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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김경 지음/생각의 나무/9800원
솔직히 말하자면, 인터뷰집을 돈 주고 사 본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정 주제를 놓고 벌어지는 대담집 같은 경우야 몇 번 읽었지만, 이렇게 이러저러한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모은 책은 왠지 손이 안 갔다. 인터뷰들은 어쩌다 손에 잡힌 잡지나 온라인 기사에서 보는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새삼스래 인터뷰집을 손에 들고 나니 먼저 의문이 들었다. 인터뷰를 읽는다는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좋은(?) 인터뷰라는건 어떤 걸까.
우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터뷰(interview)'의 사전적 정의부터 찾아본다.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이 책에 담긴 형태의 글들은 '면접기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면접기사'는 특정 인물을 직접 만나(글로만 이루어지는 서면 인터뷰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해당 사항 없음) 질문을 주고 받는 형태로 작성된 글을 뜻한다. 따라서, 인터뷰는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어(interviewer)와 그에 답하는 인터뷰이(interviewee) 간의 일종의 대화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은 잡담이나 듣자고 남의 대화를 챙겨 읽는 수고를 하지는 않는다. 다른 경우도 있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읽은 인터뷰들은 대개 첫째, 특정 사안에 대해 전문가로부터 자세한 내용을 듣고자 하거나, 둘째, 인터뷰이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내용이었다. 전자의 경우는 다른 형식으로도 풀어낼 수 있는 내용을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방식을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아마도 인터뷰를 굳이 읽는 이유는 후자 쪽에서 찾는 것이 맞겠다. 그것도, 타인의 시각에서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듣는다는 것이 인터뷰만이 가지는 장점이라 하겠다.
이 책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는 후자다. 인터뷰어는 김경 이고, 책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인터뷰이는 유명인들이다. 인터뷰이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요즘 TV 토크쇼인 "人-라인"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_-)의 형식을 차용해 인맥 다이어그램을 만들어 봐도 좋겠다. 김훈, 함민복 같은 문인들부터 DJ DOC, 크라잉넛, 한대수, 싸이 같은 음악인들, 강혜정, 김윤진, 장동건, 주현 같은 연기자들, 정치인 노무현, 게다가 해외파 주성치와 아라키 노부요시까지. 내용도 재밌다. 이 인간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이었구나 싶기도 하고, 아예 이름조차 모르던 사람에 대해 알게 되는건 신선하기도 했다.
그런데, 성이 차지 않는다. 그들은 유명인이기에 인터뷰의 대상이 되었을 뿐, 정작 인터뷰에서는 그에 걸맞는(?) 무엇이 드러나지는 않는다.(아, 함민복 시인은 제외. 저 분 인터뷰는 정말 재밌었다) 저마다 생각이 있고,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게 발견이라면 발견이라고 할텐데, 이건 동네 형과의 술자리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거 아닌가.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며 추켜세우는 인터뷰어의 인물평은 조금 낯 간지러울 정도다. 서문에서 저자 스스로 '좋았던' 인터뷰를 추려서 책을 만들었다고 밝히는데, 그래서인지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게 지나치게 호의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이 '느낌'을 좀 더 밀고 나아가 보자. 앞서 인터뷰의 장점으로 어떤 질문에 대해 본인의 입으로 직접 대답을 듣는다는 걸 들었는데, 이게 함의하는 바는 '진실성'이다. 서술자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터뷰의 내용이 바로 그 사람의 진실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허나 진실성은 그렇게 기계적으로 담보되지 않는다. 인터뷰이가 솔직하기를 거부한다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어떤 이미지를 가장하고자 한다면 진실성에 대한 모든 가정은 무너진다. 이 지점이 바로 인터뷰어의 능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인터뷰어는 독자의 대리인으로 인터뷰이라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검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 검사가 용의자에게 호의를 감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심문 보고서를 얼마만큼 믿을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웠던 점은 바로 이 치열함의 부재였다. 김경의 발랄한 문체와 감각은 읽는 재미를 주긴 했지만, 인터뷰이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확인하는 이상의 깊이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아니, 어쩌면 이는 전문 인터뷰어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지 모른다. 이미지를 생명으로 하는 사람들이 집요하게 실체를 확인하려 드는 인터뷰어를 환영할 까닭이 없으니까.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어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렇게 적당한 가벼움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다시 인터뷰집을 읽을 일이 있을까?
Comments (2)
이 리뷰를 읽은지 꽤 되었는데
왜 오늘에서야 검사의 비유가 눈에 띌까? ^-^;
Posted by starmaru | July 30, 2008 10:00 AM
Posted on July 30, 2008 10:00
전에는 대충 읽은게지.. ㅋㅋ
Posted by 수띵 | July 31, 2008 3:02 PM
Posted on July 31, 2008 1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