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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05 Archives

September 1, 2005

공격

아멜리 노통 지음/김민정 옮김/열린책들/7500원

오랜만에 읽는 아멜리 노통(노통브라고 읽는게 맞다는데, 왠지 어색하다)의 소설. 제목부터가 제대로다 싶게, 그녀스러운 소설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에는 낭만적 테러리즘이라는 말이 나온다. 예컨데, 밤 늦게 술에 잔뜩 취해 좋아하는 여자를 찾아가 주사를 부린다는가 하는게 그것인데, 낭만적일지 몰라도 사랑을 얻기보다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목인 'Attentat'가 '테러'라는 뜻을 가진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가학성과 피학성은 항상 맞물린다. 좌절된 사랑에 가하는 복수는 상대에 대한 폭력인 동시에, 자기 파괴이기도 하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은수의 차를 열쇠로 긁던 상우의 모습은 유치한만큼이나 가슴 아픈 장면 아니었던가. 상우는 열쇠로 자기 가슴을 긁고 있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뭔가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아멜리의 장점은 독설이라는 점을 잊지 말기를. 가식이나 위선이 조금이라도 보일라치면 사정없이 얻어 맞기 쉽상이다. 허나, 근래 본 사랑이야기 중 최고이기도 하였다.

September 5, 2005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알랭 드 보통 지음/지주형 옮김/생각의 나무/10000원

알랭 드 보통의 글들이 즐거운 이유는 소재 자체에 매몰되지 않는 풍부한 사색 덕분이다. 덕분에 우리는 그의 글에서 구체적인 행동지침보다는 방법론에 가까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 책 역시 프루스트와 그의 저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루고 있지만, 풍부한 독서의 실례를 직접 보여줌으로써 나의 책 읽는 방법을 되돌아보게 한다. 말하자면 그의 다른 책 "여행의 기술"처럼 "독서의 기술"이라도 이름 붙여도 좋을 책이다.

사실 전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1권 '스완네 집을 향하여'를 읽다가 지루함에 몸서리쳤던게 사실이다. 이런 독자의 사례는 이 책의 3장에 잘 나와있는데, 프루스트의 책을 출판하기를 거절한 한 출판사 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왜 한 장에 30 페이지나 들이면서 그가 잠이 들기 전 침대에서 어떻게 뒤척이는지를 서술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게 바로 딱 나였다. 반성반성. 이런 나를, 숨을 가다듬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읽어야겠단 생각이 들게 했으니, 알랭 드 보통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자주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이지만, 국내 출판사들은 제발 제목을 어정쩡하게 의역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책의 원제목은 "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인데, 다소 처세술 책 같은 냄새가 나긴 하지만 프루스트로부터 읽어낸 교훈들을 챕터별로 정리한 이 책의 취지에는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라니!(물음표가 없는걸로 보아, 권유형 문장인가?) 추측컨데, 알랭 드 보통은 이런 직설 화법을 절대 쓸 리가 없다.

September 8, 2005

꿈꾸는 책들의 도시 1,2

발터 뫼르스 지음/두행숙 옮김/들녘/22000원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번역을 통해 문학을 접하는 행위 자체에 회의가 들곤 한다. 문학이란 본래 언어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른바 고전이라 불리우는 작품들은 내용적 측면에서의 탁월함은 물론이거니와, 형식적 측면에서의 미적 가치를 높이 인정받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번역된 작품을 읽는 우리로서는, 예컨데, 괴테가 얼마나 세련된 문장을 구사했는지 무덤덤할 뿐이다. 결국 우리는 반쪽짜리 독서를 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책의 도시 부흐하임(처음 듣는 순간 본의 아니게, 초코하임을 먼저 떠올렸다;;)에서 벌어지는 모험을 그린 판타지 소설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책과 문학, 작가와 독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특히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문학과 창작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많은 부분 원어인 독일어를 알고 있어야 의미 있게 받아들일 내용으로 보인다. 덕분에 대부분 모험 이야기인 1권에 비해 2권은 약간의 지루함이 느껴진다.

뭐, 그렇다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말자. 기본적으로 이 책은 판타지 소설이며, 흥미진진한 모험의 세계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히려 심각하게 받아들이려다간 이 책에서 말하는 작품론과 심각한 충돌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의 작가는 원래 만화가인데, 중간중간 삽입된 그의 귀여운 삽화는 이 상상력의 세계를 그려가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주인공이 시를 암송하는 공룡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귀여운 소설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ps. 근데 왜 1권과 2권의 책표지 재질이 틀린걸까?

September 10, 2005

이탈리아, 지중해의 바람과 햇살 속을 거닐다

권삼윤 지음/푸른숲/13000원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내가 과연 이 책의 저자에게 어디까지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를 고민했다. 여행기를 하나의 문학 장르로 본다면, (저자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책은 정말 수준 이하다. 우선, 책 전체에 걸쳐 발견되는 정확하지 못한 문장과 괜히 멋만 부린(그러나 생뚱맞은) 단어 사용이 상당히 거슬린다. 게다가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이탈리아에 대한 작가의 감상은 상투적이고 피상적이어서 읽는 이에게 전혀 감흥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렇다고 정보를 주는 실용서적으로 보기에도 너무 부실하고.. 그저 각 장소에 대한 정보와 사진 정도에 흥미를 느끼면서 읽었을 뿐이다. 자신의 글을 출판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13000원이라는 가격에 걸맞는 수준을 요구할 수는 있는 일 아닌가?

생각해보니 전에 읽었던 "황홀한 쿠바"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나의 세계를 담아 독자들에게 전해주기엔 작가의 그릇이 너무 작은게 아닐까 싶은데... 앞으로 여행기를 고를 때는 꼼꼼히 따져서 골라야겠다 -_-

September 13, 2005

아버지의 땅

임철우 지음/문학과 지성사/9500원

미리 조언을 하자면, 이 책을 읽는데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다소 긴 문장 덕에 실제로 글을 읽는데도 호흡이 길어야 하거니와, 역사라는 소재가 주는 깊이와 무게감은 스쳐지나가듯 읽기엔 어렵기 때문이다. 조금 더 확장을 시키자면 이는 90년대 이전과 이후의 소설읽기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요즈음의 소설이 짧게 끊어치는 문장과 사건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스피디한 전개로 특징지워진다면, 이 책은 바로 그 반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이 1984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쟁이라는 소재를 다루기 위해 작가가 겪어야했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생과 사를 갈라놓는 편나누기가 아이들의 눈에는 그저 운동회처럼 보였다던가(곡두 운동회), 죽은 이에게 이편이고 저편이고가 무슨 의미냐는 촌로의 말(아버지의 땅) 등은 일견 '이데올로기보다는 휴머니즘'이라는 결론처럼 보이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너무나 비극적인 설정들(그 밤 호롱불을 밝히고)이 마음에 걸린다. 오히려, 그는 서슬퍼런 군부독재와 국가보안법의 제약 안에서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을 끌어안기 위한 최소한의 이념으로 휴머니즘을 택한건 아닐까?(임철우의 소설들에서는 아버지와의 화해가 주요한 모티프로 등장하는데, 그의 아버지가 바로 전쟁 당시 좌익 활동을 했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그의 다른 단편들에서 드러나는 소시민적 삶에 대한 절망과 분노는 바로 그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자괴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래도, 시종 뒤숭숭한 꿈자리 같은 그의 소설세계는 사평역에 이르러 평화를 찾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작가는 팍팍한 현실을 위로하는 북어 몇조각과 톳밥난로의 온기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난로가에 잠든 그 미친 여자처럼, 어쩌면 삶이란 여정을 숨가쁘게 다시 출발하는 것보다 한순간의 난로의 온기가 더 소중할 수도 있는게 아닐까.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소설로 옮긴 이 글은 소설과 시라는 두 영역이 어떻게 교차하며 어떻게 서로 다른지를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근래 본 단편 소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소설인 것 같다.

September 18, 2005

머큐리

아멜리 노통 지음/이상해 옮김/열린책들/7500원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아멜리의 소설이 좀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소설은 크게 두 부류다.(물론 "시간의 옷" 같은 예외도 있다) 하나는 "이처럼 아름다운 세 살", "사랑의 파괴",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어지는 자전적 소설의 계보이며, 다른 하나는 "살인자의 건강법"에서부터 출발해 "적의 화장법"까지 이어지는 사랑(?) 이야기다. 사실 자전적 소설은 위의 세 권에서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모두 다루고 있으니 그녀가 나이가 많이 들기 전까지는 더 나올 이야기가 없는 것 같고... 후자의 계보가 지겨워지기 시작했으니 한동안 아멜리의 책은 손대지 않는 것이 좋을 듯도 싶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아멜리 노통이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문단에 알린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을 표절(자기 작품에 대해서는 이 단어가 어울리지 않겠지만)한 것이다. 프레텍스타-레오폴딘-니나의 관계는 "머큐리"에서는 선장-하젤-프랑수아즈의 관계로 그대로 재현된다. 갈등의 근원 역시 '절대적' 사랑에 대한 병적인(그리고 범죄적인) 집착 때문. 게다가 아멜리 특유의 현란한 언변과 문학에 대한 박학다식함을 자양분으로 삼는다는 점까지도 유사하니, 책을 읽고 나서 새로운 책을 읽었다는 기분이 전혀 안 들더라.

그래도 좀 특이한 것은 이 소설은 두 가지의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는가 싶었는데 뜬금없이 작가 노트가 등장하고, 책은 다시 후반부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결말로 치닫는다. 작가는 어느 쪽인지 고르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글쎄, 나는 나중 것은 어쩐지 그물망이 성기다는 느낌이 들어 원래의 결말이 훨씬 나은 것 같다.

September 19, 2005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프랭클린 포어 지음/안명희 옮김/말글빛냄/15000원

제목만 보자면, 축구라는 스포츠가 대단한 권력을 지닌 그 무엇이라도 되는 것 같다. 아니면 제국주의 시대 서구열강들이 축구를 앞세워 문화침탈이라도 했던가. 허나, 이 책의 원제목은 "How Soccer Explains The World: An Unlikely Theory Of Globalization"으로, 대충 직역하자면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설명하는가 : 있을 법하지 않은 세계화 이론" 정도일게다. 책의 저자는 토머스 프리드먼 류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세계화 이론(세계화가 민족주의와 부정부패 등을 몰아낼 것이라는 이론)이 실제로는 들어맞고 있지 않음을 축구라는 매개를 통해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무리 개념 없이 번역을 한다고 해도, 여기서 어떻게 축구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제목이 튀어나올 수 있는가!!

다행히도 이 책의 내용은 그리 현학적이거나 난해하지 않아서 책을 읽기만 한다면야 제목이 주는 혼란쯤은 쉽게 떨쳐버릴 수 있다. 아닌게 아니라, 쉽고 평이하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저자는 원래 신문사 기자로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그가 직접 발로 뛰어 인터뷰하고 조사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훌리건들이 실제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각 구단들은 어떤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지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거기까지다. 르포는 있으되, 결론이나 결론을 향해 나아가는 논리적 완결성은 많이 부족해 보인다. 축구가 어떤 집단의 배타적 구심점이 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배타적 양태가 프리드먼 같은 사람들이 그리는 낙관적 세계화 옹호론에 반대 논거로 충분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저자에게는 근본적으로 "왜?"라는 질문이 부족하다.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우리는 집단의식이 축구라는 매개를 통해 표출되는 양상에 대해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한국의 붉은 물결 역시 이 책에서 하나의 챕터로 기술될 수 있을만한 소재지만, 만약 저자가 한국의 사례를 썼다고 해도 그닥 도움이 되는 책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축구는 단지 분출의 통로일 뿐,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근저에 깔린 집단적 무의식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이 책은 그저 축구 애호가들의 술자리 잡담거리로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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