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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를 이야기 하려는게 아니다. 쿨럭..;;

쇼트트랙 때문에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특히 김동성 선수가 1500m 결승에서 어이 없이 실격 처리됨으로써, 사람들의 분노 수위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 덕분에 한국 내 반미감정은 최고조다. 안 그래도 미군 기지의 독극물 방류 사건 등등과 노근리 학살 등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화 되면서 미국에 대한 전통적 시각(미국=우리의 우방)에 균열이 가고 있던 차에, 이번 사건은 결정타를 날림 셈이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작은 헤프닝이 있었다. 다들 알고 있듯이, 조선일보가 내걸었다가 급히 철회한 만평 때문인데... 김동성 선수가 금메달인줄 알고 태극기를 들고 링크를 돌다가, 실격 판정을 접하고 태극기를 내동댕이(?) 친 것을 비난하는 만평이었다. 뭐, 조선일보다운 만평이었다. 감히 국가의 상징을 땅에 내팽겨치다니! 그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러나 상징은 상징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원할 때, 우리를 대표하는 하나의 매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우리이지, 사물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김동성 선수가 내동댕이 친 것이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단지 손에 들려 있던 하나의 사물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이 상징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려서부터 상징 자체에 대한 경배를 배워왔다. 나만 해도 그런 교육을 겪은 세대이다. 저녁 5시(6시?)면 울려퍼지는 애국가를 들으며 국기를 향해 서서 가슴에 손을 얹고 서 있었고(무엇을 하고 있었든 상관없이), 국민교육헌장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외웠다. 왜? 국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넘쳐서? 국민교육헌장이 심장을 전율케하는 감동을 전하는 명문이어서? 농담은 그만하자. 단적으로 말해, 시키니까 따라한거고 그렇지 않으면 혼났기 때문에 따라한거다. 그럼 다시 질문해보자. 그들은 왜 나에게 그런 행동을 시켰는가?

상징에 대한 절대화는 전체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그들은 상징을 통해 국가에 대한 미학적 환상을 완성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강요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우러르는 대상이 단지 상징임을 쉽게 망각한다. 그 상징이 실제로 지칭하는 것, 그것은 사람들 위해 올라선 권력이며, 부패한 정권일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대응관계는 환상 속에 은폐되며, 지배자는 교묘히 자신들에 대한 충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북한의 거대한 김일성 동상이 그것이며, 광화문 사거리의 이순신 동상이 그것이며, 무궁화꽃과 태극기가 어우러진 애국가 배경화면이 바로 그것이다.

상징을 경배하는 것은 결코 애국이 아니다. 그것은 환상에 대한 경배, 그리고 실제로는 그 가면 뒤에 숨겨진 음험한 지배자들에 대한 경배일 뿐이다. 국가에 대한 사랑, 애국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애국은(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국가'라는 개념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그것의 현실태에 대한 사랑, 즉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애국일 것이다. 화장발보다는 그 사람의 내면을 사랑하자는 이야기다.

조선일보는 몇 판 찍지도 않고 만평을 교체했다. 네티즌들은 곳곳에 문제의 만평에 대한 반박글을 올려놓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쓴웃음을 짓게 만들 뿐이다. 김동성 선수는 태극기를 내던진게 아니라, 스케이트날에 깃발이 집혀 떨어뜨린 것이란거다. 뭐, 그게 사실이긴 하지만, 조선이나 네티즌들이나 여전히 공유하는 전제는 남아있다. 태극기를 내던지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라는 것. 씁쓸하다. 과연 우리가 전체주의적 습관과 사고를 저 태극기마냥 내던져버릴 수 있는 것은 과연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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