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리와 나 | Main | 프라하의 소녀시대 »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 홍은택 지음/한겨레출판/15000원

읽은 책은 쌓여가는데 리뷰가 점점 밀린다. 바쁜 와중에도 자기 전 잠깐, 휴일 한 나절을 온전히 책 읽는데 쓰면서도 이상하게 리뷰를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절대적 시간이 부족한게 아니라, 되새김질을 할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탓일게다. 읽기가 휴식이었다면 쓰기는 생산인데, 이 input -> output conversion 에 투입할 에너지가 부족하니 결과물이 없을 수 밖에. 어쨌거나, 더 미뤘다간 책 내용과 감흥이 모두 날아가 버릴 것 같다. 서둘러야지.

요즘 부쩍 내 몸에 대한 관심이 늘어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몸보다는 머리를 신뢰하는 타입니다. 운동을 할 때도 몸이 반응하기보다는 원리를 파악해 머리로 배운다. 고등학교 때 농구 레이업슛을 실기시험으로 보는데, 남들은 쉽게 그냥 휙휙 넣는 것 같은데 나는 '왼발, 오른발, 왼발, 점프, 슛' 이런식으로 단계화해서 몸을 움직였던 기억도 난다 -_- 지난 겨울 스노우보드를 처음 배울 때도 비슷한 식으로 시도하다가 하루종일 땅에서 기다시피 했던 기억도 아울러;; 암튼, 내 몸은 나에게 '머리가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무엇' 정도의 의미였을 뿐이다. 최근 들어 뱃살은 생각대로 절대 안 움직인다는걸 깨달았지만 -_-

얼마 전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을 읽었다.(묘하게도, 이 책의 저자인 홍은택씨가 번역한 책이다) 미국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는 이야기인데, 읽으면서 과연 나는 책 속에 나오는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에 속할까, 아니면 저자처럼 어떻게든 "끝까지 가보는 사람"에 속할까 궁금해졌다. 물론, 현재로서는 90% 이상의 확률로 전자에 속할거다. 하지만, "과연 내 몸이 어느 정도까지 버텨줄까?", 혹은 "내 몸을 내가 어느 정도까지 한계점으로 끌고 갈 수 있을까?"와 같은 의문이 계속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내 몸에 대해 거의 모른다는 깨달음과 함께.

이번에는 자전거다. 이 책의 저자 홍은택씨는 버지니아주 요크타운에서 자전거의 뒷바퀴를 대서양에 담근 후, 오레곤주 플로렌스에서 자전거의 앞바퀴를 태평양에 담글 때까지 미국을 동서로 가로질러 6400km 를 달렸다. 자동차로 워싱턴주를 가로지르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거리다. 그 먼 거리를, 그것도 화석연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인간의 심장이 내뿜는 에너지만으로 정복한다는건 과정도 과정이지만 성취 그 자체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저자가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과정이니까.

하나의 목표를 향해가는 저자의 여정이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면, 저널리스트다운 꼼꼼한 글솜씨로 기록한 미국과 미국인의 모습은 책의 다른 축이 되어 읽는 이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이미지를 걷어내고 몸으로 직접 만나는 미국의 모습은 역시 다면적이다. 초강대국의 오만이 은근히 도사리고 있는가하면, 인종이나 국적 따위는 개의치않고 맞이해주는 따스한 얼굴들도 있다. 어느 곳에 가나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아무 연고도 없는 바이커들에게 잘 곳을 제공해주고 환대해 주는 사람들을 보자면, 사람은 본래 따뜻한 존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삼지 않는다면, 국가니 민족이니 이런 이름을 지울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 인간 대 인간으로 진실하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호들갑스럽게 자전거를 장만하고 페달을 밟을 계획은 없지만, 나도 차츰 내 몸에 대한 통제(?)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앉아서 공부만 하느라 몸이 둔해졌다는 엄살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할 수 있었던건 기초 체력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달리기나 수영으로 단련한 몸이 있었기에 더 큰 목표를 향할 수 있었던 것. 책 몇 권 읽고 나서 그저 마음만 들떠서 내 능력 밖의 목표를 잡아서는 금새 포기하고 말 뿐이다. 조금씩 움직이자. 틈 나는 대로 산행도 하고. 그러면 나도 내 인생의 하프 타임에 뭔가 큰 목표에 도전해볼 수 있을게다.

TrackBack

TrackBack URL for this entry:
http://www.turnleft.org/cgi/mt/mt-tb.cgi/1518

Post a comment

About

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from the blog posted on June 14, 2007 10:46 AM.

The previous post in this blog was 말리와 나.

The next post in this blog is 프라하의 소녀시대.

Many more can be found on the main index page or by looking through the archives.

Powered by
Movable Type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