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치게 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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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미치게 하는 바다
- 조병준 글, 최민식, 김중만 외 사진/예담/15,000원
知者樂水 仁者樂山(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한다) 라고 한다. 논어에 나오는 말로, 앎을 추구하는 사람은 물이 가진 활달한 움직임을 즐기고, 인품을 중시하는 사람은 산과 같은 우직한 고요와 명상을 찾는다는 뜻이다. 물론 공자님 말씀이 대개 그러하듯, 한 편으로는 그런가보다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딱히 맞아 떨어지는 말이라고도 하기 힘들다. 특히, 물의 한 종류인 바다를 보면 그렇다. 나는 어쩌면 공자님은 바다에 가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바다는 고요하고 장엄한 동시에 활달하며 때론 위압적인, 물과 산이라는 이분법 속에는 담기지 않는 광대함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다가 좋다.(바다를 싫어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있겠냐마는) 그 앞에 섰을 때의 무한함, 그리고 그 앞에 초라해지는 내가 좋다. 바다는 속삭이고 때로는 호통을 친다. 기껏해야 너는 그저 이리 작은 존재일 뿐이라고, 그러니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을 다 짊어지려는 듯 버둥거리며 애쓰지 말라고 말이다. 이 거대한 존재 앞에서 나는 위안을 얻는다. 나는 그저 나로만 존재해도 충분할 것이다. 아마 종교을 가진 이들은 신 앞에서 마찬가지의 위안을 얻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바다는 내게 하나의 종교와도 같다.
그래서, 바다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곤 했다. 사진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바다를 사진으로 담는 것은 위험한 도전이다. 무한의 세계를 유한의 프레임 안에 제한하기 때문이다. 사각의 틀 안에 담겨진 바다는 그저 가두어진 물에 불과하기 쉽다. 바다는 어려운 주제다. 그래서, 개인적은 경험으로는, 바다를 담는 사진에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거친 바다를 통해 그 역동적인 에너지를 보여주거나, 아니면 대형 인화를 통해 감상자를 압도함으로써 바다가 주는 느낌을 시뮬레이션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사진작가들의 사진들은 주로 후자에 속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책의 도판이 너무 작다. 실물 프린트의 크기는 보통 50cm x 60cm 정도고 크게는 1m x 2.5m 까지 이르는데, 22.5cm x 17.5cm 크기의 책에 담자니 원래의 느낌이 살지 않는다. 출판 시장의 규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사진 자체만 보자면 적어도 A3 정도의 대형 도판에 양쪽 페이지를 모두 사용하는 방식으로 나왔어야 하지 않았을까. 사진의 크기는 대부분의 사진집에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적어도 바다를 담는 사진집은 더더욱 사진의 크기, 즉 도판의 크기에 신경을 써야 그 느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조병준의 글도 사진과 그리 궁합이 잘 맞지는 않는 느낌이다. 바다 자체에 대한 에세이로는 나쁘지 않을지 몰라도, 그의 시선은 책에 실린 사진이 아니라 그 자신의 과거를 향하고 있을 뿐이다. 글과 사진 각각이 독자에게 어떤 감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의 글이 사진을 돋보이게 한다거나 아니면 사진이 그의 글을 생생하게 만들어준다거나 하는 상승 효과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럴거면 글과 사진을 하나의 책으로 묶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조병준 씨의 글 자체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 일부 글은 인상적이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톤이 없이 들쑥날쑥한 것은 마치 블로그 글을 모아놓은 듯한 느낌마저 준다. 게다가, 인도 다녀온 사람들은 왜 다 명상이니 마음의 평화니 하는 틀에 박힌 이야기만 하는건지.
기획 자체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이래저래 아쉬운 점이 많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