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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의 다른 방법

존 버거, 장 모르 지음/이희재 옮김/눈빛/16000원

사진은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테크놀로지에 대한 의존이 강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진을 찍는 도구인 카메라 자체가 정밀한 제어를 전제조건으로 하는 기술 집약적인 도구인 탓인데, 이 때문인지 사람들은 손쉽게 사진이 정확/정직한 매체라는 환상 - 과학 기술에 대해 흔히 가지는 환상 - 을 가지곤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뜯어보면 사진은 모호함 그 자체다. 제목과 설명이 가이드 해주지 않는다면, 사진 그 자체로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사진의 이와 같은 모호함에 대한 고찰이다. 저자들은 사진의 모호함이 오히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이들은 여러 장의 사진을 (종종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 촬영된 사진) 배열하여, 사진을 보는 이들이 그 안에서 어떤 스토리 라인을 스스로 창조해내도록 유도한다. 꼭 모두가 똑같은 의미를 짚어낼 필요는 없다. 작가는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사진을 통한 스토리를 구성하고, 관람객들은 그 사진을 보고 역시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스토리를 구성해 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진은 책 제목 그대로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 된다.

책은 크게 장 모르의 사진과 존 버거의 이론적 고찰로 구성된다. 장 모르의 사진들은 인상적이나(특히 눈 먼 소녀의 사진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인쇄 상태가 흑백의 깊은 톤을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진 이론서라면 좀 더 인쇄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가격도 이미 비싸구만) 존 버거의 글은 그의 다른 저작 "본다는 것의 의미"에서처럼 다소 난해하고 현학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다른 챕터에 실린 장 모르의 사진과 짧은 글들이 그가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실질적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사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꼭 읽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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