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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권미선 옮김/민음사/8000원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겠지만, 각 나라의 풍성한 음식문화가 웅변해주듯 '맛'은 음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우리는 기념할만한 날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곤 하는데, 그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어차피 해야 할 식사에 멋진 '맛'을 첨가함으로써 우리 자신에게 하는 선물과도 같은 것일거다.

전통적으로 음식 준비는 여성들의 몫이었다. 물론 조선시대 왕궁의 최고 요리사는 남성이었고, 현대의 고급 레스토랑 쉐프도 대개 남성이라고 하지만 그건 아마 남성 권력이 표현되는 상징적 의미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경우 요리는 가사노동의 한 부분이었으며 거의 전적으로 여성의 영역이었다. 그 여성들이 음식에 기막힌 '맛'을 첨가했고 그와 함께 자신의 감정을 함께 첨가해온 것이다.

"달콤 쌉싸름한 초컬릿"은 음식에 자신의 희노애락을 담은 여성의 이야기다. 책은 12개의 레시피(사실 이 중 하나는 음식은 아니다)처럼 구성되어 있는데, 이 음식들을 통해 티타는 인생의 기쁨과 고통, 사랑과 번민을 쏟아낸다. 독선적 어머니의 그늘 아래 침묵을 강요당한 그녀에게 요리가 하나의 배출구였던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요리라는 것 자체가 만든 이의 정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요리는 강요된 노동이기도 했지만, 여성이 인생에서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품이기도 하였다.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남미 환상문학의 전통 안에 서 있다. 이 환상들은 현실의 장벽을 허물어 사람들의 감춰진 내면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에서도 티타의 요리들은 그 음식을 먹은 인물들을 통해 만든 이의 감정이 흘러 넘치게 만든다. 입을 막고 얼굴을 가리게 한다고 행복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감춰지지 않는 법이다. 물론 현실에서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억눌린 여성들과 그들의 음식에 바치는 헌사로는 그만이 아닌가.

오늘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 음식을 만든 이에게 감사하도록 하자.

ps. 불행히도 대부분 매식을 하는 입장에서는, 맛있는 음식은 몸에 안 좋고 몸에 좋은 음식은 맛이 없으며, 맛있으면서 몸에 좋은 음식은 비싸다는 딜레마가 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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