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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1, 2007

미국의 송어낚시

미국의 송어낚시
-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김성곤 옮김/비채/8900원

진짜 드문 경우인데, 이 책은 두 번 읽었다. 책을 덮어도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친절한(?) 해설을 읽으니 더 헷갈린다. "강렬한 반체제 정신, 기계주의와 물질주의 비판, 목가적 꿈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허무감"이라니, 진짜? 내가 읽은 책은 모호한데, 해설이 너무 강렬하다. 내가 잘못 읽은걸까 싶다가도 석연치 않은 의구심이 든다. 분명 세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 있고, 그럴 때 해설을 보면 숨겨진 맥락을 찾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 책은 뭔가 해설이 해설이라기보다 "이 책은 이런 의미야"라고 정의해 버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모호한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이 모호함에 숨겨진 어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모호함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게 옳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에 달린 해설도 하나의 가능한 해석이다. 하지만, 그건 책이 쓰여진 시대의 시대정신과 어긋난다. 60년대 히피들의 삶을 반자본주의 전선의 투쟁으로 해석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오류다. 히피 문화는 그들의 삶의 방식 그 자체로서의 목적이었지,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때문에, 책이 쓰여진 시대(1960년대)를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말랑말랑하게 바뀐 한글어판의 표지는 어차피 책의 내용과는 전혀 다르니까 제쳐두고, 원래 책의 표지인 아래 사진을 보자.(책 중간중간 저자는 이 사진을 참조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중요한 사진임)

아무래도 이 사진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건 뒤편의 벤자민 프랭크린 동상이 상징하는게 어쩌고 저쩌고가 아니라 저자 브라우티건(과 그 옆의 여자)의 모습이다. 한 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이 사람들을 오늘의 기준으로 재단하자면, 한마디로 "괴짜"들이다. 하지만 몇 명이 저러고 다니면 괴짜 취급을 받고 말겠지만, 많은 사람이 저렇게 하고 다니고 있었다면 그건 문화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건 바로 저 문화, 정확히 말하자면 반문화(counter culture)의 정신이다.

반문화의 시발점은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문화가 뒤섞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미국의 물질적인 산업문명 속에서 성장한 미국의 젊은이들은 전쟁 도중에 마주친 구세계(유럽과 아프리카)의 문화에서 크게 정신적인 고양을 받는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미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국비 지원으로(참전의 대가였다) 대학에 대거 진학했고, 이들이 새로운 지식인 계층으로 떠오르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히피 문화가 형성되게 된다.

이와 함께, 다른 한쪽에서는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그 세력을 키워가며 미국 사회를 흔들고 있었다. 이 역시 전쟁의 영향이 컸는데, 지금껏 2급 시민 취급을 감내해왔던 흑인들이 자신들도 전쟁에서 똑같이 피를 흘렸음을 강조하며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이 시기를 다룬 <포레스트 검프>와 같은 영화를 보면 반전운동 진영에 군복을 입은 흑인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군복은 이들에게 동등한 시민권의 상징 같은게 아니었을까 싶다.) 히피 문화는 민권운동의 든든한 동반자였다. 기존 질서가 강요하는 권위와 억압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진정한 자유를 추구한다는 대의를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흑인들은 실재하는 제도와 싸워야 했기 때문에 보다 정치적이고 물리적인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 백인이었던)히피들은 고정관념이나 관습을 무시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다분히 개인적이고 부담 없는(?) 싸움을 벌였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미국의 송어낚시>는 바로 이 시대, 그 중에서도 히피 문화의 산물이었다. 모든 곳에서 기성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자유를 갈구하던 그 시대에, 문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의미에의 집착, 틀에 박힌 서사 형식, 기승전결이 분명한 이야기 구조 등은 무너뜨려야 할 또 하나의 권위였을 것이다. <미국의 송어낚시>는 바로 그 교본이라고 할 수 있다. 모호하지만 읽는 사람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객체들("미국의 송어낚시"는 책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과 뒤죽박죽의 서사구조들은 기존 문학의 관점에서보면 말도 안되는 글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책은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강하게 어필했다. 매력적인 냉소와 버무려진 이 새로운 스타일은 요즘 말로 치자면 "cool~" 하다고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에 달린 역자서문과 각주, 해설을 읽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역자가 책을 해석하는 방식은 책의 시대적 맥락을 무시하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그것도 전통적인 문학의 독법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중간중간 모르는 이름이나 지명이 나오면 차라리 인터넷을 찾아보는게 좋다. 각주로 달린 역자의 친절한(?) 설명은 오히려 독자의 자유로운 독해를 가로막는다. 게다가, "사라진 꿈과 희망을 찾기 위해 떠나는 송어낚시 여행"과 같이 말랑말랑한 문구와 표지그림은 거의 "낚시질"에 가깝다. 여기에 속아 책을 산 독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송어 하천을 피트 단위로 잘라서 쌓아놓고 파는 책 속의 "클리브랜드 폐선장" 에피소드가 나에게 연상시킨건 바로 출판사의 이 기만적인 마케팅이었다.

"이 포스트모던한 소설책 한 권을 사시면 강렬한 반체제 정신, 기계주의와 물질주의 비판, 목가적 꿈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허무감을 맛보실 수 있습니다"

얼쑤.

February 19, 2007

핑거스미스

핑거스미스
- 세라 워터스 지음/최용준 옮김/열린책들/15000원

오랜만에 가벼운 기분으로 읽은 추리(?) 소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도 흥미진진했지만, 19세기 영국 사회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한 편으로는 디킨즈의 전통을 이어받은 듯한 런던 뒷골목의 음울한 세계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펼쳐지고, 다른 한 편으로는 겉으로는 성인군자들인 척하지만 뒤로는 방탕한 생활에 절어 살았던 영국 상류층의 위선을 비웃는다. 당시 템즈강을 오가던 바지선이 소설에서처럼 동력선이 아니라 강 건너편의 말들이 끌어당기는 방식이었다는 오류만 빼면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완벽히 재현해 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책은 크게 세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1부와 3부는 수전의 목소리로, 2부는 모드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시점이 일인칭으로 제한되어 있다는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그만큼 제한적이라는걸 의미한다. 책의 긴장감을 유지하는건 바로 이 제약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당연히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는데, 흥미롭게도, 이야기의 긴장감이 줄어드는게 아니라 다른 종류의 긴장감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거칠게 나누자면 1부에서는 범죄 소설을(음모를 공유하는 공범의 기분으로), 2부에서는 심리 소설을(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인물의 행동 및 심리를 지켜보고), 3부에서는 스릴러 소설을(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해결될지 궁금해하며) 읽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하지만, 많은 소설이 그러하듯 이 소설에서도 중심인물 간의 사랑이...(에효) 중요하다. 문제는 이야기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는게 아니라, 결국 이러저러해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더라.. 로 가는데는 중요하다는거다. 그 사랑이 여성 간의 동성애라는 점이 색다르긴 하지만, 남녀간의 사랑이었거나 아니면 남성간의 사랑이라고 설정을 바꿔도 별로 달라질건 없다.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불만이 없겠지만, 나로서는 상황을 좀 더 극으로 몰고가 인간 심리 밑바닥의 끈적끈적한 검댕들을 좀 더 긁어냈으면하는 욕심이 든다. 젠틀먼은 너무 쉽게 죽었다.(웃.. 스포일러다)

BBC 에서 3부작 미니시리즈로 만들었다는데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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