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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발견

고명섭 지음/그린비/14900원

'지식의 발견'은 내게 있어 '한국 지식인의 발견'으로 읽히는 책이다. 읽을 책을 고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텐데, 나 같은 경우는 한국 저자들의 책들보다는 외국 저자들의 책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건 한편으로는 내 자신의 지식/가치 체계가 서구 담론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저자들의 저작들은 불가피하게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 현실 속의 복잡한 역학구도 안에 배치되어 읽힐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읽기가 좀 더 골치아프다는 이유도 있다.(후자는 사실 일종의 현실도피다 -_-) 여하간, 이런 이유로 한국 저자들의 책을 등한시했던 나로서는, 이 책에서 소개되는 여러 책들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여러 책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맥락은 서구 담론의 단순한 수입에서 벗어나 한국적 맥락의 담론을 찾고자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아직 한국의 인문/사회학의 수준이 세계적으로 학계를 이끌만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서구의 담론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소화과정을 통해 한국적 맥락을 찾고자하는 시도들이 여러 지식인들을 통해 꾸준히 시도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탄스러운 것은, 이들의 저작들을 단순히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현직기자다운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덧붙여 더욱 풍성하게 해석해내는 저자의 시선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그냥 꿰는 정도가 아니라, 구슬의 장단점을 잘 가려내어 절묘하게 배열하는 장인의 솜씨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책의 시작은 그리 좋지 못했다. 탈민족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는 앞부분에서 저자는 다소 흐트러진 모습으로 출발한다. 학문적 논쟁이라 할 수 있는 글에서 '주구', '배신자', '비열한' 등과 같은 다분히 선동적인 수사들이 동원되는 것도 불편한 느낌을 주었고, 박노자 교수와의 논쟁에서는 매우 정중하고 예의바른 태도는 인상적이지만, 전체적으로 논쟁의 핵심을 찾아 부딛히기보다는 상대(박노자)의 주장을 비껴나가고 있다. 사실 이건 꼭 저자인 고명섭에게서만이 아니라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주장을 들을 때 종종 느끼는 점이기도 하다. 어떤 이념이건 그것이 현실 속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이념이 자리잡고 있는 현실 속의 모순에 기반하여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양코자 하여야 한다. 그런데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주장들의 논거는 멀게는 일제시대부터 가깝게는 80년대까지의 외세의존적 군사독재 정권에의 경험에 근거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민족주의의 '현재적' 의의와 한계를 지적하는 박노자 교수의 글에 제대로 답변할 수 없음은 필연적 결과로 보인다.

물론 저자가 민족주의를 옹호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목표는 따로 있을 것이다. 글 중간중간 저자는 탈근대 담론을 내세우는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친일 행위를 정당화 하려는 보수 세력과 불순한 동거를 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에 대한 계간 <<역사비평>>의 비판 참조) 탈근대 담론들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근대에 들어 형성된 것이며 민족주의 역시 근대의 산물일 뿐이라는 분석(B. 엔더슨, "상상의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기반하여 민족주의를 근대의 한 부분, 즉 극복의 대상으로 상정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탈근대 담론들은 과거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며 아시아 지역의 식민화를 정당화했던 논리와 같은 맥락에 놓인다. 그런 일제에 적극 협력했던 보수 세력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친일 행위가 탈근대라는 더 큰 가치를 위한 일이었다는 식의 논리를 내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명섭은 서중석과 김동춘의 글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이러한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문제는, 저자가 과거의 친일을 비판하기 위해 과거의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것을 넘어서, 민족주의의 의의를 별다른 검증 없이 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데, 고명섭은 탈근대 담론의 민족주의론은 서구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 속에 형성된 이론일 뿐이며, 우리 민족은 근대 이전부터 균질적인 민족 공동체를 이루어 왔기 때문에 그들의 민족주의 개념을 그대로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와 친미사대적인 독재정권이라는 우리의 역사적 경험 속에 민족주의가 긍정적인 기능을 해 왔음을 간과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서구의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한국적 상황에 맞게 새롭게 고찰해야 한다는 고명섭의 주장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탈민족주의 담론들이라고 해서 서구 이론에 기대 무작정 민족은 허구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탈민족주의 담론들은 단일 민족이라는 지배적 인식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사를 더욱 세밀하게 검토하기도 한다. 따라서 민족/민족주의 개념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탈민족 담론을 서구의 것으로 평가절하할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논쟁을 통해 심화되어야 할 터인데, 저자는 이러한 논의 없이 일부 탈민족주의 지식인들의 행보를 근거로 탈근대 담론 전체를 부정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또한 저자가 주장하는 민족주의의 긍정적 기능 역시 다른 관점에서의 접근이 가능하다. 저자는 한국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민족주의 세력이 보여준 비타협적 투쟁을 근거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는 가장 긍정적인 순간에조차 민족주의는 '민족국가'라는 개념을 매개로 삼아 '국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민족주의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적 국가를 건설하고자하는 열망과 직결되어 있었으며, 80년대의 반미투쟁 역시 통일국가 건설이라는 지향을 품고 있지 않았던가. 때문에 내게는 민족주의 세력의 비타협적인 투쟁 역시 정통성을 잃은 지배세력에 강점되어 왜곡된, 외형만 근대를 취한 국가를 대신하여, 진정한 의미의 근대적 시민국가 건설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지향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한국 정치사의 발전에 민족주의 세력의 투쟁이 큰 기여를 하였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민족주의 개념의 정당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서평집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소개하는 책의 논점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 책만으로 저자가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에 대한 개념을 온전히 파악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중간중간 간접적으로 읽히는 저자의 생각은 그 자신이 주장하는 엄밀한 개념 정립과는 거리가 있어보인다. 책의 1/3을 할애할만큼 큰 비중을 가지고 다룰 주제라면, 반대쪽 의견도 진지하게 검토하며 고민하는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식의 발견에는 끝이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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