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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이야기(So far from the bamboo grove)

요코 이야기(So far from the bamboo grove)
- Yoko kawashima Watkins 지음/Beach Tree

애초에 나는 이 책을 읽을 생각이 없었다. 이 책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이 발칵 뒤집힌 것 때문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니다. 이 책에 관한 기사(<“한국인이 일 소녀 강간” 미 학교 교재 파문 확산>, 한겨레 1/17)가 처음 뉴스 사이트에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는 그냥 '어느 몰지각한 일본 사람의 망언이 또 활자화되었나 보군' 정도로 생각했었고, 이 책에 대해 비난 여론이 들끓자 '그렇다고 책 한 권 가지고 저 호들갑을 떨건 또 뭐람' 이라고 생각했었다. 다시 말해, 그냥 일회성 사건으로 넘어갈 문제였다. 읽을 책이 안그래도 많은데 굳이 찾아 읽을 필요가 뭐가 있을까.

그런데, 문득 한국판으로 번역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온라인 서점 웹페이지에 들어가서 해당 책을 찾아보면서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절판. 혹시나 해서 다른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봤다. 역시나 절판이었다. 모든 서점들이 마치 합의라도 한 듯 이 책을 팔지 않기로 한 것이다. 국내 출판사인 문학동네가 절판을 결정한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24일부터였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문제의 서적은 국내에서 구해볼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YES24 의 경우는 이제는 아예 도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 이제 이 책은 존재 자체가 부정되고 있는 듯하다.)

그 이유는 절판된 책의 소개 페이지에 실린 댓글들과 온라인 포탈들의 댓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의 내용에 대한 비난은 저자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고, 이내 화살은 이 책을 번역 출간한 출판사와 역자에게 향해졌다. 이런 쓰레기 같은 책을 왜 출간했냐는 것이다. 출판사와 역자는 돈 몇 푼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로 간주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책을 계속 팔면 매국노(?)들과 파렴치한 일본인에게 좋은 일밖에 안되니까 빨리 절판시키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여론을 거슬러서 좋을게 없다는 사실을 아는 서점들은 재빨리, 그리고 고민 없이 책을 절판시켰을 것이다. 이 책 한권 안 판다고 손해볼건 없을테니까. "나쁜 책"은 이제 아무도 읽을 수 없다. 이렇게 사회적 자기 검열 시스템은 완성된다.

제발 좀 쪼잔해지지 말자. 책을 계속 판다고해서 저자나 역자, 출판사가 떼돈이라도 벌 것 같은가. 한국 사람들 그렇게 책 많이 읽는 사람들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출판의 자유(본질적으로는 사상의 자유)는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가장 최악의 책조차도 독자에 의해 평가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먼저 읽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책을 읽지 말라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읽지 못하게 해서는 곤란하다. 사실 이런 식의 절판은 독자의 지적 능력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옳고 그름은 독자가 판단할 문제다.

아뭏든, 덕분에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글들 중에 책을 직접 읽어보고 쓴 글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가타부타 판단을 위해서는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을 검색해보니 거의 모든 도서관 지점마다 1~2권씩 등록되어 있었고, 마침 동네 도서관에는 바로 대여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도서관에 들러서 책을 빌렸고, 읽던 책을 마치고나서 읽기 시작했다.

가능한 거리를 두고 읽으려 노력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불쾌한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본국으로 도망치는 일본인들에 대한 공격이 있었을거란 점은 매우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분출하는 분노를 힘으로 억누르고 있었는데, 그 힘이 한순간 사라지면 폭발하는거야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문제는 이 책에서는 한국인(특히 Communist-Army)들이 점령자들에게 역사적 죄과를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인들의 재산을 노리거나 일본인 부녀자를 겁탈하기 위해 일본인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사실들(예컨데 일본이 패망하기도 전에 38선 부근인 원산의 기차역을 Communist Army가 점거하고 기차를 수색한다는 이야기)이나 말도 안되는 설정(예컨데, 일본인 자녀들이 식민어인 한국어를 한국인들을 속여 넘길 정도로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설정)들이 여기저기서 보이면서 짜증이 점점 밀려왔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의 당연한 분노를 잠시 밀어두면, 그렇게 나쁜 책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다. 나는 책의 저자(요코)가 일본의 과거를 미화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떠나, 11살 어린아이가 피난길에서 느꼈을 적의와 공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책에 묘사된 한국인들의 공격 및 강간 역시 일본인 피난민들 사이에 떠돌았을 흉흉한 소문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역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 책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논거들 역시 문학적 변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예컨데 함경도 나남에는 대나무가 자라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는데(이 책의 원제목은 "대나무 숲 저 멀리"이다), 대나무 숲 속의 집이라는 일본인들의 이상화된 집의 전형으로 설정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미국인을 위해 씌여진 책이다. 일본인을 공격하는 한국인들도 대개는 Communist-Army 인데, 미군 점령하에 있는 한반도 남쪽은 안전하고 소련과 Korean Communist-Army가 점령한 북쪽은 무법천지라는 이분법은 반공소설의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책 초반에 요코 어머니가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건 너무 속보이지 않는가.) 게다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삶의 가치들은 지나치게 교훈적이어다. 요코의 어머니는 당장 잘 곳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교토로 데려가 기차역에서 노숙을 하면서도 학교를 다니게 한다던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학생들과 그 쓰레기를 주워 재활용하는 요코를 대비시킨다던가, 학교로 배달된 자기 편지를 교장이 먼저 열어봤다고 항의하는 요코의 모습 등을 보고 있으면 아예 학교에서 교재로 쓰라고 쓴 책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미국 중학교에서 교과서로 쓴다고 해서 전혀 놀랄 일은 아니라고 본다.

결국 저자에게 부족한 것은 역사적 균형감각이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아마도 직간접적으로) 고난과 역경을 통해 삶의 교훈들을 전달하고자 했겠지만, 역사의 한 쪽 측면만을 보여줌으로써 반대편에서 더 크고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온 한국인들을 모욕하고 말았다. 만일 저자가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진지하게 인식한다면, 책을 쓰는데 있어 훨씬 신중했어야 했다. 아마도 미국 출판사 쪽에서도 이를 느꼈는지, 책 마지막에 "Notes from the Publisher"라는 장에서 한일간의 역사적 관계와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추가해 놓기는 했다. 책 전체가 주는 강한 인상에 비하면 미흡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는 이들이 나름대로 균형을 맞추는 열쇠가 될 수도 있겠다.

이 책이 이슈가 된 것은 미국에 사는 한 한국인 학생이 이 책이 교재로 사용되는 것을 반대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의를 제기한 것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미국 교과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보다는 한일간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교재를 추가로 마련해서 폭넓은 토론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는게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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