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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실천문학사/8000원

박완서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워낙 국내 작가에 무관심한 탓이 크지만, 원로급으로 알려진 작가인지라(나한테는 거의 박경리와 같은 급으로 여겨진다) 고리타분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해 더욱 마음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 읽은 그녀의 글은 생각만큼 고리타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일흔을 넘긴 작가라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젊은(?) 감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소설의 완성도 면에서는 실망스러운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소설을 이끄는 두 이야기 축은 아예 전체적인 플롯이라는게 없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서로 섞이지 못하고 따로 놀고(전반을 이끄는 현금-영빈 관계는 영묘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부터 유야무야 흐릿해져 버린다.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는 제목은 현금 때문에 붙여진게 아니었나?), 후반부의 마무리는 봉합이라고 할만큼 서둘러 덮어버리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이게 무슨 TV 연속극 조기 종영도 아니고.. 작가의 말에서처럼 1년에 걸친 연재소설을 감당하기에 작가의 힘이 달리는 것 같다.

내가 황석영씨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소설이 지니는 깊이보다도 그가 아직도 끊임없이 자신의 소설 세계에 변화를 주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데 있다. 작가도 나이를 먹고, 명성이 쌓이고 하면서 이른바 매너리즘에 빠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이 관성의 힘을 이겨내는 작가가 비로서 대가로 이름을 남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경지에 오른 도공은 금쪽 같은 자기 작품도 성에 차지 않으면 깨버린다고 했다. 연로하신 작가에게는 참으로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작품을 세상에 내 놓기 전에 좀 더 숨을 고르셨으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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