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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 지음 / 이순희 옮김 / 부키 / 14,000원

책을 읽은건 6월 말 즈음이었는데, 리뷰가 늦다보니 묘하게 시류를 타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 책이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도서' 목록에 포함된 덕분이다. 군대에서 서적 검열을 한다는 사실 자체야 그닥 새삼스러울게 없었다만, 일단 이런걸 그리 자랑스럽게 보도자료를 내놓는다는게 웃겼고(정권 코드 맞추랴 생색 내랴 바쁘신 국방부 관계자께 경의를!!), 둘째로는 도서별 불온서적 선정 이유가 웃겼다. 예를 들면, 삼성 왕국을 비판한 책은 "반자본주의"라서 안되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이 책은 "반정부, 반미"라서 안된단다. 종종 얘들은 이렇게 어이 없는 자충수를 둔다. 별 실효성도 없는 일을 벌이느라 보다 중요한 비밀, 자신들이 공공이 아닌 몇몇 집단의 사익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을 실토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게 다 무식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니 제발 이 책이라도 읽고 (들키면 쪽팔릴테니 다른 책 커버 씌워서 보도록)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

삼성이 자본주의 기업의 한 양태(사실, 오히려 반자본주의적인 "세습" 집단이지만)에 불과하듯, 신자유주의 역시 자본주의 사회가 취할 수 있는 정책 중 하나일 뿐이다. 인류 역사라는 지평에서 볼 때 그리 길지 않은 자본주의의 역사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다양한 경제정책들이 존재해왔다. 그리고 그 역사가 증명하는 것은 저마다의 경제 정책들이 나름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케임브릿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 장하준 교수는 다른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신자유주의는 부를 이루게 하는 유일한 길이 아니라는 것. 누군가 신자유주의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의 눈에 이 책이 불온하게 느껴진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들이 몸 바쳐 일하는 바로 그 '누군가'의 거짓말을 들춰내고 있으니까.

신자유주의라는 단어 자체는 낯설지 몰라도, 그 정책들은 이미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특히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IMF 가 강요한(사실, 이 표현에는 어폐가 있다. 이는 아래에서 다시 설명) 제반 정책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골자를 이룬다. 해고와 감원을 손쉽게 하는 노동 시장 유연화 정책과 전면적인 상품/금융 시장 개방, 전방위적으로 벌어진 기업 인수 합병과 공기업 민영화 등은 한국 사회를 순식간에 뒤흔들어 놓은 사건들이었다. 그 과정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삶의 기반을 파괴당해 극빈층으로 곤두박질 쳤다. 그나마 남은 사람들도 해고의 위협에 마음 졸이며 허리띠를 졸라 맬 것을 강요당했다. 고통 분담이라는 미명 하에 말이다. 그 때도 그랬다. 위기를 벗어나 더 부유해 지려면 어쩔 수 없다고. 고통스럽지만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장하준 교수는 이 책 전체를 통해 이러한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를 증명하는 근거는 바로 오늘날 신자유주의를 부르짖는 선진국들 자신의 역사에서 나온다. 오늘날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선 나라들의 공통점은 산업 발전 초기에 어김없이 극단적 보호주의 정책과 정부 개입으로 경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유럽의 제반 국가들은 물론이요, 오늘날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며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강요하는 첨병인 미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들 국가들은 자국의 산업이 상대적으로 열악할 때는 보호 장벽을 높게 쳐서 산업 육성을 이끌었고, 반대로 상대적으로 강해졌을 때는 어김없이 자유무역 쪽으로 돌아섰다. "요컨데,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무역 자유화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p.119)"라는 것이다.

그래서, 장하준 교수는 전세계적인 무역 자유화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를 부유한 나라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로 규정한다. 보호 무역이라는 사다리를 딛고 부유해진 나라들이 이제는 다른 나라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 차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정반대로, 자유 무역은 오히려 가난한 나라들이 부유해질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 버렸다.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한 80년대 이후 세계 경제 현실은 이를 분명히 증언한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본산인 시카고 학파를 경제 전면에 내세웠다가 재앙에 가까운 경제 몰락을 경험했다. 한 때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 불리웠던 신흥 공업국들도 80년대 이후로는 지지부진한 경제 성장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새롭게 세계 경제의 심장으로 등장한 중국은 강력한 무역 장벽을 보유한 사회주의(?) 국가 아닌가.

물론 전면적인 자유무역은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더 많은 시장과, 따라서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부의 비결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 시장이 신자유주의자들이 그리는 것처럼 물 반 고기 반의 황금어장이 아니라는데 있다. 이미 이 시장은 몇몇 강력한 포식자들에 의해 선점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유 시장은 이들의 홈그라운드이다. 이들의 높은 기술과 막대한 자본이라는 홈 어드벤티지에 맞서 가난한 나라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값 싼 노동력과, (운이 좋은 경우는) 천연자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 결과는? 당연히 일방적인 경기가 진행된다. 부유한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의 값 싼 노동력과 풍족한 자원의 혜택을 맛보는 동안, 가난한 나라들은 자국의 산업을 발전시킬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저개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공정한 경쟁'의 실상이다. 사실상 방점은 '공정한'이 아닌 '경쟁'에 찍혀 있다고 봐야한다. 공정을 가장한 경쟁이야 말로 가난한 나라로부터 부를 착취해 내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동시에 그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된다. 신자유주의가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기존의 불평등한 질서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가 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 이데올로기는 세계 질서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각 국가와 사회 단위 곳곳으로 스며들어 불평등의 질서를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에서 피착취의 입장에 서게 되는 가난한 나라의 지배 계급이 되려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나서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멀리 갈 필요 없이 한국의 사례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권력이 군사 정권으로부터 시장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 그 흐름은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후의 역사는 신자유주의의 한국적 변용과 좌절, 재구성의 역사로 보아도 무방하다. 김영삼이 외치던 '세계화'라는 구호와, 재벌 기업들이 일제히 기업 로고를 새로 만들며 무한 경쟁을 외치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해고를 '세계 수준'으로 쉽게 만들어 자본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려던 노동법 개정 시도는 97년 초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으로 이어졌고, 그 와중에 변변한 방어 장치도 없이 무작정 개방한 금융 시장은 한국을 국제적 투기 자본의 놀이터로 만들어 외환 위기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 외환위기는 다름 아닌, 한국의 지배 계급이 시도하던 신자유주의적 질서 재편이 실패한 결과인 셈이다.

하지만 외환 위기는 오히려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더욱 가속했다. IMF 를 필두로 한 외부의 힘이 한국의 지배 계급이 스스로는 극복하지 못한 두 가지 장벽, 전근대적인 지배 구조를 유지하고자 한 지배 계급 자신(특히 재벌들)의 저항과 노동 계급의 저항을 일거에 무너트리며 질서 재편을 강제한 덕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재벌이 무너지고 몇몇 기업들이 외국 자본의 손으로 넘어갔지만, 한국의 기득권 세력에게 이건 사실 그다지 큰 손실은 아니었다. 오히려, 87년 이후 강력한 사회적 세력으로 등장한 노동 계급을 무력화시키고, 사람들에게 체념에 가까운 심정으로 무한 경쟁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게 한 것은 그들이 잃은 것을 훨씬 넘어서는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극단적인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시대적 과제(87년이 남겨준)에는 비교적 충실했지만,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들의 한계를 드러내었다. 그렇기에, 최초의 민주적 정권 교체는 사다리 위쪽의 권력 지형에 변화를 가져았을 지언정, 사다리 아래의 사람들에게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팍팍한 현실만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한 쪽에서는 '잃어버린 10년' 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사실상 그 10년은 정치 엘리트 간의 밥그릇 위치 외에는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더욱 공고해지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결국 문제는 한나라당이냐 민주당이냐 (혹은 심지어 민주노동당이냐 진보신당이냐) 하는 선거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 삶을 지배하는 원리로 자리잡은 이 신자유주의라는 틀을 어떻게 깨어버릴 것인지를 고민해야만 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와 나는 만나고 다시 어긋난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조목 조목 비판하는 장하준 교수의 논리는 우리에게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강력한 이론적 무기를 제공해 준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경제학이라는 프레임 안에 머무를 뿐이다. 그의 관심사는 아마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보다 공정하면서도 지속적인 발전을 약속해주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찾는데 있을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모색은 분명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자인 저자가 담보하지 못하는 고민은, 그와 같은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어디에 있는가이다. 부유한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에게 관세 등의 장벽을 통해 경제적 힘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다소 나이브하다. 이윤이라는 강력한 동기를 그와 같은 '윤리적' 요구를 통해 통제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국내의 기득권 세력에게 순순히 기득권을 양보하기를 요구하는게 씨알도 안 먹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다.

그럼 어쩌면 좋을까? 모르겠다. 촛불은 대안이 될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그건 이 책이 채워주지 못하는,그리고 아직은 그 어느 책도 채워 주지 못하는 내 갈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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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37)

yeonche:

흠. 이 책에 대해서 정말 정리를 잘 해놓으신 듯. 원재오빠의 독서 내공 덕분인가..~

수띵:

생각할게 좀 많아서 리뷰 쓰는데도 엄청 오래 걸렸어. 책 내용보다는 내 생각 정리하는 목적이 더 컸거든;;

그나저나, 지금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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