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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프랭클린 포어 지음/안명희 옮김/말글빛냄/15000원

제목만 보자면, 축구라는 스포츠가 대단한 권력을 지닌 그 무엇이라도 되는 것 같다. 아니면 제국주의 시대 서구열강들이 축구를 앞세워 문화침탈이라도 했던가. 허나, 이 책의 원제목은 "How Soccer Explains The World: An Unlikely Theory Of Globalization"으로, 대충 직역하자면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설명하는가 : 있을 법하지 않은 세계화 이론" 정도일게다. 책의 저자는 토머스 프리드먼 류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세계화 이론(세계화가 민족주의와 부정부패 등을 몰아낼 것이라는 이론)이 실제로는 들어맞고 있지 않음을 축구라는 매개를 통해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무리 개념 없이 번역을 한다고 해도, 여기서 어떻게 축구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제목이 튀어나올 수 있는가!!

다행히도 이 책의 내용은 그리 현학적이거나 난해하지 않아서 책을 읽기만 한다면야 제목이 주는 혼란쯤은 쉽게 떨쳐버릴 수 있다. 아닌게 아니라, 쉽고 평이하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저자는 원래 신문사 기자로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그가 직접 발로 뛰어 인터뷰하고 조사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훌리건들이 실제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각 구단들은 어떤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지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거기까지다. 르포는 있으되, 결론이나 결론을 향해 나아가는 논리적 완결성은 많이 부족해 보인다. 축구가 어떤 집단의 배타적 구심점이 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배타적 양태가 프리드먼 같은 사람들이 그리는 낙관적 세계화 옹호론에 반대 논거로 충분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저자에게는 근본적으로 "왜?"라는 질문이 부족하다.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우리는 집단의식이 축구라는 매개를 통해 표출되는 양상에 대해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한국의 붉은 물결 역시 이 책에서 하나의 챕터로 기술될 수 있을만한 소재지만, 만약 저자가 한국의 사례를 썼다고 해도 그닥 도움이 되는 책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축구는 단지 분출의 통로일 뿐,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근저에 깔린 집단적 무의식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이 책은 그저 축구 애호가들의 술자리 잡담거리로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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