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를 읽다가, 한 때 읽으려다 포기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졌고, 그보다 먼저 영화 "러브레터"(이와이 슈운지)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니, "러브레터"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등장하는건 단지 아련해 보이는 제목 때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사건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인 감각으로 재구성된 섬세한 추억을 보여주는 책이다(물론,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기억은 억지로 떠올릴 때는 무덤덤하다가도, 어떤 계기로 인해 무심결에 환기될 때는 너무나도 생생하고 가슴 저리게 다가오곤 한다. 책상 서랍 한구석에서 어린 시절 친구에게서 받은 선물을 발견한다든지, 책장을 넘기다 옛 애인과 찍은 빛바랜 사진을 우연히 발견한다거나 할 때면, 마치 사물에 우리의 감정이 깃들어 있다가 손을 타고 흘러드는 것처럼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러브레터"도 바로 그런 기억, 한 구석에 접어두었다가 옛 장소나 물건 등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나곤 하는 첫사랑의 기억을 그린 영화였던 것 같다. 이 때 되살아 나는건 "그 아이는 도서관 창가에 서서 책을 읽고 있었다"가 아니라, 그 순간의 눈부신 햇살, 바람에 사각거리던 커튼, 헌 책 냄새, 두근거리던 가슴, 그런 느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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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한 캔과 함께 구미의 밤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