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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사회와 그 적들

김소진 지음/문학동네/9500원

아무런 힌트도 없이 나타나는 갑작스런 시점 이동은 김소진의 글에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 중 하나다. 보통은 과거와 현재, 생각과 현실 사이를 오갈 때면 단락을 나눈다던가 하는 형식상의 변화가 독자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를 주기 마련인데, 김소진의 단편들에서는 이러한 배려(?)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다. 덕분에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실어 잠시 나른하게 읽다가도 갑작스래 정신을 곧추세워 다시 읽어내려가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하는 것이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이러한 형식상의 특징도 일상의 나른함 속에서 그의 소설이 주는 정신적 각성 효과와 같은 맥락으로 느껴졌다.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닌데, 김소진의 글을 읽노라면 세대차이 같은게 느껴진다. 그가 77년생인 내게는 익숙치 않은 우리 고유어와 사투리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가 그리는 삶의 모습이 낯선 까닭이다. 예컨데 90년대 후반부터 많이 읽히는 하루키나 폴 오스터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곤궁함은 (젊은)주인공에게 닥치는 일시적 시련/고난의 성격을 지니는 반면, 김소진의 주인공들에게 가난은 어려서부터 뼈 속 깊이 스며든 삶의 본질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가난은 우리 부모 세대에서는 흔한 경험이었지만, 확실히 우리 세대에게는 낯선 경험일 뿐더러 우리 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작가들도 좀체 그리지 않는 삶의 모습이다. 다시 말해, 지금도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대부분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삶의 모습들이다.

김소진이 지적하는 바, "열린 사회"의 이데올로기 역시 그 이데올로기의 관심사가 아닌 이들을 타자화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닫힌 사회"이다. 생각해보면, 서울역이나 종묘공원에서 집회가 열릴 때 그 주변에는 노숙자들이나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모여 있기 마련이었는데, 정작 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싸늘했던 것 같다. 노동자/농민/빈민/장애인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외칠 때 이들은 그 구호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다른건 몰라도, 자신들도 그 좋은 세상에 한자리 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느꼈을리는 없는 것 같다. 모두로부터 타자화된 삶. 그것이 김소진이 신문사를 그만두면서까지 소설로 담아내고 싶었던 이야기일지 모른다.

단편집 한 권 읽고 하기엔 좀 건방진 이야기지만, 확실히 김소진이라는 작가는 '아직' 미완의 그릇이라는 생각이 든다. 임존성이라던가 어릴적 담력 과시를 위해 철탑에 오른 이야기 등은 오롯이 그 자체로 의미부여가 되고 어느 단편에서는 중심 소재가 되는 내용인데, 몇몇 단편에서 별 비중 없이 소품처럼 재차 사용되다보니 오히려 소재의 가치가 닳아 없어지는 느낌이다. 소품으로 쓰일 소재를 좀 더 풍부히하고, 힘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냥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심리를 좀 더 면밀히 파고 들어갔더라면 하는 바램이 남는다. 이런 바램을 들어줄 수 없는, 35세의 나이로 요절한 작가의 생이 더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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