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버티고
![]() |
아메리칸 버티고
- 베르나르 앙리 레비 지음/김병욱 옮김/황금부엉이/16500원
Vertigo 는 "현기증, 어지럼증"으로 번역되는 단어이니, 이 책의 제목 [American Vertigo]를 한글로 풀자면 "현기증 나는 미국" 정도 되겠다(설마 "미국인의 현기증"은 아니겠지). 제목만 봐서는 책의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데, 간단히 정리하자면 프랑스 철학자(?)라는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월간 애틀란틱>의 후원으로 한 세기 전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 여행 여정을 다시 한 번 따라가보며 오늘날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 이 책의 기획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 책은 여느 여행기와는 달리 어떤 지역, 어떤 도시라는 '장소'에 대하여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끔은 한다.) 대신, 미리 잘 계획된 스케쥴을 따라 각 지역을 돌며, 그 지역에 사는 유명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미국의 현안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 책의 주축을 이룬다.
레비가 만난 인물들의 면면은 흥미롭다. 조지 부시부터 시작하여 힐러리와 오바마, 존 케리와 같은 정치인들부터 시작해, 샤론 스톤, 우디 앨런, 워렌 비티와 같은 헐리웃의 스타들, 원주민 운동가와 무브온 등의 시민운동가들, 빌 크리스톨, 새뮤얼 헌팅턴, 프랜시스 후쿠야마과 같은 우파 이데올로그들, 조지 소로스 같은 금융계의 거물 등 한 권의 책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은 다양한 인물들을 접할 수 있다. 이만하면 현재, 그리고 미래의 미국을 이끌고 있고, 이끌 인물들을 어느 정도는 섭렵했다고도 할 수 있으려나. 각각의 인물과의 만남이 너무 짧은 분량에 담겨 있어 미진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의식 지도를 대략이나마 머리 속에 그려보는 것도 가능하겠다 싶으니까.
허나, 다분히 상층(?) 중심의 이러한 접근은 대개의 논의가 미국이 대외정책으로만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중간중간 저자가 여행 도중 접하는 미국의 여러 면면들이 단상처럼 언급이 되나, 문제는 그 고민의 깊이가 그닥 깊어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짐짓 진지한 척을 한다. 미국의 여러 시스템의 비만을 선언하거나, 미 원주민들의 삶의 질을 걱정하거나, 감옥을 둘러보며 푸코를 들먹거리거나, 불법이민자를 막으면서도 불법이민자에 의해 경제 시스템이 유지되는 미국의 현재를 의심스러워 하기는 한다. 말로는.
하지만 그게 전부다. 정작 직접 만난 원주민 운동가는 그가 시오니즘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당신은 틀려먹었어"라고 결론짓고, 목숨을 걸고 국경을 건넌 (그래서 그가 그토록 걱정해 마지 않는) 불법이민자들은 아예 직접 만나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대신 엉뚱하게 스트립댄서나 매춘여성들을 업소로 찾아가서 인터뷰하는 수고는 마다하지 않으니, 이 쯤에서 저자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접근하는 기본 프레임 자체가 좀 의심스럽다. ('선정성'이라는 단어가 슬그머니 떠오른다) 당신, 미국이라는 나라에 진짜 관심이 있기는 한건가. 혹시 관심있는건 당신 나라의 반미주의자들과의 논쟁 뿐인게 아닌가.
물론 외부인으로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가장 관심이 가는 주제 중 하나다. 게다가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상세히 설명해주는 미국의 대외정책 관련 분파(?)들은 그 자체로 유용한 정보와 생각할거리가 된다. 허나, 그 정도로는 왜 이런 여행이 필요했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건 여행을 통해 배운게 아니지 않는가? 각각의 인물과의 만남이 그 인물의 특성을 충분히 드러내는 것도 아니요(즉, 이 책은 인터뷰집이 아니다), 미국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도 아니며(즉,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다), 미국의 사회/문화적 현상들을 의미 있게 분석하는 것도 아니라면(즉, 이 책은 문화비평서가 아니다), 일 년 이상 미국 곳곳을 여행한 결과물이기라기엔 좀 허망하다. 차라리 미국의 대외정책(특히 네오콘의 이데올로기들)을 제대로 파고들어, 각 진영의 인물을 집중적으로 인터뷰하며 치고 받는게 더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니었을까.
또 하나, 나는 이 책의, 아니 저자 레비의 가장 큰 결점 중 하나로 꼽는 것이, 그가 책 여기저기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이스라엘과 시오니즘에 대한 일방적 지지를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건, 우리가 학문이나 저널리즘에 요구하는건 균형감각이다.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그는 단 한 번도 팔레스타인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도 서구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충돌을 이야기 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충돌을 간과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시오니즘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요구하는 유대인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그의 머리속에서는 과연 팔레스타인의 현실에 대한 논점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걸까?
누구나 자유를, 평등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언명의 진실성, 그것을 레토릭과 구분해 주는 것은 바로 철학적 일관성일 것이다.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들이대는 잣대가 달라지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주장은 결코 철학자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이데올로그의 언어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저자를 '철학자'로 부르길 주저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그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고 있는 이 기묘한 의식의 진공 영역이, 마치 블랙홀이 빛의 경로를 굴절시키듯, 저자의 사유를, 그의 통찰력을 굴절시키고 있지 않을까? 이라크전에 반대하다면서도 결국 "사담 같은 독재자도 나쁜 애들인건 분명하잖아", "미국 네오콘들도 그렇게 꼴통들인 것만은 아냐"라는 식으로 어물쩡 말을 흐리는 이면에는 역시 팔레스타인 문제에 당당할 수 없는 그의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자리잡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혹평을 해대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에는 나쁘지 않은 책이다. (아, 변명이 안 되고 있다.) 특히 미국이라는 나라를 그 이름 외에는 별로 알고 있는게 없다면, 신선함을 느낄만한 내용도 많이 있다. 이런 사람도 있고, 미국에는 이런 것도 있구나 싶은 정도? 하지만 이 경우에는 오히려 이러저러한 부연설명을 가뿐히 생략하시는 저자 덕분에 인터넷 검색을 아주 많이 해줘야해서 번거로울 수도 있겠다. 이러나 저러나, 별점 둘 이상은 힘들겠다.(그래, 별점은 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