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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일기

에고.. 日자가 무색하게 정말 오랜만에 쓴다. 일주일 내내 감기로 골골거렸는데, 머리가 지끈거리고 코 속이 꽉 막혀있으니 아무 것도 쓰기 싫더라. 덕분에 최근 들어 가장 긴 공백을 만들어 버렸다. ^^;

"춤에 부치는 노래"라는 책을 읽고 있다. 박정애 라는 70년생(그러고보니 '70년 개띠'라는 표현을 기억하는 사람들 있으려나? 97년 총학생회장이 70년생 아저씨라서 놀리듯 그런 표현을 썼었는데.. ^^;) 아줌마(?)의 소설 모음집이다. 전반적으로 소설의 근저에 깔린 것은 여성으로서의 삶, 특히 결혼과 육아라는 틀 속에 갖혀버린 여성의 삶이다. 군데군데 드러나는 80년대말 90년대 초 학생운동의 경험들도 재미있다.

책 속에 '어느 사회주의자의 연인'이라는 단편이 있다. 평생을 비전향 장기수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살아온 여인을 인터뷰하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 남자가 대의를 위해 싸우고 여자가 뒷바라지 한다는 전형적(?)인 구도다. 소설의 말미에 화자는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려다가 이렇게 쓴다. "오늘 한 여자를 만났다. 어느 사회주의자의 흔적을 지닌 그 여자는, 진정한 사회주의자의 인격을 보여주었다." 여기까지였다면 이 소설의 가치는 그닥 높지 않을 것. 압권은 마지막 문장이다. "하지만 나는 그 여자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 내 딸이 그렇게 살겠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따라다니며 말리겠다." 멋지군. ^^

하지만 이 소설 역시 (내가 생각하는)한국 소설 일반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한국 소설을 읽다보면 이게 수필인지 소설인지 분간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적다가 부담스러운 곳에서는 적당히 허구 속으로 피하는 속편한 작법이다. 참신한 설정과 치밀한 공간 창출, 다층적 인물 심리구성 같은 것은 한국 소설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것인가? 아니면 있는데 내가 찾지 못하는 것 뿐일까? 한국 소설을 읽다보면 소설적 상상력에 목마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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