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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지음/문이당/9800원

신인작가의 글을 읽을 때는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가끔 완성도 높은 천재적인 작가가 혜성처럼 등장하는 경우도 없는건 아니지만, 대개의 작가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완숙해진다.(그래, 그들도 인간이다) 때문에 대개 신인작가의 글을 평할 때는 "참신함", "경쾌함" 등의 수사가 동원되기 마련이다. 이 책도 그러하다.

사실 위와 같은 변호(?)는 읽는 내내 불만스러웠던 스스로를 다독거리기 위해 계속 되뇌어야 했던 이야기다. 소재의 참신함과 나름의 유머감각에도 불구하고, 소설적 완성도 면에서 그닥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 것 같다. 몇가지 예를 들면,

첫째, 갈등구조가 너무 가볍게 다루어진다. 소설의 핵심이 되는 갈등구조는 아내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남편과,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아내 간의 갈등이다. 그런데, 소설이 100% 남편의 입장에서 서술되면서 아내의 감정상태는 전혀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게 된다. 아내의 입장은 중간중간 말싸움 때 나오는 장광설로 대변될 뿐, 감정적으로 동조할만한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소설은 그냥 "이렇게 황당한 아내 봤냐"는 식의 유머 게시판 꽁트 분위기로 흘러가게 되고, 중심이 되는 갈등구조는 유야무야 "아내를 사랑하니까"라는 식으로 덮이고 만다.

둘째, 장광설이 지나치다. 이 소설에는 크게 두 종류의 장광설이 등장한다. 하나는 축구, 다른 하나는 모노/폴리 어쩌구 하는 결혼제도들. 축구 이야기는 소설을 구성하는 날줄 역할을 하는데, 문제는 중간중간 다소 억지스럽게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 껄끄럽다. 결혼제도에 대한 설명도 도저히 대화체로 기술할만한 내용이 아닌데도 말다툼 도중에 불쑥 튀어나와 맥을 끊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좋은 글을 쓰려면 이야기거리에 끌려다녀서는 안된다. 거꾸로, 이야기거리들을 전체 글의 맥락에 맞춰 적재적소에 알맞게 배치하는 것(필요하다면 빼야 한다)이 바로 작가의 역량이다.

아뭏든, 최근의 신인작가들을 가늠하는 잣대는 "유머"인 듯 하다. 한 때 공지영이나 신경숙, 은희경과 같은 상처입은 자아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루던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바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불만만 늘어놓는 나도 참 구제불능인 것 같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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