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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06 Archives

October 7, 2006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홍은택 옮김/동아일보사/9500원

"등산"을 영어로 번역하면 "mountain climbing"이라고 나오는데, 사실 이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등산과는 달리 암벽타기 등을 포함한 훨씬 과격한(?) 활동을 지칭하는데 사용된다. 우리가 지리산 종주를 한다던가, 가볍게는 관악산에 오른다던가 하는 활동은 영어로는 "hike"라고 번역하는게 맞다. 사전상의 의미로 "hike"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도보여행 일반을 뜻하지만, 대개의 경우 hiker 들은 일반 자동차 도로가 아닌 "Trail" 이라 불리는 산길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미국에서 등산을 이야기할 때는 "어느 산"을 올랐다 가 아니라 "어느 트레일"을 다녀왔다는게 일반적이다. 물론 트레일이 반드시 산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네 뒷산의 조그마한 산책로도 트레일이고, 도시를 가로질러 이동하는 트레일도 있으며, 어떤 트레일은 주 몇 개를 우습게 가로지르기도 한다. 어쨌든, 이 트레일들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성해, 미국 어디든 걸어서 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그 길을 걷는 이들이 바로 hiker 인 것이다.

이 책은 그 중 가장 긴 트레일 중 하나인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한 여행기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미 남부의 조지아 주에서 시작해 북동쪽 끝의 메인 주까지 이어지는 총 2160 마일, 3450km 길이의 트레일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백두대간 종주라고 할 수 있는데,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거리가 약 1620여 km로 추정하고 있으니, 대충 얼마나 어마어마한 트레일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보통 처음부터 끝까지 종주하는 사람은 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의 저자가 걸은 거리는 종주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한 정도다. 중간중간 끊기고, 지나가는 차 얻어타고, 그리고는 다른 지점에서 새로 출발하고 해서, 실제 걸은 거리는 전체의 약 40%도 채 안되니까. 하지만 실망할건 없다. 어차피 이 여행기는 트레일을 정복한 영웅담이 아니라, 등산 초보들이 이 트레일에서 좌충우돌하며 무언가를 배우는 성장기에 가까우니까.

이 책을 읽는건 즐거운 경험이다. 작가의 유머는 시종일관 킥킥대게 만들고, 중간중간 갑작스래 진지한 목소리로(웃기던 사람이 갑자기 진지해지면 진지하다기보단 차라리 숙연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나도 덩달아 진지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하루종일 걷기만 하는 이 단순한 고행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시점이 온다. 이번 주말에 가볍게 근처 트레일을 걸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오늘 트레일을 4시간 정도 걸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무리겠군"

October 22, 2006

말하기의 다른 방법

존 버거, 장 모르 지음/이희재 옮김/눈빛/16000원

사진은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테크놀로지에 대한 의존이 강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진을 찍는 도구인 카메라 자체가 정밀한 제어를 전제조건으로 하는 기술 집약적인 도구인 탓인데, 이 때문인지 사람들은 손쉽게 사진이 정확/정직한 매체라는 환상 - 과학 기술에 대해 흔히 가지는 환상 - 을 가지곤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뜯어보면 사진은 모호함 그 자체다. 제목과 설명이 가이드 해주지 않는다면, 사진 그 자체로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사진의 이와 같은 모호함에 대한 고찰이다. 저자들은 사진의 모호함이 오히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이들은 여러 장의 사진을 (종종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 촬영된 사진) 배열하여, 사진을 보는 이들이 그 안에서 어떤 스토리 라인을 스스로 창조해내도록 유도한다. 꼭 모두가 똑같은 의미를 짚어낼 필요는 없다. 작가는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사진을 통한 스토리를 구성하고, 관람객들은 그 사진을 보고 역시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스토리를 구성해 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진은 책 제목 그대로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 된다.

책은 크게 장 모르의 사진과 존 버거의 이론적 고찰로 구성된다. 장 모르의 사진들은 인상적이나(특히 눈 먼 소녀의 사진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인쇄 상태가 흑백의 깊은 톤을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진 이론서라면 좀 더 인쇄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가격도 이미 비싸구만) 존 버거의 글은 그의 다른 저작 "본다는 것의 의미"에서처럼 다소 난해하고 현학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다른 챕터에 실린 장 모르의 사진과 짧은 글들이 그가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실질적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사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꼭 읽어볼 것.

October 29, 2006

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지음/문이당/9800원

신인작가의 글을 읽을 때는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가끔 완성도 높은 천재적인 작가가 혜성처럼 등장하는 경우도 없는건 아니지만, 대개의 작가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완숙해진다.(그래, 그들도 인간이다) 때문에 대개 신인작가의 글을 평할 때는 "참신함", "경쾌함" 등의 수사가 동원되기 마련이다. 이 책도 그러하다.

사실 위와 같은 변호(?)는 읽는 내내 불만스러웠던 스스로를 다독거리기 위해 계속 되뇌어야 했던 이야기다. 소재의 참신함과 나름의 유머감각에도 불구하고, 소설적 완성도 면에서 그닥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 것 같다. 몇가지 예를 들면,

첫째, 갈등구조가 너무 가볍게 다루어진다. 소설의 핵심이 되는 갈등구조는 아내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남편과,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아내 간의 갈등이다. 그런데, 소설이 100% 남편의 입장에서 서술되면서 아내의 감정상태는 전혀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게 된다. 아내의 입장은 중간중간 말싸움 때 나오는 장광설로 대변될 뿐, 감정적으로 동조할만한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소설은 그냥 "이렇게 황당한 아내 봤냐"는 식의 유머 게시판 꽁트 분위기로 흘러가게 되고, 중심이 되는 갈등구조는 유야무야 "아내를 사랑하니까"라는 식으로 덮이고 만다.

둘째, 장광설이 지나치다. 이 소설에는 크게 두 종류의 장광설이 등장한다. 하나는 축구, 다른 하나는 모노/폴리 어쩌구 하는 결혼제도들. 축구 이야기는 소설을 구성하는 날줄 역할을 하는데, 문제는 중간중간 다소 억지스럽게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 껄끄럽다. 결혼제도에 대한 설명도 도저히 대화체로 기술할만한 내용이 아닌데도 말다툼 도중에 불쑥 튀어나와 맥을 끊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좋은 글을 쓰려면 이야기거리에 끌려다녀서는 안된다. 거꾸로, 이야기거리들을 전체 글의 맥락에 맞춰 적재적소에 알맞게 배치하는 것(필요하다면 빼야 한다)이 바로 작가의 역량이다.

아뭏든, 최근의 신인작가들을 가늠하는 잣대는 "유머"인 듯 하다. 한 때 공지영이나 신경숙, 은희경과 같은 상처입은 자아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루던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바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불만만 늘어놓는 나도 참 구제불능인 것 같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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