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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6, 2009

15년 전의 날씨

15년 전의 날씨
- 볼프 하스 지음/안성철 옮김/웅진지식하우스/10,800원

새 책이 나오면 언론을 통해 작가의 인터뷰를 종종 볼 수가 있다. 대개는 일종의 판촉행위로 작품에 대한 낯뜨거운 자화자찬이기 쉽지만(글쟁이들이란게 어찌나 자의식이 강한 종족들인지), 종종 잘 짜여진 인터뷰 혹은 대담은 작품 자체를 훨씬 더 풍족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기실 그것은 발표된 작품이 다양한 가능태 중에서 작가에 의해 선택된 하나의 현실태일 수밖에 없다는 숙명으로부터 기인한다. 실현된 작품은 그 자체로 스스로를 설명할 뿐이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인터뷰와 같은, 텍스트에 대한 텍스트, 즉 메타 텍스트의 형식을 통해서 비로서 작가는 실현되지 않은 가능태로서의 작품, 그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들을 독자들에게 펼쳐 놓을 수 있는 것이다.

도식화를 약간 하자면 집필은 이야기를 계속 축적해 나가는 합산의 과정과 그 중 옥석을 가려 덜어내는 감산의 과정을 거친다고 할 수 있다. 이 때, 쓰여졌으나 결국 빛을 보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렇다고 이 걸러진 이야기가 함량 미달이라는 뜻은 아니다. 단지 작품의 맥락에서 어긋나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작가의 오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다른 가능성을 드러낸다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뛰어들어 작가의 고민을 함께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텍스트 안에서 작가는 신이지만, 메타 텍스트는 작가의 신성을 해체하고 세속화 해 지상의 독자와 눈높이를 같이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하여, 가상의 소설을 놓고 작가와 기자가 나누는 대담을 통해 소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이 책의 형식은 참신할 뿐 아니라 더 큰 함의를 가질 수 있었다. 작가가 자신의 이 형식적 실험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어쩌면 우리는 작품을 읽으면서 동시에 스스로 작품을 재구성해가는 전대미문의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정작 작가 스스로는 그러한 메타 텍스트성을 염두에 두고 책을 쓴 것 같지는 않다는데 있다. 이 책의 독특한 형식을 통해 작가가 얻어낸 것이 무엇인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주 짧은 단편 정도 분량의 이야기를 중편 길이로 늘려냈다는 것, 그리고 독자에게서 책을 감춤으로써 궁금증을 유발해 내는 정도가 전부이다. 중간 중간 작은 표현상의 차이나 삭제된 에피소드에 대한 언급도 없지는 않지만, 가능성을 열어 놓기 위함이 아니라 작중 저자의 찌질함을 슬쩍 드러내는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역시 작가의 선택이다. 이 책은 확실히 재미있는 책이고, 그것으로 작가는 소기의 목적을 충실히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이렇게 서로 갈구면서 대화를 나누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도 싶지만, 재미를 목적으로 한 소설이라면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뭐랄까, 소 잡는 칼을 닭 잡는데 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 형식적 실험을 깊이 있게 밀고 나갔다면 우리는 새로운 명작을 만날 수도 있었을텐데, 그저 허허거리며 웃다가 끝나버리니 허탈할 마음만 남을 뿐이다.

갈증이 난다.


ps. 조금 더 삐딱선을 타자면, 책 날개에 쓰여진 문구는 가관이다. "대단하다!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은 느낌이다. 볼프 하스 만세!" 도대체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은게 왜 만세를 외칠 일일까. 한 권 읽고도 두 권 읽었다고 계산할 수 있어서? 빠듯한 시간에 효율적 독서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애초에 그렇게 시간-효율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면 보다 유익한 책을 찾아 있는게 훨씬 더 효율적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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