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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송병선 옮김/민음사/9000원

생각해보니, 우리에게 노년은 일종의 "여분의 삶" 처럼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까, 이 시기 동안의 삶은 항상 "죽음"을 전제로 돌아가는 듯하다. 물론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한다는 것은 필요한 일일거다. 하지만 '삶'이 '살다'가 아니라 '죽다'를 중심에 놓는다는건 뭔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마르케스도 올해 일흔 여덟 살이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노년의 삶은 여전히 '살다'인 것 같다. 아흔번째 생일을 맞는 주인공은 여전히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생활 습관을 바꾸고,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그가 죽음을 그저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일상의 이곳저곳에서 자신이 늙었음을, 그리고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기한다.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늙음과 죽음은 삶의 한 조건이지, 결론이 아니다. 내일 당장 죽음이 찾아올지라도, 오늘은 내 삶을 살아가야지 않겠는가.

Anyway, 마르케스의 소설을 여러 권 읽다가 보면, 이 마초 할아버지는 정말 "여자"들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자들을 도구로 한 자신의 "쾌락"을 사랑하는 여느 오입쟁이들과 착각하지는 말자. 이 할아버지는 정말 여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매혹되며, 감동한다. 에로스는 거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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