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y 2008 | Main | August 2008 »

June 2008 Archives

June 12, 2008

대성당

대성당
- 레이먼드 카버 지음/김연수 옮김/문학동네/12000원

나는 책을 통해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경험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지식, 내가 겪지 않은 삶의 희로애락을 나는 책이라는 창을 통해 받아들인다. 그래서 나는 책은 바깥 세계로의 통로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책 속에서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책에 담긴 지식과 사물과 타인의 삶에 비친 나라는 존재의 한 조각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건 나만의 경험은 아닐거다. 같은 텍스트를 읽고도 저마다 다른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까닭은 책 속에서 찾게 되는 저마다의 조각이 다르기 때문일테니. 어쩌면, 책을 읽는다는 건 나 자신을 읽는 행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이 책 <대성당>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두려움'이다. 일자리를 잃고, 경제적으로 파산하고, 그래서 가족으로부터도 멀어져 알코올 중독에 빠진 삶의 모습들은 내게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부유한 삶에 대한 희망은 일종의 판타지일 뿐, 어떤 강렬한 감정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다르다. 실패한 삶은 약간의 불운만 겹쳐도 충분히 내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태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나만의 두려움, 악몽은 아닐테다.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직장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시대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두려움이며, 본질적으로 이 자본주의 사회가 사람들을 끊임없이 노동시장으로, 소외된 노동으로 강제하는 기본 장치이기도 하니까.

그걸 안다고 달라지는건 없다. 아니, 사실 알면서도 달리기를 멈출 수 없다는게 가장 큰 비극이다. 팍팍한 현실에 돌파구가 없다는 절망감과 두려움은 세상에 대한 냉소와 타인에 대한 경계, 적대감이라는 반응으로 이어진다. 그게 힘 없는 자신을 지켜낼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동구 아버지가 동구에게 늘상 강조하듯 "가드 올리고 상대방 주시하고" 사는게 삶의 유일한 지혜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나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안이 되더라. 책을 읽는 동안, 마치 내 몸 안의 독소가 빠져나가듯 가슴 속 덩어리 하나가 슬그머니 풀리는 것 같더라. 통쾌한 사건도 없고, 눈물 쏙 빼 놓는 신파도 없다. 그저 삶의 흐름에 휩쓸려 맥없이 흔들리는 부초 같은 삶들만 있을 뿐이다. 앞서 말했던,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그런 남루한 삶 말이다. 그런데, 그 소설들을 조용히 읽어 나가다 보면 오히려 어떤 안도감이, 마치 한참 운 후의 후련함 같은 차분한 평화가 찾아온다. 그건, 두렵다고 움츠러 들지 말라고, 적의로 가득찬 것처럼 보이는 저 사람도 너처럼 그저 세상이 두려운 또 한 명의 외로운 이일 뿐이라고 속삭여주는 카버의 목소리 덕이다.

그랬다.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고, 때로는 공격적이기까지 한 사람들이 있다. 저 사람은 나에게 왜 이럴까 싶어 짜증이 나고, 심지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그래서 세상살이가 힘겹다고 느껴지는 날이 있다. 하지만, 그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그 사람에게도 내가 힘든 세상살이에 얹혀진 또 하나의 짐 같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적대감이라는 가면을 벗고 마주하면 그들의 가면 뒤에 숨겨진 지친 얼굴과, 그 지친 얼굴이 품은 갓 구운 따뜻한 롤빵 같은 가슴을 만날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희망도 생겨난다.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의 빵집 주인처럼 말이다.

나는 아마도 책의 표제작인 [대성당]의 주인공 같은 사람일게다. 세상에 대해 냉소적이고 인생을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가까운 사람들과도 온전히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 나에게 카버의 소설은 주인공을 찾아온 맹인 같은 존재다. 소설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목소리는 내가 그저 머리 속으로만 안다고 생각했던 세상을 함께 그려주는, 인도해주는 손이 되어준다. 책을 덮고 눈을 감으면 그 손길이 느껴진다. 세상을 다시 그리는 내 손 위에 올려진 투박하지만 따뜻한, 그 두터운 온기를 말이다.

올 여름엔 그의 무덤에 들러 하아얀 꽃 한 송이 놓고 와야겠다.

June 27, 2008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김경 지음/생각의 나무/9800원

솔직히 말하자면, 인터뷰집을 돈 주고 사 본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정 주제를 놓고 벌어지는 대담집 같은 경우야 몇 번 읽었지만, 이렇게 이러저러한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모은 책은 왠지 손이 안 갔다. 인터뷰들은 어쩌다 손에 잡힌 잡지나 온라인 기사에서 보는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새삼스래 인터뷰집을 손에 들고 나니 먼저 의문이 들었다. 인터뷰를 읽는다는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좋은(?) 인터뷰라는건 어떤 걸까.

우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터뷰(interview)'의 사전적 정의부터 찾아본다.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이 책에 담긴 형태의 글들은 '면접기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면접기사'는 특정 인물을 직접 만나(글로만 이루어지는 서면 인터뷰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해당 사항 없음) 질문을 주고 받는 형태로 작성된 글을 뜻한다. 따라서, 인터뷰는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어(interviewer)와 그에 답하는 인터뷰이(interviewee) 간의 일종의 대화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은 잡담이나 듣자고 남의 대화를 챙겨 읽는 수고를 하지는 않는다. 다른 경우도 있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읽은 인터뷰들은 대개 첫째, 특정 사안에 대해 전문가로부터 자세한 내용을 듣고자 하거나, 둘째, 인터뷰이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내용이었다. 전자의 경우는 다른 형식으로도 풀어낼 수 있는 내용을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방식을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아마도 인터뷰를 굳이 읽는 이유는 후자 쪽에서 찾는 것이 맞겠다. 그것도, 타인의 시각에서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듣는다는 것이 인터뷰만이 가지는 장점이라 하겠다.

이 책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는 후자다. 인터뷰어는 김경 이고, 책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인터뷰이는 유명인들이다. 인터뷰이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요즘 TV 토크쇼인 "人-라인"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_-)의 형식을 차용해 인맥 다이어그램을 만들어 봐도 좋겠다. 김훈, 함민복 같은 문인들부터 DJ DOC, 크라잉넛, 한대수, 싸이 같은 음악인들, 강혜정, 김윤진, 장동건, 주현 같은 연기자들, 정치인 노무현, 게다가 해외파 주성치와 아라키 노부요시까지. 내용도 재밌다. 이 인간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이었구나 싶기도 하고, 아예 이름조차 모르던 사람에 대해 알게 되는건 신선하기도 했다.

그런데, 성이 차지 않는다. 그들은 유명인이기에 인터뷰의 대상이 되었을 뿐, 정작 인터뷰에서는 그에 걸맞는(?) 무엇이 드러나지는 않는다.(아, 함민복 시인은 제외. 저 분 인터뷰는 정말 재밌었다) 저마다 생각이 있고,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게 발견이라면 발견이라고 할텐데, 이건 동네 형과의 술자리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거 아닌가.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며 추켜세우는 인터뷰어의 인물평은 조금 낯 간지러울 정도다. 서문에서 저자 스스로 '좋았던' 인터뷰를 추려서 책을 만들었다고 밝히는데, 그래서인지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게 지나치게 호의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이 '느낌'을 좀 더 밀고 나아가 보자. 앞서 인터뷰의 장점으로 어떤 질문에 대해 본인의 입으로 직접 대답을 듣는다는 걸 들었는데, 이게 함의하는 바는 '진실성'이다. 서술자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터뷰의 내용이 바로 그 사람의 진실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허나 진실성은 그렇게 기계적으로 담보되지 않는다. 인터뷰이가 솔직하기를 거부한다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어떤 이미지를 가장하고자 한다면 진실성에 대한 모든 가정은 무너진다. 이 지점이 바로 인터뷰어의 능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인터뷰어는 독자의 대리인으로 인터뷰이라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검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 검사가 용의자에게 호의를 감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심문 보고서를 얼마만큼 믿을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웠던 점은 바로 이 치열함의 부재였다. 김경의 발랄한 문체와 감각은 읽는 재미를 주긴 했지만, 인터뷰이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확인하는 이상의 깊이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아니, 어쩌면 이는 전문 인터뷰어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지 모른다. 이미지를 생명으로 하는 사람들이 집요하게 실체를 확인하려 드는 인터뷰어를 환영할 까닭이 없으니까.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어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렇게 적당한 가벼움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다시 인터뷰집을 읽을 일이 있을까?

About June 2008

This page contains all entries posted to 다락방 서재 in June 2008. They are listed from oldest to newest.

May 2008 is the previous archive.

August 2008 is the next archive.

Many more can be found on the main index page or by looking through the arch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