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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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나
- 존 그로건 지음/이창희 옮김/세종서적/10000원
새벽 1시. 연일 계속되는 야근에서 돌아와 얼른 씻고 지친 몸을 침대에 누워 책을 집어들었다. 오늘은 말리를 보내야 할거다. 평소 눈물이 많은 나는 분명 엉엉 울게 틀림없었고, 따라서 이 책을 까페 같은 곳에서 끝낼 수는 없었다. 차라리 방에서 남 신경쓰지 말고 맘껏 울어버리고 잠들어야지. 예감은 적중. 실컷 눈물을 쏟고 노곤해진 상태로 잠들어 버렸다.
사실, 신파를 좋아하진 않는다. "울어"라고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면 기분이 찝찝하다. 게다가 찝찝해 하면서도 시키는대로 울고 있는 날 보는게 더 짜증난다. 하지만, 이 책은 신파와는 거리가 멀다. 말리라는 이름의 말썽꾸러기 래브라도 리트리버와 13년을 동고동락한 이 이야기에서 눈물을 흘리게 되는건 기껏해야 마지막의 몇 장일 뿐이다. 그 외의 90%에서 나는 행복했다. 개를, 애완동물을 키운다는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아니, 누군가에게 애정을 갖고 교감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지 않을까. 영화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에서 하나하나 복기해낸 기억이 말해주었던 것처럼.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나는 애완동물 애호가는 아니다. 오히려 간혹 사람에게보다 동물들에게 더 관대한 사람들을 보면 삐딱한 마음이 먼저 앞서는 편이다. 그래서 침이 마르도록 칭송으로 일관하는 개/고양이 예찬서라면 사절이다. 하지만 이 책 <말리와 나>는 다르다. 제목이 <"말리"와 "나">인 이유가 있다. 말리는 "개"라는 일반명사가 아닌 "말리"라는 한 존재의 고유명사이고, 이 책은 그 존재가 "나"의 인생과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말리는 저자가 신혼 초기부터 아이를 여럿 낳고 이사를 가고 직장을 옮기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기를 오롯이 함께한 동반자였다.
소중한 이의 의미는 종종 함께 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헤어진 후에야 더 시리게 다가오곤 한다. 말리와 함께 울고 웃었던 여러 해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말리가 죽은 후 말리를 추억하는 대목에서 더 소중한 이야기들이 많이 읽힌다. 개가 없으니 집안이 참 깨끗하게 유지된다던지, 가구나 집이 망가질 일이 없어 가욋돈이 덜 든다든지 등등 개가 없으니 사는게 참 편해졌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깨닫는다. 말리의 존재는 그 모든 불편함들을 모두 보상하고도 남는, 결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음을.
말리. 너는 결코 남들이 말하는 최고의 개는 아니었지만, 너의 가족들에게는 최고의 개였단다. 사랑은 어떤 이유도 필요치 않고 그저 존재 자체로 충만하다는 진리를 너는 너무도 잘 보여주는구나. 편히 쉬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