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200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시간의 매듭이란 언제나 묘한 설레임을 주는군요. 어제와 오늘이 실제로는 아무런 차이도 없건만.. 정작 종소리를 들으러 갔던 종각에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돌아오는 지하철 속에서 왠지 센티멘털해지더군요.
일부러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 "원더플 라이프"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참 소박한 영화더군요.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점인 림보. 이 곳에서는 죽은 사람들에게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한 순간을 선택하게 하고, 그들이 그 기억만을 간직한 채 영원 속으로 사라지도록 해 줍니다.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한 순간을 말이죠.
현란한 특수효과는 전무하고, 심지어는 사람들의 과거를 직접 영상으로 보여주는 일도 없습니다. 그저 림보의 면접관 앞에서 부끄러운 듯 자신의 과거를 하나 둘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표정만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요. 게다가 이들이 선택한 과거의 그 느낌을 재현하기 위해 면접관들은 직접 세트를 만들고 연기를 합니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소박하지만, 그래서 더욱 아릿한 것이겠지요. 추억은 추억이기에 따뜻한 것이고, 현실이 된다면 다른 느낌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어쨌든,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고르세요. 행복했던 순간들을 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앞으로 영원히 간직할 한 순간만을 선택하여야 한다면, 훨씬 더 신중하게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일 년 역시 마찬가지군요. 어떠어떠한 일년이었다..라는 총평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순간만으로도 살아갈 가치가 있는 나날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가치있는 일년이 되지 않을까요?
행복한 일년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