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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05 Archives

September 4, 2005

러브레터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를 읽다가, 한 때 읽으려다 포기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졌고, 그보다 먼저 영화 "러브레터"(이와이 슈운지)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니, "러브레터"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등장하는건 단지 아련해 보이는 제목 때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사건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인 감각으로 재구성된 섬세한 추억을 보여주는 책이다(물론,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기억은 억지로 떠올릴 때는 무덤덤하다가도, 어떤 계기로 인해 무심결에 환기될 때는 너무나도 생생하고 가슴 저리게 다가오곤 한다. 책상 서랍 한구석에서 어린 시절 친구에게서 받은 선물을 발견한다든지, 책장을 넘기다 옛 애인과 찍은 빛바랜 사진을 우연히 발견한다거나 할 때면, 마치 사물에 우리의 감정이 깃들어 있다가 손을 타고 흘러드는 것처럼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러브레터"도 바로 그런 기억, 한 구석에 접어두었다가 옛 장소나 물건 등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나곤 하는 첫사랑의 기억을 그린 영화였던 것 같다. 이 때 되살아 나는건 "그 아이는 도서관 창가에 서서 책을 읽고 있었다"가 아니라, 그 순간의 눈부신 햇살, 바람에 사각거리던 커튼, 헌 책 냄새, 두근거리던 가슴, 그런 느낌들이다.

...

맥주 한 캔과 함께 구미의 밤은 깊어만 간다.

September 13, 2005

사평역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에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September 22, 2005

프린스 에드워드 섬

...이 어디냐면, 바로 빨강머리 앤의 배경이 된 섬이다. 관광코스로 개발되어 빨강머리 앤이 살던 그린게이블스나 숲길 등이 소설과 똑같이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예전에 얼핏 들어본 후에 캐나다 서북부의 어딘가에 있으니 나중에 차 끌고 한 번 가볼까 싶었으나(캐나다 서북부래봐야 시애틀에서는 라스베가스보다 가까울테니)...

풀썩.. 오늘 문득 생각나 찾아보니 서북부는 커녕 캐나다 동남쪽 구석에 있는 섬이더라. 미국 메인주 바로 위니까, 뉴욕 쪽에서 차끌고 갈만한 거리(물론, 그래도 약 850마일=1350km -_-)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서북부에 붙어있다고 상상을 했던건지.

10월 말쯤에 휴가를 내서 뉴욕에 놀러갈 생각이었는데... 차 렌트해서 함 도전해볼까? +_+

September 24, 2005

정운영 교수님 별세

마이 갓. 한동안 안보이신다 싶었다. 강의실에서도, TV에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활동하시던게 엇그제 같은데 지병이 있으셨구나. 향년 61세시면 아직 하실 일이 많이 남으셨을텐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래는 한겨레 부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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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 전 <한겨레> 논설위원 별세

정운영 전 <한겨레> 논설위원(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24일 오전 8시54분 삼성서울병원에서 신장 질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1.

고인은 서울대와 같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기자, <한겨레> 논설위원을 거쳐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경기대 경제학부 경제학전공 부교수로 있다. 경제분야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활동했으며, 저서로는 <레테를 위한 비망록>(한겨레) <광대의 경제학>(까치)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시지프의 언어>(〃) <중국경제산책>(생각의 나무) 등이 있다. 유족으로 부인 박양선(55)씨와 두 딸 정유경(34)·유진(33·제일기획 대리)씨가 있다, 장례식 27일 오전 11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울시립장묘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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