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여행가방
박완서 지음/실천문학사/9800원
"아주 오래된 농담"과 패키지로 팔길래 덤으로 딸려온 책.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파는데 "아주 오래된 농담"을 끼워주는 거였지만, 나는 왠지 거꾸로 같은 기분이 드네.
아뭏든.
"아주 오래된 농담"을 먼저 읽고서 박완서라는 작가에 대해 많이 실망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서는 평가가 반반 정도이다. 일단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티베트 기행기나 네팔 기행기는 알차다. 섣부르게 판단하려 들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겸손함은 분명 작가의 미덕이며, 다른 여행기들의 겉핧기식 촌평과는 대비되는 장점이다. 그런데 책 앞부분의 단문들은 영 글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작가 스스로도 글의 갈피를 못 잡고 오락가락하는 글마저 있다. 왜 이런 편차가 생기는걸까?
추측컨데, 박완서씨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외부로 발표하는 글에 대한 기준이 낮은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떤 작가는 자신의 글을 수십번씩 탈고해 편집증적이라고까지 보이는 반면, 어떤 작가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글의 완성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독자와의 소통에 의의를 더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 나쁘게 말하면 작가로서의 직업 의식이 부족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솔직담백한 맛이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쪽인지 판단은 당신의 몫. 어쨌거나 나는 조금 더 배가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