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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02 Archives

June 1, 2002

근황

코 맹맹, 목은 잠기고 가끔 재채기 약간.

음악은 이것 저것. 부담없이 easy listening 쪽으로..

읽고 있는 책은 "칼의 노래", 김훈. 폭력과 미학은 서로 통하는가?

최근 본 영화 "빵과 장미" - 켄 로치가 리얼리즘 감독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낌. 말랑말랑하게 포장된 영화 광고전단은 짜증남.

And wanna say I love you~

June 3, 2002

월드컵

월드컵 4일째. 아직 한국전 경기는 없었지만, 대부분의 경기를 즐겁게 시청 중이다. 아직 강팀들의 컨디션이 최고조는 아니라서(그리고 부상당한 스타들이 많아서) 조금 불만스럽지만 점점 나아질 것이다. 폴란드전은 대학로나 코엑스몰 같은데서 붉은악마들과 함께 응원을 해 볼까 생각 중.

개막전을 보면서(실은 전에 한국vs프랑스 평가전에서도 봤었지만) "역시 프랑스"라고 느꼈던 것이 있다. 국가가 울려퍼질 때 프랑스 선수들은 어깨동무를 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비장한 표정으로 애국가(이름 하곤 -_-;)를 따라부르는 우리 선수들과는 대조적. 그들에게 국가란 경배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평등과 동지애의 상징이 아닐까. 이래서 나의 프랑스 사랑은 계속된다.. ^^;

June 9, 2002

오랜만의 일기

에고.. 日자가 무색하게 정말 오랜만에 쓴다. 일주일 내내 감기로 골골거렸는데, 머리가 지끈거리고 코 속이 꽉 막혀있으니 아무 것도 쓰기 싫더라. 덕분에 최근 들어 가장 긴 공백을 만들어 버렸다. ^^;

"춤에 부치는 노래"라는 책을 읽고 있다. 박정애 라는 70년생(그러고보니 '70년 개띠'라는 표현을 기억하는 사람들 있으려나? 97년 총학생회장이 70년생 아저씨라서 놀리듯 그런 표현을 썼었는데.. ^^;) 아줌마(?)의 소설 모음집이다. 전반적으로 소설의 근저에 깔린 것은 여성으로서의 삶, 특히 결혼과 육아라는 틀 속에 갖혀버린 여성의 삶이다. 군데군데 드러나는 80년대말 90년대 초 학생운동의 경험들도 재미있다.

책 속에 '어느 사회주의자의 연인'이라는 단편이 있다. 평생을 비전향 장기수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살아온 여인을 인터뷰하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 남자가 대의를 위해 싸우고 여자가 뒷바라지 한다는 전형적(?)인 구도다. 소설의 말미에 화자는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려다가 이렇게 쓴다. "오늘 한 여자를 만났다. 어느 사회주의자의 흔적을 지닌 그 여자는, 진정한 사회주의자의 인격을 보여주었다." 여기까지였다면 이 소설의 가치는 그닥 높지 않을 것. 압권은 마지막 문장이다. "하지만 나는 그 여자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 내 딸이 그렇게 살겠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따라다니며 말리겠다." 멋지군. ^^

하지만 이 소설 역시 (내가 생각하는)한국 소설 일반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한국 소설을 읽다보면 이게 수필인지 소설인지 분간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적다가 부담스러운 곳에서는 적당히 허구 속으로 피하는 속편한 작법이다. 참신한 설정과 치밀한 공간 창출, 다층적 인물 심리구성 같은 것은 한국 소설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것인가? 아니면 있는데 내가 찾지 못하는 것 뿐일까? 한국 소설을 읽다보면 소설적 상상력에 목마르게 된다.

June 13, 2002

지방선거

지방선거일이다. 주거지 이전을 안 해 놓아서 투표를 하려면 춘천에 가야한다. 우..;; 이번 투표는 포기 ㅠ_ㅠ. 빨리 주소지 이전을 해야 대선은 제대로 투표할 수 있을 듯.

아까 합정역에서 이문옥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를 봤다. 가까이에서 본건 아니고, 반대편 플래폼에서 선거운동원들과 함께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걸 봤음.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여성 선거운동원과 즐거운 얼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금방 지하철이 도착하는 바람에 자세히는 못 봤지만.. 이문옥씨가 같이 다니는 선거운동원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도 자뭇 궁금해졌다.

쇼펜하우어를 읽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읽기 시작한건 아니고, "쉽게 읽는 쇼펜하우어"라고 정리해서 써 놓은 책이다. 앞부분 조금 읽는데, 역시나 승질머리 드러운 아저씨다. 뭐가 그리 불만이 많은지. 어머니와 주고 받은 편지는 가관이다. -_-;

June 18, 2002

글쓰기

"사랑하는 여인을 신뢰하지 않으면 곁을 떠나가듯이, 가장 아름다운 사고는 기록해두지 않으면 아주 잊혀질 위험이 있다"

쇼펜하우어 아저씨가 한 말이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슴에 내려앉은 감정의 덩어리를 미처 기록해두지 않아 놓친 안타까움은 여러번 경험해 봤기에 공감이 간다. 글쓰기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다.

...라지만, 한동안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막상 글을 쓰다보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건지 까먹곤 한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게 아니라 글쓰기 자체를 강박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100% 동감하는 말은 아니지만, 글이란 가슴에 가득 차서 흘러넘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되씹곤한다.

영화평 하나와, 서평 하나. 현재 끄적이고 있는 글이다. 하지만 영화와 책 모두 시간이 지날수록 내용만 기억날 뿐, 솜털이 곤두서는 듯 했던 당시의 전율이 잊혀지고 있다. 이래서는 무미건조한 소개글(?) 정도만이 양산되지 않을까..

June 19, 2002

월드컵 8강!

정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졌구나..라며 체념하고 있었는데 터진 동점골. 그리고 마침표를 찍는 역전골.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ㅠ_ㅠ

앞으로 8강전, 그리고 그 이후에 또 어떤 경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만한 드라마가 또 있을까. 막판 동점과 역전. 보는 이들 모두를 열광시키는 장렬한 드라마... 우린 해냈다. ㅠ_ㅠ

즐기는 자세

"좋다. 정말 좋다. … 왜 우리는 스포츠를 좋아하나?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반복법처럼 다가오는 이 잔혹성, 이 무례함, 이 불확실성 때문에. 기존 질서에 대한 이런 완강한 거부와 그 거부가 언제나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전제자를 눕히고 최선의 질서를 만들어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눈물 없이 성취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는 익숙한 찬사... 어제의 열광을 떠올리게하는 글이다. 거리로 쏟아져나온 우리들의 열정을 설명하려는 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글은 개막전에서 세네갈에게 패배한 다음날 프랑스의 <르 몽드>지의 사설로 실린 글이라고 한다. 정말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이었다. 만약 다음 월드컵 때 한국이 이번만큼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어떤 반응들이 나올까를 생각해보면 차이는 분명해진다. 축제를 바라보는 그들의 여유로움을 보고 배울 수는 없을까?

오늘의 축제, 우리가 무엇을, 왜 즐거워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애국심 고양", "국민적 통합" 같은 끼워맞추기식 의미부여로 우리의 열정을 퇴색시키지 말자. 축제는 축제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의 권리이다.

그리고 즐거움을 만끽하는만큼 우리가 사랑하는 그 축제를 더럽히는 것들(축구용품을 생산하는 다국적기업의 아동노동 문제라던지, FIFA의 과도한 상업성, 부패 등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June 24, 2002

제발 좀...

인권운동사랑방의 월드컵 논평

즐길건 즐기자. 못난 나라 국민은 즐길 권리도 없는가?

국가에 대한 관념이 강할수록 그 대척점에 서는 개개인의 인권찾기가 힘들어질 수는 있겠지만, 모든 것을 그 틀에 맞추면 곤란하다. 따지고보면 제대로 이슈화를 못해내고 있는 스스로의 역량부족 아닌가? 축제 속에서 하나하나 다 신경써 줄 초인은 누구이며, 그러지 못할거면 즐기지도 말란 주장은 떼쓰는 인상 이상을 주지 못한다.

붉은 악마를 바라보는 언론의 국가주의적 해석은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거리의 축제를 통해 스스로 해방구를 창출한 대중의 역동성이 더 가치있을 수 있다. 소속감을 느낀다는 것은 비로서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이고, 그 사랑에 기반해 "변화"의 의지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적극적인 의미 뺏아오기에 나서지는 못할 망정, 언론의 국가주의적 해석을 그대로 인정해 버리면 어쩌자는건가?

편협한 시각은 진보 스스로의 설득력을 떨어트릴 뿐이다.

June 26, 2002

잘 싸웠다

"당신들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 당신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더 있겠는가. 너무나도 당당하고 멋진 패배였다.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게 아니라면, 어느 누군가는 져야만 하는게 스포츠라면, 그런 당당한 패배 역시 승리 이상의 선물이다.

휘스 히딩크(네덜란드어 발음은 '휘스'에 가깝다고 한다. 거스는 미국식 발음 -_-;). 그라는 인간 자체를 영웅시하고픈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거울이 되어 주었다. 우리 자신을, 우리 사회를 비추어 볼 수 있는 정직한 거울. 그러나, 그 거울 앞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거울에 붙어있는 화려한 장식들을 경배하려 들지 말라. 중요한건 그가 보여준 우리 자신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축구협회가 월드컵 포상금을 차등지급하겠다고 한다. 당신들이 뭔데 그들에게 등급을 메기려고 하는가? 그라운드에 섰든 아니든, 그들은 똑같은 땀을 흘렸고, 똑같은 노력을 바쳤다. 벤치에 대기하고 있는 그들이 아니었다면, 그라운드의 선수들이 그토록 헌신적으로 뛸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 축구 발전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는 축구협회를 꿰차고 앉아있는 노망난 늙은이들이다. 젠장.

June 27, 2002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코엔 형제의 블랙 코미디 영화. 진짜 재밌다.. ^^

주인공의 시종 거의 변화가 없는 표정은 압권이고, 꼬이고 뒤틀리는 스토리에 너무나도 진지하게 튀어나오는 어처구니없는 대사들은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흑백 스크린도 멋지구.

스노우캣의 영화일기에서 소개된 걸 보구 갔는데.. 스노우캣! 당신도 스포일러 역할을 했다구! 각성하랏! s(-_-+)z

너무 재밌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그러니까 27일까지밖에 상영을 안 한다는 아쉬움이.. 대학로의 동숭 아트센터 하이퍼텍 나다 에서 오후 4시 10분 1회 상영하니,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재빨리 가서 보세요~ ^^/

June 29, 2002

버티기~ @_@

ebay에 나온 28-80mm 렌즈의 경매 마감시간이 새벽 6시 15분경. 딱 내가 원하는 화각에 가격도 크게 부담이 없어 이번엔 꼭 따내겠다는 일념으로 도전하고 있다. bid가 얼마 전부터 13에서 멈춘게 나처럼 모니터 노려보고 있는 사람이 꽤나 많다는 이야기 같은데..;; 움.. 제발 $70을 넘어서지 않기만을 빈다. 현재가는 $47

현재 내가 보유하고 있는 렌즈는 50mm 하나와 50-135mm 하나. 화각도 겹치거니와 50-135mm는 마크로 렌즈가 아니라서 답답하다. 광각도 필요하고, 망원도 아쉬워서 아예 렌즈군을 바꿔보려 생각 중. 50mm야 기본렌즈인데다가 f1.4의 밝은 화면이 아까워서 그냥 두기로 하고, 50-135mm나 팔아야겠다.

위의 28-80mm와 세트로 노리고 있는게 75-300mm 줌렌즈. 화각도 거의 안 겹치고, 광각과 망원을 모두 포괄할 수 있어 좋은 세트라고 생각한다. 어두운 곳에서는 스트로보를 쓰거나 50mm f1.4 기본렌즈를 쓰는 방향으로..;;

자자.. 3시간 조금 넘게 남았다. 버티자!!!

June 30, 2002

서해교전

한겨레 싸이트에서 처음 기사를 읽고 든 생각은 "젠장.. 또냐.." 였다. 참 절묘하다면 절묘하다고 할 수 있는 타이밍. 참담해지기까지 하더라. 자, 음모론을 하나 써 보자.

일단 이 음모론의 핵심 주장은 "남한의 극우세력과 북한정권(혹은 북한 군부 내의 강경파)이 모종의 커넥션을 갖고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뒤로 슬쩍 손을 잡은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득실관계를 잘 따져보면 이러한 공생관계는 매우 매력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절묘한 타이밍이 어떻게 극우 세력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지 보자. 일단 월드컵을 통해 응집된 대중적 일체감을 고스란히 국가주의로 이끌 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 경기를 통해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발견했다. 이렇게 모여진 공동체 의식은 자신들의 권익을 침범하는 외부 세력에 대한 단호한 대처로 이어질 수 있는데, 얼마 전 여중생들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에 비교적 많은 관심이 쏠릴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해교전이 발생하면서 그 외부의 적이 '미국'에서 '북한'으로 고스란히 옮겨가게 생겼다. "월드컵 축제 분위기에 찬물" 운운하는 언론 보도는 그러한 경향을 부추기기에 충분하다.

이미 조갑제는 월간조선 5월호와 얼마전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 강연에서 "50대가 20대를 이끌어 좌파적인 30대를 고립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애국가를 4절까지 외워대는 20대를 보며 전율을 느꼈다는 조갑제의 말과, 오늘 터키전이 끝난후 애국가를 굳이 4절까지 선창하던 광화문 응원전(조선일보 전광판 바로 아래서 진행된)의 사회자 모습이 겹치는건 내가 과민한 탓일까? 여기해 서해교전과 사망자 발생이라는 소식은 국가주의를 공고화할 수 있는 얼마나 좋은 호재인가?

북한이 뭘 얻을 수 있을지는 보다 복합적인 문제일 것이다. 극우세력이 다음 정권 때의 대북지원을 약속했을 수도 있고, 월드컵으로 인해 북한 내부에서 남한에 대한 우호도가 다소 높아진 것을 어느 정도 견제하기 위한 것일수도 있다. 이러한 음모에 대한 근거는 드러나게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를 고민스럽게 하는건, 음모가 없다면 북한이 이런 엉뚱한 도발을 통해 얻을게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교전이 발생한 지역은 큰 꽃게어장으로 지금 이맘때, 즉 6월이 최대 성업기이다. 이 어장을 두고 매년 남북이 신경전을 벌여왔던 것은 사실이나, 이번 충돌이 어장을 차지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하긴 힘들다. 당장 교전으로 인해 양쪽 모두 어장에 접근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지금까지처럼 서로 암묵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하며 어장을 공유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 된다. 그렇다면 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남한 극우세력으로부터 모종의 대가를 받기로 하고 무력 시위를 펼친게 아니냐는 의문도 아주 황당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아.. 어쨌든.. 암담한 사건이다.. =_=

ps. 사망자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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