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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07 Archives

January 17, 2007

흡혈귀의 비상

미셸 투르니에 지음/이은주 옮김/현대문학/15000원

오랜만에 읽는 미셸 투르니에.

미셸 투르니에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흡혈귀의 비상"이라는 제목을 보며 신화를 변주하는 또 다른 소설을 기대하며 그답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제목이 "미셸 투르니에 독서노트"라는 부제와 함께 묶이면 일단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흡혈귀라니. 호러 소설이라도 읽은걸까.

"... 한 권의 책을 출판할 때 그는 익명의 남녀의 무리 속으로 종이로 만들어진 새떼를, 피에 굶주려 야윈 흡혈조들을 풀어놓는 것이다. 그 새들은 닥치는 대로 독자를 찾아 흩어진다. 한 권의 책이 독자를 덮치면, 그것은 곧 독자의 체온과 꿈들로 부푼다. 그것은 활짝 피어나고, 무르익어, 마침내 자기 자신이 된다. 그것은 작가의 의도들과 독자의 환상들이 구별할 수 없게 뒤섞여 있는 - 어린아이의 얼굴에 아빠의 모습과 엄마의 모습이 섞여 있듯이 - 풍부한 상상의 세계이다."

저자 서문에 담긴 이 흡혈귀의 비유는 (비록 피를 빨리는 입장이긴 하지만) 독자의 지위를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격상시켜 책읽기를 즐기는 독자에게 제법 으쓱하는 기분이 들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이내 이 기분은 위화감으로 바뀌기 마련인데, 미셸 투르니에가 몸소 보여주는 독서는 지친 하루를 마감하는 잠자리 독서 같은 나같은 소시민적 독서와는 차원이 다르다는걸 깨닫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넘나들고 각 작가의 생애와 유럽의 역사를 아우르는 '읽기'라니!

차라리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쓰기'에 가깝다. 유럽 근현대의 거장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재로 삼아 미셸 투르니에 자신의 정신세계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흡혈귀는 책이 아니라 미셸 투르니에 자신이 되지 않을까. 거꾸로 그들 책에서 피를 빨아 자신의 세계를 살찌우고 있으니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책을 읽고 나면 유럽 문학에 대해서보다 미셸 투르니에라는 작가에 대해 더 풍성하게 알게 되는 느낌이 든다. 예컨데 중간 중간 등장하는 대립항들은 "소크라테스와 헤르만 헤세의 점심"(진짜 이 번역제목 맘에 안 들지만)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내용들이 다시 서술되고 있으며, 레비 스트로스에 대한 회고에서는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의 기원을 짐작할 수 있게 되는 식이다.

우연한 일이겠지만, "독서 노트"에 해당하는 프랑스어는 "Note de Lecture"인데, 여기서 영어 "reading"에 해당하는 단어 "lecture"는 영어의 "lecture", 즉 "강의"라는 단어와 철자가 같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마치 미셸 투르니에에게서 유럽 문학사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교재에 해당하는 각 원전들을 미리 읽는다면 더욱 풍성한 강의가 될 것이다. 물론 언제나처럼 불성실한 학생인 나는 교재도 읽어보지 않고 수업을 들어 많은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점은 고백해야겠다.

January 23, 2007

취미는 독서

- 사이토 미나코 지음/김성민 옮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12000원

이 책을 구입한건 책의 부제 "21세기 일본 베스트셀러의 6가지 유형을 분석하다!" 때문이었다. 음, 좋아. 이런 유형의 부제는 "훗, 너는 이미 다 간파되었다. 뻔한 녀석 같으니라고"를 강하게 암시하지 않는가. 라는게 내 생각이었는데, 지금 다시 보면 어째서 저 문장을 그렇게 냉소적으로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베스트셀러에 대해 갖고 있는 냉소가 선입견으로 작용했을거다.

막상 주문한 책을 받고 나니, 내가 잘못 짚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번역출판한 곳 이름이 좀 수상하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라니. 책날개에 적힌 역자서문(들어가며) 발췌는 더욱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책을 만드는 사람 처지에서는...(중략) 이럴 때 누군가가 좀 알려줬으면 싶기도 하다. 여기에 매우 맞춤한 책이 있다."

라니. 오 마이 갓. 혹시 이거 베스트셀러 만들기 교본 같은 책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나를 현혹시킨 부제는 원본에는 없고, 번역출판사에서 넣은 것이다. 이런.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혼란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할지 아니면 황당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역자의 의도와 이렇게 어긋나는 책은 처음 본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저자 사이토 미나코가 잡지에 연재했던 "백만인의 독서"라는 칼럼을 모은 것이다. 칼럼의 기획 의도를 간단히 정리하면, "어떤 베스트셀러가 나오면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은데, 상당수는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건네들은 정보로 하는 말들이다. 그렇다고 뒷담화나 하려고 책을 일부러 사서 보라고 하기 뭐하니, 내가 대신 읽어보고 소감을 말해주겠다." 정도가 되겠다. 베스트셀러들을 유형별로 분류한 것은 단행본으로 묶으면서 편의상(?) 분류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니, 대충 글 분위기가 어떨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 대해 맘 먹고 달려들어 분석한 글이 아니라, 대상이 베스트셀러들로 제한된 주관적인 서평집일 뿐이다. 책을 읽다보면 (몇 권의 책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도 보여주지만) 대개의 경우는 "도대체 왜 이런 책이 잘 팔리는거야?"라는 비명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그리고나서 "이래서 팔린게 아닐까?"라는 자문자답을 하는데, 그 답을 유형별로 분류한게 6가지가 나온거다. 때문에 이 유형 분류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지만, "이렇게라도 이해해줘야지"라는 비아냥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책은 상당히 재밌다. 너무나도 일본어스러운 문체와, 저자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시니컬한 말투를 보고 있으면 계속 낄낄거리게 된다. 특정 책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꼭 균형잡혀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중간중간 보이는 날카로운 관점들은 그녀가 결코 가볍게 책을 읽는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으며, 또한 그녀의 시각 역시 하나의 입장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읽으면 상당히 경쾌하게 즐길 수 있는 책이 된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일본 베스트셀러 중에는 한국에서도 히트친 책들이 여러 권 있으니, 한국적 상황과 접목해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결론은? 재밌는 책이다. 번역출판사가 전혀 다른 의도로 붙인 부제 덕에 이 책을 사게 됐으니 고맙다고 해야할까. 역자 양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일본 나고야에서 생활하고 있"다는데, 어째 월급 받으며 살려다보니 대충 아전인수격으로 책 의미를 뒤틀어 번역한게 아닐까도 싶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이런 요소들을 잘 버무린 책을 만들면 베스트셀러가 되겠군!" 이라고 외치는 출판 기획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런 얼빠진 기획자가 있다면 도시락 싸들고 쫓아다니며 말리고 싶다. 이 책은 그냥 한 권의 만담집에 가깝단 말이다.

January 28, 2007

요코 이야기(So far from the bamboo grove)

요코 이야기(So far from the bamboo grove)
- Yoko kawashima Watkins 지음/Beach Tree

애초에 나는 이 책을 읽을 생각이 없었다. 이 책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이 발칵 뒤집힌 것 때문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니다. 이 책에 관한 기사(<“한국인이 일 소녀 강간” 미 학교 교재 파문 확산>, 한겨레 1/17)가 처음 뉴스 사이트에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는 그냥 '어느 몰지각한 일본 사람의 망언이 또 활자화되었나 보군' 정도로 생각했었고, 이 책에 대해 비난 여론이 들끓자 '그렇다고 책 한 권 가지고 저 호들갑을 떨건 또 뭐람' 이라고 생각했었다. 다시 말해, 그냥 일회성 사건으로 넘어갈 문제였다. 읽을 책이 안그래도 많은데 굳이 찾아 읽을 필요가 뭐가 있을까.

그런데, 문득 한국판으로 번역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온라인 서점 웹페이지에 들어가서 해당 책을 찾아보면서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절판. 혹시나 해서 다른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봤다. 역시나 절판이었다. 모든 서점들이 마치 합의라도 한 듯 이 책을 팔지 않기로 한 것이다. 국내 출판사인 문학동네가 절판을 결정한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24일부터였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문제의 서적은 국내에서 구해볼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YES24 의 경우는 이제는 아예 도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 이제 이 책은 존재 자체가 부정되고 있는 듯하다.)

그 이유는 절판된 책의 소개 페이지에 실린 댓글들과 온라인 포탈들의 댓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의 내용에 대한 비난은 저자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고, 이내 화살은 이 책을 번역 출간한 출판사와 역자에게 향해졌다. 이런 쓰레기 같은 책을 왜 출간했냐는 것이다. 출판사와 역자는 돈 몇 푼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로 간주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책을 계속 팔면 매국노(?)들과 파렴치한 일본인에게 좋은 일밖에 안되니까 빨리 절판시키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여론을 거슬러서 좋을게 없다는 사실을 아는 서점들은 재빨리, 그리고 고민 없이 책을 절판시켰을 것이다. 이 책 한권 안 판다고 손해볼건 없을테니까. "나쁜 책"은 이제 아무도 읽을 수 없다. 이렇게 사회적 자기 검열 시스템은 완성된다.

제발 좀 쪼잔해지지 말자. 책을 계속 판다고해서 저자나 역자, 출판사가 떼돈이라도 벌 것 같은가. 한국 사람들 그렇게 책 많이 읽는 사람들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출판의 자유(본질적으로는 사상의 자유)는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가장 최악의 책조차도 독자에 의해 평가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먼저 읽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책을 읽지 말라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읽지 못하게 해서는 곤란하다. 사실 이런 식의 절판은 독자의 지적 능력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옳고 그름은 독자가 판단할 문제다.

아뭏든, 덕분에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글들 중에 책을 직접 읽어보고 쓴 글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가타부타 판단을 위해서는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을 검색해보니 거의 모든 도서관 지점마다 1~2권씩 등록되어 있었고, 마침 동네 도서관에는 바로 대여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도서관에 들러서 책을 빌렸고, 읽던 책을 마치고나서 읽기 시작했다.

가능한 거리를 두고 읽으려 노력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불쾌한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본국으로 도망치는 일본인들에 대한 공격이 있었을거란 점은 매우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분출하는 분노를 힘으로 억누르고 있었는데, 그 힘이 한순간 사라지면 폭발하는거야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문제는 이 책에서는 한국인(특히 Communist-Army)들이 점령자들에게 역사적 죄과를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인들의 재산을 노리거나 일본인 부녀자를 겁탈하기 위해 일본인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사실들(예컨데 일본이 패망하기도 전에 38선 부근인 원산의 기차역을 Communist Army가 점거하고 기차를 수색한다는 이야기)이나 말도 안되는 설정(예컨데, 일본인 자녀들이 식민어인 한국어를 한국인들을 속여 넘길 정도로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설정)들이 여기저기서 보이면서 짜증이 점점 밀려왔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의 당연한 분노를 잠시 밀어두면, 그렇게 나쁜 책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다. 나는 책의 저자(요코)가 일본의 과거를 미화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떠나, 11살 어린아이가 피난길에서 느꼈을 적의와 공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책에 묘사된 한국인들의 공격 및 강간 역시 일본인 피난민들 사이에 떠돌았을 흉흉한 소문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역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 책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논거들 역시 문학적 변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예컨데 함경도 나남에는 대나무가 자라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는데(이 책의 원제목은 "대나무 숲 저 멀리"이다), 대나무 숲 속의 집이라는 일본인들의 이상화된 집의 전형으로 설정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미국인을 위해 씌여진 책이다. 일본인을 공격하는 한국인들도 대개는 Communist-Army 인데, 미군 점령하에 있는 한반도 남쪽은 안전하고 소련과 Korean Communist-Army가 점령한 북쪽은 무법천지라는 이분법은 반공소설의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책 초반에 요코 어머니가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건 너무 속보이지 않는가.) 게다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삶의 가치들은 지나치게 교훈적이어다. 요코의 어머니는 당장 잘 곳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교토로 데려가 기차역에서 노숙을 하면서도 학교를 다니게 한다던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학생들과 그 쓰레기를 주워 재활용하는 요코를 대비시킨다던가, 학교로 배달된 자기 편지를 교장이 먼저 열어봤다고 항의하는 요코의 모습 등을 보고 있으면 아예 학교에서 교재로 쓰라고 쓴 책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미국 중학교에서 교과서로 쓴다고 해서 전혀 놀랄 일은 아니라고 본다.

결국 저자에게 부족한 것은 역사적 균형감각이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아마도 직간접적으로) 고난과 역경을 통해 삶의 교훈들을 전달하고자 했겠지만, 역사의 한 쪽 측면만을 보여줌으로써 반대편에서 더 크고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온 한국인들을 모욕하고 말았다. 만일 저자가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진지하게 인식한다면, 책을 쓰는데 있어 훨씬 신중했어야 했다. 아마도 미국 출판사 쪽에서도 이를 느꼈는지, 책 마지막에 "Notes from the Publisher"라는 장에서 한일간의 역사적 관계와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추가해 놓기는 했다. 책 전체가 주는 강한 인상에 비하면 미흡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는 이들이 나름대로 균형을 맞추는 열쇠가 될 수도 있겠다.

이 책이 이슈가 된 것은 미국에 사는 한 한국인 학생이 이 책이 교재로 사용되는 것을 반대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의를 제기한 것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미국 교과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보다는 한일간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교재를 추가로 마련해서 폭넓은 토론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는게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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