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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02 Archives

February 1, 2002

반지의 제왕 전집 도착!

반지의 제왕 6권 + 호빗 + 실마릴리온 세트 도착.

근데 뭐부터 읽지? 1세대인 실마릴리온부터 읽어야 하는건가? -_-a

으음... 일단 밥부터 먹고..;;

February 6, 2002

음.. 오랜만의 일기

뭔가, 주절거릴만한 꺼리가 없었다. 그냥 단조로운 일상. 다만 몸이 약해졌는지, 약간의 감기 기운을 계속 달고 다닌다. 입술 주변이 터서 음식 먹을 때 좀 괴로운 상태. 방이 건조한게 큰 문제인 듯.

집을 구하는 중인데... 조금 좋은 환경으로 옮길라 마음을 먹으니, 가격에 맞는 전세가 없다. 금리가 낮아서 대부분 월세로만 집을 내 놓고 있더군. 돈 6~7천만원이 이렇게 맥이 없을 줄이야. 도대체가 빌어먹을 놈의 세상이다. 집 장만해서 장가 가려면 보통 노력으로는 택도 없단 소리겠지. ㅠ_ㅠ

음... 정리를 안 해서 그렇지, 책은 두어권 읽었다. "부덴부로크 가의 사람들"과 "백년 동안의 고독" 현재는 "세계의 비참"과 "실마릴리온"을 병렬 진행 중. 아마 실마릴리온 쪽이 금방 끝날 듯. 실마릴리온은 상당히 독특한 느낌의 소설이다. 뭐, 소설 성격 자체가 신화에 가까워서겠지만 아무래도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는 듯한 느낌을 계속 받는다. 번역은 좀 문제가 있는 듯. elf는 "엘프족"으로 번역을 하고, elves, 즉 elf의 복수형을 "엘베스족"이라고 번역을 하는건 뭐냔 말이다. ㅠ_ㅠ

뭐... 그 외에 유승준 파동이라던가, 등등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일단은 좀 관망. 현재의 논쟁 구도에서는 치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어서.

February 7, 2002

독자와의 대화

에... 독자와의 대화 시간입니다. 언제 생겼냐구요? 방금 만들었습니다. -_- 쥔장 맘입니다. 따지지 마십쇼 -_-+ 참고로 본 대화는 절대로 쥔장이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원맨쇼가 아닙니다. TurnLeft의 독자(*-_-*)에게 최상의 서비스..쿨럭..을 제공하기 위해 여러분들의 질문 메일을 항상 받고 있습니다. -_-/

자자..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은 m군이 보내온 메일입니다.

> 질문 한가지~ ^_^ 제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요.
>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없는건가요?
> 휴머니티에 대한 고려는 자본주의에선 찾아볼 수 없는건가요?
> 궁금해서..요. 그럼 안녕~

아... 그것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초장부터 이런 거창한 질문이 나오면 밑천이 너무 빨리 떨어지는데.. -_-;

일단 입시교육의 영향력을 잘 활용해서, 출제자의 의도부터 파악하도록 하죠. 질문은 형식상 2개이나, 기실 하나의 맥락하에 놓여 있습니다. 1)자본주의의 대안은? 2)자본주의 하에서 휴머니티의 실현은 불가능한 것인가? 의 두 개의 질문이나, 1번 질문은 사실상 2번 질문에 종속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하에서 휴머니티에 대한 고려를 찾아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대안이 될 수도 있겠죠. 즉, 자본주의 하에서 휴머니티의 실현은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 수 있는가?로 정리될 수 있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2번 질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겠죠. 자본주의 내에서 휴머니티에 대한 고려는 가능한가.. 인데, 우선 문제는 여기에서 "휴머니티"라는 것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이냐입니다. 인간존중 사상? 인본주의? 명확하지는 않습니다만, 기본적으로 그것은 '인간'을 최우선으로 놓는 가치 체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개념에서부터 출발해야겠네요.

모든 개념이 그러하듯 '인간' 개념 역시 역사성을 갖습니다. 다시 말해 역사 상의 특정한 시기에 현재와 같은 의미를 획득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중세에도 '인간'이라는 단어는 분명 존재했습니다만, 그것은 현재와 같은, 존재 자체가 갖는 보편적 권리를 함축하는 단어는 아니었습니다. 마치 "고래와 인간은 모두 포유동물이다"라는 언명 속의 '포유동물'처럼 그저 분류어일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라도 귀족과 농노가 동급의 존재로 취급될 수는 없었던 것이죠.

현재와 같은 '인간' 개념이 형성된 것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입니다. 당시 혁명을 주도한 제3신분, 부르주아 계급은 '천부인권'을 내세우며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당시의 신분제 사회 속에서 부르주아 계급의 권리를 옹호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였죠. 물론 이 천부인권 사상은 그 논리구조상 부르주아 계급뿐 아니라 모든 인간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었기에 피지배계급 일반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 천부인권이라는 것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여받는 신성불가침의 권리가 있다..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권리라는 것이 참 재밌습니다. 무슨 권리? 타인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을 권리, 신분상의 차이로 억압받지 않을 권리.. 등등. 그런데 여기에 조금 이질적인 성격의 권리 하나가 끼여 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타인에게 빼앗기지 않을 권리. 즉, 사적 소유의 권리, 재산권입니다.

천부인권설에서 부여한 권리들은 생명이나 존엄성 등 각 개인 '자신'에 한정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개인이 '주변 사물'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것, 무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실상 이 재산권은 부르주아 혁명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마을 뒷산의 나무들은 공공의 물품이었죠. 하지만 사적 소유권이 확립된 이후, 그 나무들은 지주의 소유가 되었고, 나무를 함부로 베어 가는 것은 범죄 행위가 되어버렸습니다. 과연 이것을 '천부적' 권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재산권은 매우 '인위적' 권리가 아닌가요? 그런데 이러한 재산권이 바로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권리입니다.

재산권은 실질적으로는 인권 자체와 충돌합니다. 예를 들어, 철거촌의 경우를 보죠. 철거촌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흘러들어와 개발이 안 된 산기슭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달동네라고 부르죠. 이들은 비록 자신들의 땅은 아니지만, 그 땅에서 2~30년간 자리잡고 간신히 삶을 지탱해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달동네가 재개발지구로 선정이 되면서, 땅주인들이 자신들의 배타적 소유권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2~30년간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주거권이나 생존권 등은 소유권 앞에서 무력하기만 할 뿐이죠. 법적으로 우선적으로 보장하는 권리 역시 소유권입니다.

자, 여기서 휴머니티의 개념 정리로 돌아갑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휴머니티는 결코 인간 본연의 어떤 권리를 주창하는 순수한 개념이 아닙니다. 근대적 의미의 휴머니티, 그것은 바로 재산권을 우선적으로 선언하고 그 다음에 인권이 선언되는 천부인권, 즉 부르주아 휴머니즘일 뿐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간'은 자본주의적 소유 체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며, 오직 그러한 인간에게만 보편적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이죠. 자본주의적 소유 체계 외부의 사람들, 즉 체제의 낙오자들은 결코 천부적 인권의 수혜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뭐, 어느 정도 성숙된 시민 사회에서는 낙오된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가 이루어지긴 합니다만, 그 범위는 결코 재산권을 침범하지 못하지요.

문제는, 경쟁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체제의 낙오자들을 양산해 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최근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사회를 20의 가진자와 80의 못가진자로 양분하고 20의 권리만을 옹호할 뿐이죠. 과연 휴머니즘이 이러한 체제 하에서 80의 '못가진 자'들의 천부인권을 옹호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기존의 휴머니즘 개념을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운 휴머니즘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알튀세르는 '이론적 반(anti)휴머니즘'을 주장했죠.

그런데, 현재의 휴머니즘의 개념이 자본주의 체제와 함께 성립된 것처럼, 새로운 휴머니즘 역시 어떤 새로운 사회 질서 속에서만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막연한 공상으로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떤 사회 질서를 만들어 나갈 것이며, 그 속에서 휴머니즘의 기치를 어떻게 세워 나가느냐로 귀결됩니다. 이제 자연스럽게 첫번째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겠죠? ^^

하지만 불행히도, 첫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저도 모릅니다'입니다. 과연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요? 이에 대한 수많은 해답이 있어 왔습니다만, 아직 성공을 거둔 것은 없네요. 하지만 그것이 결코 자본주의의 '필연성' 내지는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사람들의 정치 의식은 성숙해 나가기 마련입니다. 현 체제의 기득권자로서 체제를 유지하려 하는 사람들은 온갖 방법으로 사람들의 정치 의식 성장을 가로막으려 하겠죠. 그러나 역사의 거대한 물결은 결국 흐르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흐름에 대한 지향을 잃지 않는 것, 모색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휴... 긴 글이군요. 참고로, 이 글은 한 번 쓰면 수정이 안 되는 일기장에 쓰여졌기 때문에 적절한 퇴고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였습니다. 많은 지적과 의견을 바랍니다. ^^/

February 10, 2002

오페라의 유령

공연을 본게 벌써 그저께군. 더 까먹기 전에 얼른 써 놔야지.

지금은 The Phantom of Opera, London Original Soundtrack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공연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다시 떠오르는군. 확실히 original에서는 크리스틴 역의 사라 브라이트만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한국 공연에서는 팬텀 역의 남자 배우가 훠~얼씬 더 멋있었지. ㅠ_ㅠ

LG 아트 센터는 처음이었다. 잘 꾸며진 공연장인건 분명하지만, 무대는 기대보다는 조금 작아 보였음. 좌석은 2층 앞에서 2번째 줄. 무대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사실 잘 모르고 2층 좌석을 구했는데, 처음 볼 때는 확실히 2층이 좋은 것 같다. 공연 중에 무대 상단에서 팬텀이 튀어나오거나 하는 장면이 있는데, 1층에서 보다간 자칫 놓치기 쉬운 듯. 3층은 아무래도 좀 멀어서 잘 안 보일 것 같았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의자가 좀 더 푹신했으면 좋았을텐데.. ^^;

무대는 굉장히 화려했다. 끈임없이 바뀌는 세트, 마술 같은 특수효과.. 제작비 많이 든 티가 팍팍 나더라.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팬텀의 가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음. 거울 속에서 갑자기 가면이 떠올랐을 때는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런던 오리지날에 비해 지하호수 장면의 장엄함이 덜하다고들 하던데, 충분히 멋있었다. 안개 속에 흔들리며 떠오르는 촛불과, 뒷편에 물에 비친 듯 어른거리는 조명, 그 속에서 배를 타고 나타나는 팬텀과 크리스틴. 밝고 화려한 무대와 어둡고 환상적인 무대가 교차되며 극의 분위기를 잘 살린 것 같다.

스토리는 별도로 이야기할만한 것이.. -_-a 대학 1학년 때 소설로 읽었었는데,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긴 했다. 아직도 헷갈리는 것 중에 하나는, 기억에는 소설에서 크리스틴이 죽었던 것 같은데 아니었나? 최근 소설을 읽었거나 기억하는 사람 있으면 좀 알려주길 -_-/

가장 중요한 음악! 음향은 확실했다. 배우들의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린다던가 하는 문제는 전혀 없었음. 물론 노래로 대사하는 부분은 정확하게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건 나중에 cd로 들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가장 강렬했던 것은 역시 팬텀의 노래!!! 깊고 풍부한 성량이 너무나 멋졌다 ㅠ_ㅠ 카리스마가 느껴졌음. 그에 반해 크리스틴 역의 배우는 카리스마가 좀 부족했다. 물론 노래도 잘 하고, 목소리도 예뻤지만 관객을 휘어잡는 맛은 없었지. 안 그래도 수동적인 캐릭터인 크리스틴이 더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관록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라울 역은 무난했고,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노래들은 좋았다. 사실, 내가 이걸 제대로 평가할만한 귀를 갖고 있지 못하다. ^^;

어쨌든 전체적으로 강력 추천할만한 공연. 이만한 공연 흔치 않으니, 기회 닿는대로,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꼭 보길 바란다.

이건 런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서 메인 테마라고 할 수 있는 The Phantom of Opera의 mp3. 192k로 샘플링 되어서 용량이 좀 크네. 사라 브라이트먼의 목소리에 빠져들어 보시길~[mp3]

February 13, 2002

돌아왔다

설을 춘천에서 보내고 12일 밤에 돌아왔다. 며칠 전 새끼를 낳은 체리를 오래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돌아와보니 말썽도 안 부렸고, 새끼들도 잘 보살핀 것 같다(새끼들 배가 터질 것 같다 -_-;) 기특해라.

음... 설은.. 특별한 일은 없었다. 실마릴리온과 호빗과 헤리 포터를 읽었지. 판타지로 도배를 했구만 -_-

내일하고 모레는 일단 휴식.

새벽에...

잠결에 강아지가 계속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다. 음... 어미가 또 자리를 비웠나보군.. 하면서 계속 잤다. 근데 계속 낑낑댄다. 좀 시끄럽다. -_-+ 잠시 후, 낑낑거리는 소리가 하나 늘어났다. 어라, 근데 이건 강아지 소리가 아니다. 체리도 같이 낑낑대는 것이다. 무슨 일이지?

어쨌든 주섬주섬 일어나 개 집 있는 곳으로 가 봤다. 허거걱..;; 개 집의 창살에 강아지 목이 끼어있다. -_-;; 망고다. -_- 이 녀석 버둥거리다가 어떻게 창살 사이로 머리를 밀어넣고 끼어 있는거다. 강아지가 아프다고 깨갱대는데, 어미는 어쩔 줄 몰라서 같이 낑낑대고 있고...;;

손으로 어떻게 잡아 빼려고 하는데 귀 부근이 걸려서 안 나온다. 망고는 계속 버둥대면서 아프다고 낑낑대고.. -_- 결국, 장도리로 창살을 휘어내고 꺼냈다. 꺼내자마자 조용해진다 -_- 새벽 5시..;;

앞으로 이 놈들을 어떻게 키우냐. -_-;;

February 16, 2002

으으음..;;

갈수록 일기의 빈도가 떨어져간다. 생각을 꺼내놓치 않으려 드는건가? 아니면 아예 생각 없이 사는지도... 후자에 한 표 -_-/

어제만 해도 반지의 제왕의 아나키즘적 함의에 대해 주저리 글을 썼었지만.. 아무래도 짜맞추기 식인 것 같아 저장을 안 해 버렸다. 논리적 사고 능력마저 점점 떨어져간다. ㅠ_ㅠ

확실히 사람 머리는 꾸준히 써야 잘 돌아간다. 꾸준히..;;

반지의 제왕 4권 읽는 중. 오늘 미라한테서 "눈먼 자들의 도시" 빌렸음. 당분간 읽을 책 걱정 없음.

진짜 횡설수설이군 -_-

February 20, 2002

에구구 피곤해라.

밤샘 작업을 하고 지하철 첫 차를 타고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6시 15분. 6시 반 쯤 잠든 걸로 기억하는데, 오전 내내 잠을 방해받았다. 전화 두 번에 집 보러 온 사람 한 번, 가스 점검하러 온 사람 한 번. 게다가 옆집에 무슨 일 있는지 사람들 계속 들락거리며 떠들어대니, 체리는 계속 짖어대고... 아, 수면 부족이란 말이다~ ㅠ_ㅠ

이제 점심 먹고, 준비 좀 해서 다시 나가봐야 한다. 어제 밤에 버그를 두 군데 정도 잡았고, 오늘은 아마 계속 calibration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Register 값들을 다시 define 해줘야 하고... 가능하면 오실로스코프로 signal의 frequency를 찍어보면서 수정 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 이 자리를 빌어 공표하자면(아는 사람도 몇 있지만..) 이사 갈 곳 정해졌다. 7호선 학동역 근처. 학동..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많던데, 논현역과 강남구청역 사이에 있는 곳이다. 단독주택 2층 전체를 쓰는 집이라 넓고, 해가 잘 든다고 한다. 이제 삶이 좀 꽃필 것 같다.(거기 비웃는 얼굴 한 인간들 뭐얏!! -_-+) 이사는 3월 8일이나 9일 정도로 예정.

갑자기 집 이야기가 튀어나온 이유는, 어제 일 때문에 7호선 보라매 역에 갈 일이 있어(그리고 지금도 나가서 그 쪽으로 가야 한다) 대림역에서 2호선/7호선을 갈아타봤다. 음... 좀 멀더라. -_-; 대림은 안 그래도 지상에 높이 솟아올라 있는 역이고, 7호선은 땅 속 깊숙히 박혀 있으니, 멀 수밖에 없지. 7호선 차량은 정말 삐까번쩍에다가 사람도 별로 없다. 느긋하게 앉아서 다닐테니, 멀어도 그닥 불만은 없다. 이사 가면 주로 노는 곳은 압구정 혹은 건대입구가 되...려나? ^^;

자자, 어쨌든 오늘도 힘 내서 바쁜 하루를 만들어보자. 화이팅!

February 22, 2002

눈먼 자들의 도시

..를 읽고 있다. 구하기 어려운 책이었는데, 미라 덕에 맘 편히 읽고 있다. 다시 한 번 감사.

진도가 그다지 빠른 편은 아니다. 요새는 계속 바빠서 잠자기 전 잠깐,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밖에 읽지 못하니까. 하지만, 읽는 동안은 정말 몰입해서 읽게 된다. 놀라운 소설.

일단 이 소설은 호흡 조절하기가 까다롭다. 얼마 전에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그보다 조금 더 빡빡할지도. 단락 구분도 없고, 대화라고 별도로 표시해 주는 것도 없다. 그저 끊이지 않고 나열되는 단어와 문장들 속에서, 쉼표를 어디 찍느냐는 독자의 몫이 된다.(물론 글에 쉼표가 하나도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

호흡을 가쁘게 하는 것은 비단 이런 형식적인 요소들만이 아니다. 작가는 일상적 상황과 '사건'들 사이에 어투의 변화를 두지 않는다. 눈이 멀어버리는 순간에 대한 극적인 묘사 같은건 없다. 예를 들어, 작품의 첫 시작은 신호대기 중에 차들에 대한 묘사 중에 한 남자가 눈이 안 보여요 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너무 덤덤한 문체라 이게 정말 사건인지가 의심스럽게 만드는 것. 다른 소설이었다면, 이는 쉽게 지루해질 수 있는 문체이다. 하지만 아마 이 책에서 이와 같은 어투를 채택하지 않았더라면, 독자는 끊임없이 터지는 사건을 접하다 지쳐 쓰러질지도 모른다. 시종일관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기 때문. 결국 저자의 문체는 독자의 긴장감을 적절히 유지시키기 위한 교묘한 장치가 되는 것이다.

내용 역시 매우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아직 다 안 읽었으니, 그에 대한 코멘트는 미루기로 하자. 참고로, 이 책은 절판되었으니 읽고 싶은 사람은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내가 다 읽은 후에 미라에게서 빌려 읽으시길..

February 23, 2002

태극기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를 이야기 하려는게 아니다. 쿨럭..;;

쇼트트랙 때문에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특히 김동성 선수가 1500m 결승에서 어이 없이 실격 처리됨으로써, 사람들의 분노 수위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 덕분에 한국 내 반미감정은 최고조다. 안 그래도 미군 기지의 독극물 방류 사건 등등과 노근리 학살 등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화 되면서 미국에 대한 전통적 시각(미국=우리의 우방)에 균열이 가고 있던 차에, 이번 사건은 결정타를 날림 셈이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작은 헤프닝이 있었다. 다들 알고 있듯이, 조선일보가 내걸었다가 급히 철회한 만평 때문인데... 김동성 선수가 금메달인줄 알고 태극기를 들고 링크를 돌다가, 실격 판정을 접하고 태극기를 내동댕이(?) 친 것을 비난하는 만평이었다. 뭐, 조선일보다운 만평이었다. 감히 국가의 상징을 땅에 내팽겨치다니! 그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러나 상징은 상징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원할 때, 우리를 대표하는 하나의 매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우리이지, 사물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김동성 선수가 내동댕이 친 것이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단지 손에 들려 있던 하나의 사물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이 상징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려서부터 상징 자체에 대한 경배를 배워왔다. 나만 해도 그런 교육을 겪은 세대이다. 저녁 5시(6시?)면 울려퍼지는 애국가를 들으며 국기를 향해 서서 가슴에 손을 얹고 서 있었고(무엇을 하고 있었든 상관없이), 국민교육헌장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외웠다. 왜? 국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넘쳐서? 국민교육헌장이 심장을 전율케하는 감동을 전하는 명문이어서? 농담은 그만하자. 단적으로 말해, 시키니까 따라한거고 그렇지 않으면 혼났기 때문에 따라한거다. 그럼 다시 질문해보자. 그들은 왜 나에게 그런 행동을 시켰는가?

상징에 대한 절대화는 전체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그들은 상징을 통해 국가에 대한 미학적 환상을 완성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강요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우러르는 대상이 단지 상징임을 쉽게 망각한다. 그 상징이 실제로 지칭하는 것, 그것은 사람들 위해 올라선 권력이며, 부패한 정권일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대응관계는 환상 속에 은폐되며, 지배자는 교묘히 자신들에 대한 충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북한의 거대한 김일성 동상이 그것이며, 광화문 사거리의 이순신 동상이 그것이며, 무궁화꽃과 태극기가 어우러진 애국가 배경화면이 바로 그것이다.

상징을 경배하는 것은 결코 애국이 아니다. 그것은 환상에 대한 경배, 그리고 실제로는 그 가면 뒤에 숨겨진 음험한 지배자들에 대한 경배일 뿐이다. 국가에 대한 사랑, 애국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애국은(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국가'라는 개념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그것의 현실태에 대한 사랑, 즉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애국일 것이다. 화장발보다는 그 사람의 내면을 사랑하자는 이야기다.

조선일보는 몇 판 찍지도 않고 만평을 교체했다. 네티즌들은 곳곳에 문제의 만평에 대한 반박글을 올려놓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쓴웃음을 짓게 만들 뿐이다. 김동성 선수는 태극기를 내던진게 아니라, 스케이트날에 깃발이 집혀 떨어뜨린 것이란거다. 뭐, 그게 사실이긴 하지만, 조선이나 네티즌들이나 여전히 공유하는 전제는 남아있다. 태극기를 내던지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라는 것. 씁쓸하다. 과연 우리가 전체주의적 습관과 사고를 저 태극기마냥 내던져버릴 수 있는 것은 과연 언제쯤일까?

February 24, 2002

친구가 아닌 연인

알수가 없어 이런 내 맘을
넌 내게 소중했던 친구일뿐인걸
이젠 알 것 같아 왜 그의 이야기에
넌 그렇게도 화가 나 있었던걸
말하지 못해 하지만 느낄 수 있어
우정이 아닌 사랑과 서로를 향한 눈빛은

항상 내 곁에 있어서 설레임을 몰랐어
애태워 말 못한 지난 날을 추억으로만 간직할게
늘 같이했던 것처럼 소중함을 지킬게
너만을 영원히 사랑해 난 친구가 아닌 연인으로
For You're My Love

알수가 있어 숨결까지도
멀리서 찾아 헤맨 반쪽이 너란걸
이젠 알 것 같아 왜 너의 여자 친굴
난 함께하기 너무나 싫었던걸

항상 내 곁에 있어서 설레임을 몰랐어
애태워 말 못한 지난 날을 추억으로만 간직할게
늘 같이했던 것처럼 소중함을 지킬게
너만을 영원히 사랑해 난 친구가 아닌 연인으로
For You're My Love

- T(윤미래) 1집 中

피곤 =_=

역시 돌아다닌 날은 피곤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것도 좀 부담이었고..;; 그래도, 야외의 맑은 공기는 행복했다. 종종 나다녀야지. 봄아! 어서 와라!! 쿄쿄.. ^0^

February 25, 2002

우웅..

또 늦잠잤다 -_-;;;

회사 나가기 싫다~~~ -0-

그래도 어쩌겠어.. 빨리 준비해서 가야지.. ㅠ_ㅠ

February 26, 2002

중앙일보

저녁을 먹으면서 식당에서 중앙일보를 펴 보았다.

얼마 전에 중앙과 조선을 비교하는 하니 리포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요지는 중앙이 온건보수를 표방하면서 극우보수 노선인 조선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홍석현 사장은 이미 중앙일보를 완전히 장악하고 자신의 생각을 신문에 투영시키고 있는 반면, 방상훈 사장은 자신의 색깔이 거의 없이 김대중 주필에게 휘둘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음.. 그렇군.. 하면서 읽었는데...

그러나 온건보수와 극우보수의 차이점은 단지 대북정책에 대해 얼마나 유화적인 입장을 가지느냐에 국한된다. 대북정책의 차이는 각 언론사가 어떠한 정체성 내지는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데, 조선의 안보 상업주의는 대북 강경노선을 통해 이데올로기적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면, 중앙은 남북간의 경제적 협력(보다 직설적으로 말해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을 싸게 활용하는 것)을 원하는 남한 자본의 이해를 대변한다 하겠다. 단지 그것 뿐이다.

오히려 노동/자본의 갈등에 있어서, 중앙은 극단적으로 편협해진다. 언제나 지적되는 바이지만, 파업의 원인과 경과, 양측의 주장을 분석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시민들의 불편"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여론몰이를 시도한다. 오늘 본 어떤 기사도 "시민의 불편을 담보로 집단 이기주의 관철 안 돼"라는 메인 제목과 "시민, 시민단체의 의견"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는데, 파업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의견을 몇 개 인용한 후, 마지막 한 단락에서 "한편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성실한 교섭을 촉구했다"라고 실었더라. 제목과 부제만 보면 시민, 시민단체 모두가 파업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멋지다 언론이여!

결론? 결국 그 밥에 그 나물이란 소리다..;;

ps. 제발 "노동권 보장, 그러나 불법 파업 엄단"이란 소리는 이제 좀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파업이 불법 아니었던 때가 있었냐? 지들 맘대로 노동법 바꾸어 놓고, 그거 안지키면 "불법"이라니.. 파업 들어가기 전에는 협상 테이블에도 잘 안 나오는게 정부다.

February 28, 2002

2월의 마지막 날

1/6이 후딱.

2월 28일 저녁 느즈막에도 여전히 회사에..

내일은 짐 싸야지.

사각사각 봄이 오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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