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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06 Archives

July 25, 2006

세상이 변한다는건

지지난 일요일 저녁의 일이라고 한다.

회사 선배 한 명이 집에서 쉬고 있는데, 누가 초인종 벨을 눌러서 나가보니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이 집이 자기 약혼녀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인데 그녀가 그 집에 꼭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한다. 선배가 허락하자(물론, 낯선 사람에게 집구경 시켜주는건 좀 위험하긴 하다 -_-;) 차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자가 나와서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선배 말로는 그 여자는 계속 엄청나게 감동했다고 한다. 자기가 어렸을 때 놀던 나무 그늘, 자기 아버지가 직접 만든 창문틀, 가족이 모여 앉아 있던 벽난로.. 내가 옆에서 본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얼마나 감동스러워 했을지, 그 표정이 떠오르는 것 같다.

문득, 내가 어릴 적 놀던 뒷동산은 그 자리에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 때의 그 놀이터는 여전할까. 차고로 내려가는 층계참에 앉아 멍하니 문 틈으로 새어들어온 빛 속을 떠도는 먼지를 바라보던 그 집은 아직 거기 있을까. 나에게도 그렇게 되돌아가볼 공간이 아직 남아 있을까. 아마도, 나에게는 그 어떤 곳도 남아 있지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추억은 종종 매개를 필요로 한다. 우리의 일상사는 너무도 번잡스러워서, 추억은 항상 생각의 저 너머에 잊혀진듯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한 어린 시절의 장난감이나 사진은 아주 손쉽게 우리를 먼 과거로의 시간여행으로 이끌 수 있다. 때로는 아주 작은 감각 - 예컨데 냄새나 소리 등 - 만으로도 추억은 깊은 망각의 숲을 헤치고 나와 우리를 눈물짓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제 "공간"이라는 매개는 더 이상 만날 수가 없다. 나의 추억의 일부도 그와 함께 영원히 묻혀버리지 않았을까.

세상이 변한다는건, 그래서 종종 슬픈 일이 된다. 누군가는 나의 그 뒷동산을, 그 놀이터를, 그 집을 허물어 번듯한 새 건물을 올렸겠지. 생활이 편해지고 집값도 오르고, 미친 듯 부수고 새로 지어올리는 도시의 톱니바퀴 속에 누군가의 추억은 그닥 지켜질만한 가치가 없어 보일테니까.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 수백년 잠들었다 깨어난 냉동인간에게 그 때 그 시절을 남겨주자는 이야기도 아니잖어. 그저 두어 세대가 함께 공유할 수 있을 정도의 호흡만 가지면 될텐데. 오래된 것은 구식이고 무조건 새 것이 좋다는 생각만 버릴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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