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의 풍경 | Main | 야야툰 »

죽음의 미학

헤밍웨이 외 지음/살림출판사/6500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권

책에 실린 첫 단편 "우국"은 나를 매우 짜증나게 했다. 사실 이 책에서 "죽음의 미학"이라고 할만한 소설, 즉 죽음을 미적 가치로 형상화한 소설은 "우국" 밖에 없다. 다른 소설들에서 죽음은 끝이자 단절이기에, 아름답기보다는 슬프거나 절망적인 무엇, 기껏해야 피할 수 없는 무엇으로 그려질 뿐이다. 그런데 "우국"에서는 유독 죽음은 아름다운 무엇이 된다. 자신의 이상을 위해 결연히 목숨을 끊는 남편과 그에 순종하며 따라서 자결하는 아내. 소설을 읽고 있자면 새하얀 옷에 물드는 선혈의 색채가 주는 자극적 감각이 명멸하는 것은 사실이다.

근데, 이게 아름다운가? 소설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의 환영 뿐이다. 죽음을 미적인 차원에서 논할 때, 오히려 죽음은 시야 밖으로 밀려난다. 정작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죽음으로써 지키라고 강요하는 이데올로기 자체요, 죽음은 그것을 장식하는 화환 같은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의 미학"이라는 제목은 나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정절을 강요한 은장도 같은 섬뜩함.

첫 소설의 짜증을 이겨낼 수 있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은 매우 좋은 경험이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이다. 죽음은 삶의 한 측면이요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이기에,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곧 우리 삶의 자세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다양한 관점에서 죽음을 고찰해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문학을 찾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ps. 책이 별로 내키지 않는다면, 서점에 서서 '연인의 죽음' 만이라도 꼭 읽어보길.

TrackBack

TrackBack URL for this entry:
http://www.turnleft.org/cgi/mt/mt-tb.cgi/577

Post a comment

About

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from the blog posted on November 8, 2005 12:00 AM.

The previous post in this blog was 헌법의 풍경.

The next post in this blog is 야야툰.

Many more can be found on the main index page or by looking through the arch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