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
- 당대비평 편집위원회 엮음/웅진지식하우스/13000원
어쩌다보니 지금은 유야무야 화제에서 멀어졌는데, 한국 사회에서 2007년 최고의 사건은 그 중요성이나 파급력으로 볼 때 단연 한미 FTA 체결일 것이다. 양국 국회에서의 비준을 앞두고 일종의 소강국면에 들어간 현재, 올해말 대선과 내년초 대선을 앞두고 한미 FTA 비준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아주 농후하다. 하지만, 보수 정당들에 의해 과잉대표되고 있는 우리의 정치 현실을 보면, 그 논쟁 역시 기껏해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견강부회하는 식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더더욱 높다.
위기는 기회다. 아니,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은근슬쩍 회피하려는 이들의 빈말에 현혹되자는게 아니다. 위기는 우리에게 그동안 은폐되었던 진실을 드러내준다. 외환위기가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듯, 격변의 시기에는 은폐되거나 잊고 있었거나, 혹은 우리가 애써 망각하고자 했던 문제점들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한미 FTA 체결의 과정에서 내가 느낀 당혹감도 마찬가지였다. 내 나라의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결정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 그것이었다. 자기가 옳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대통령과 이합집산에 밥그릇 다툼에만 관심있는 보수정당 및 국회 앞에서 나는 국민으로서 아무런 발언권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항상 상존하고 있던 우리 정치 시스템의 한계였지만, 중대한 위기 국면 앞에서 그 한계는 더 뼈저리게 다가온다. 대표성의 문제와 의사결정 구조의 한계.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였다.
물론, 여기서 "민주주의"는 몇가지 차원에서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이 책의 제목인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가 의미하는 것처럼, 거대담론으로서의 민주주의, 민주화에 파묻혀 외면당한 일상에서의 민주주의, 시민사회에 뿌리내린 작은 민주주의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있다. 정치권력 획득 방식의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여전히 이 사회는 군대와 학교, 가정에서 학습되는 권위주의에 깊이 침윤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뿌리 깊이 간직하지 않는 이상, 과거의 폭압적 권위주의 세력이 정치권력을 "민주적"으로 다시 쟁취하게 되는 오늘날의 상황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우석훈씨의 표현을 따르면) "대통령의 폭주"를 견제하고 의회정치를 복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문제를 들 수 있다. 한미 FTA는, 대통령이 맘먹고 달려들었을 때 이를 견제할만한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는, 이른바 "87년 체제"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물론 보수정당 일변도의 의회가 제 기능을 못한 탓도 크지만, 행정권력과 의회권력 사이에 적절한 견제와 균형의 장치가 없이 대통령의 의지가 관철되어 버린 것 역시 분명하다. 비준이라는 동의의 절차가 남아있다고는 해도, 일단 체결된 협상을 거부하는 것은 체결되기 전보다 훨씬 더 큰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바, 국회비준은 견제의 장치라기보다는 최후의 방어막 같은 제도로 보아야 한다. 의회의 보다 상시적인 견제가 가능할 때, 우리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지 못한 현재의 국회에도 제대로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는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와 충돌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민주정치는 본래 그 정치체의 구성원들 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외부로부터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한미 FTA와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는 일국의 경제 시스템을 다국적 자본의 영향권 하에 종속시켜,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자국의 정치 시스템을 통해 스스로의 경제적 이해를 지키려는 모든 시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다국적 자본의 시대에 자유무역은 모든 정치적, 윤리적 가치를 모두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여 사실상 민주주의와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그 피해는 당연히도 최소한의 시장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87년 '민주화' 항쟁 20주년을 맞는 한국사회는 여전히 '민주주의'라는 과제를 맞닥뜨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과거와 같이 "민주화"라는 거대 담론으로 모든 문제들을 환원시키자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이미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는 언설에 현혹되지 말고(공화주의 전통을 말살한 대통령이 '공화'당을 만들고, 광주의 학살자가 '민주정의'당을 만드는 나라 아닌가), 여전히 미완인 민주주의의 근본 의미를 계속 실현시켜 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책에서 87년 이후의 한국 사회를 되짚는 여러 저자들의 다양한 관점들은 그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책에 실린 여러 글 중에서는 '386 세대'라는 표현이 가지는 한계(87년의 성과를 당시 학생이었던 인텔리 그룹이 독점하는 현상)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방현석 씨의 글과, 사회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존하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질서를 비판하는 권인숙 씨의 글, 그리고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임지현 교수와 박노자 교수의 글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87년 회고담에서 갑작스레 정보 인권의 문제로 넘어가는 김두식 교수의 글은 다소 생뚱맞았고, 최장집 교수와 대담을 나눈 김우창 교수는 지나치게 관념적인 접근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몇몇 글들은 지나치게 논문스러워서(?) 읽기에 지루한 감도 없지 않다.
당대비평 편집위원회가 엮은 이 책은, 87년 이후의 민주주의 라는 기획 자체로는 충분히 유의미하나, 전체적으로는 기획이 다소 느슨하고 광범위해 각 글들이 너무 따로 노는 것이 불만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만큼 폭넓게 한국 사회의 오늘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이런 노력들이 계속되어, 대학 시절 "우리 안의 파시즘" 이라는 문제제기로 내 숨통을 틔워주었던 당대비평이 다시금 복간될 날을 기다려본다.
Comment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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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bqpgcc | May 7, 2011 2:47 PM
Posted on May 7, 201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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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bqpgcc | May 7, 2011 2:4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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