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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 어페어

마누엘 푸익 지음/송병선 옮김/현대문학/9000원

책을 다 읽고 나서 안 정보인데, 왕가위 감독이 이 책을 읽고 너무나 강한 인상을 받아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관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찍고 나니 영화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는 전혀 상관 없는 영화가 되어 버렸고 감독은 결국 영화 제목을 바꾸어야만 했다. 그렇게 나온 영화가 바로 장국영 주연의 "해피투게더"라고 한다.

영화를 보지 않은 나로서는 자세한 내막은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이 책은 동성애를 다룬 내용도 아니며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도시에 대한 예찬도 아니다. 왕감독께서 이 책을 읽고 어떤 감흥을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이 책과 "해피투게더"를 연관시키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의 모티프가 된 책" 따위의 판촉방법은 확실히 오버라고 생각된다.(하긴, 나도 해피투게더를 들먹여 독자들을 잡아두려 하고 있긴 하다)

<해피투게더>라는 영화와 좀 부적절하게 얽히긴 했지만, 거꾸로, 마누엘 푸익이 영화에 보내는 애정은 무척이나 각별해 보인다. "거미 여인의 키스"(이건 영화로만 보고 소설로는 못 읽어봤지만)에서는 영화가 사건 전재의 중요한 얼개로 도입되었는데, 이 소설에서는 오히려 형식적인 측면에서 많이 차용된 듯하다. 이 책이 보여주는 서사 양식은 소설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정적인 공간을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등장인물간의 대화로 모든 것을 대체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느 장에서는 전화를 들고 이야기하는 한 명의 대사만으로 모든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한다. 이 다양한 실험들을 관통하는 공통된 특징은 그것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인 것처럼 시각적 이미지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글을 통해 독자에게 시각적 경험을 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안타까운 점은, 각 챕터의 시작부에 짧게 인용되는 영화들을 내가 거의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들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훨씬 풍성한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Anyway, pornography는 역시 eros가 아닌 권력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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