 예약을 하기 때문에 최신 영화를 보려면 꽤 기다려야하긴 하지만 ^^; (Miss Little Sunshine 을 한 달 전에 예약해놨는데, 아직도 600번대 순번이다 -_- 최신 영화를 빨리 보고 싶으면 돈 내고 Blockbuster나 Hollywood, Netflix 같은데 가입해라.)
암튼, 이래저래 도서관은 나에게 아주 유용 & 편안한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미국 생활 너무 적응 잘한다고도 하고, 그렇게 혼자 노는거 좋아해서 큰일이라고도 하고;; 그래도 주변에 이렇게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다는거, 정말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밖에서 본 동네 도서관 모습 ^^

ps. 언젠가 한 번은 써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글인데, 미루고 미루다가 한국 들어가기 전에 반납할 책들 정리하다고 생각이 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