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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핵심

조셉 콘래드 지음/이상옥 옮김/민음사/6000원

얼마 전, 나사에서 제작했다는 지구의 야간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 사진에서 야간의 지구는 그 복잡다단한 자연환경의 차이가 생략된 채 오직 전기불빛으로만 그 윤곽이 드러난다. 현대 산업문명을 움직이는 동력이 전기임을 감안할 때, 이 사진은 그대로 산업문명의 분포를 보여준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동시에, 이 사진은 서구인들이 지닌 인식의 지도이기도 하다. 빛과 어둠의 오래된 상징은 빛은 선하고 어둠은 악하다는 기독교적 가치 체계와 맞물린다. 그래서 유럽과 북미를 빼곡이 채운 빛은 그네들이 부여받은 축복의 빛이요, 그 빛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검은 대륙은 무지와 야만의 세계가 된다. 제국주의든 계몽주의든, 제 3세계를 보는 서구의 시각은 여기서 출발한다. 제국주의는 상대를 정복의 대상으로 계몽주의는 상대를 교화의 대상으로 본다는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상대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공통의 전제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 시절, 선교를 명목으로 각 나라로 침투해 들어간 선교사들은 선교를 통한 계몽 활동에 나섬과 동시에, 제국주의 모국에 그 나라의 지리, 군사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스파이 역할을 해왔던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커츠와 말로는 형제다. 한 쪽은 제국주의의 한 극단을, 다른 한 쪽은 계몽주의의 동정 어린 시각을 표상하지만, 둘은 결국 서구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갈래다. 커츠 역시 한 때 말로처럼 동정어린 시각으로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남겼다. 하지만 밀림의 한가운데서 총칼로 획득한 권력의 정점을 체험한 커츠는, 그 힘에 도취되어 자신의 제국을 이끌게 된다. 여기에 큰 신념의 변화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제국과 계몽은 처음부터 서로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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