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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05 Archives

August 3, 2005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레너드 위벌리 지음/박중서 옮김/뜨인돌/9000원

알프스 산맥 어느 구석의 작은 나라 그랜드 펜윅 공국. 와인을 주 수입원으로 하여 거의 자급자족에 가까운 삶을 영위하던 이 작은 나라는 인구 급증으로 인해(전체 인구가 6천명에 이르렀다)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이들은 미국의 한 지방 와인업자가 그랜드 펜윅의 와인을 본뜬 짝퉁을 팔고 있다는 것을 명분삼아, 미국에 전쟁을 선포하고 재빨리 항복하여 원조를 받아내자는 계략을 세운다. 허나, 이들의 전쟁선포에도 미국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결국 장궁과 갑옷으로 무장한 24명의 원정대원들이 범선을 타고 뉴욕으로 쳐들어가기에 이르는데...

이 귀여운 내용의 소설은 2차 대전 이후 미.소 양국이 주도하던 냉전 구도와 핵무기를 둘러싼 군비경쟁을 풍자한 소설이다. 작품을 관통하는 유머러스한 분위기 덕에 경쾌한 리듬으로 읽어나갈 수 있으나, 배경에 깔려있는 정치적 순진함 내지는 진부함은 경계해야겠다. 뭐, 그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이 책은 1955년에 쓰여진 글인데, 당시 미국인들이 갖고 있던 정치적 환상들(미국의 선한 의도, 악독한 소련에 맞서 필요악으로 핵을 보유한다는 생각 등)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리버럴한 관점으로 탈냉전의 가능성을 점쳤다는 것만으로도 선구적이라 할 수 있겠다.

1959년 영화화 되었다는데, 영화가 내심 궁금해지기도 한다.

August 28, 2005

이미지와 환상

다니엘 부어스틴 지음/정태철 옮김/사계절/15800원

하나의 사건이 있다. 예를 들어, 카우치라는 그룹이 TV 생방송 도중에 자신의 성기를 카메라 앞에 그대로 드러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우리?약 1주일을 이 사건과 관련된 보도들의 홍수 속에 살아가야 했다. 그 쏟아진 보도들이 만약 동어반복(사건 자체를 계속 보도하는 것)으로 점철되었다면, 우리는 이내 흥미를 잃고 말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흥미를 잃은 기사는 더 이상 보도가치를 가질 수 없고, 따라서 기사 역시 1주일 동안이나 반복될 리가 없다. 태초의 사건에 사람들이 흥미를 잃을 즈음, 카우치라는 그룹이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공연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흘러나온다. 이어 홍대 앞 클럽 주인의 인터뷰가 나오고, 홍대 앞 공연에서 성기노출이 빈번하게 있었다는 '제보'가 잇따른다. 사람들은 언론으로부터 눈을 뗄 틈도 없이 쏟아지는 '사건'들 속에 즐거워한다. 아니, TV 스위치를 켜는 순간, 우리는 쏟아지는 사건들을 이미 기대하고 있다.

이 쏟아지는 사건들 속에 진짜 사건은 하나다. 성기 노출. 그냥 어떤 개념 없는 애들이 한 번 튀어보겠다고 TV 앞에서 벗었다. 그게 다다. 어떤 사람들은 피식 웃고, 어떤 사람들은 화를 내고, 어떤 사람들을 그냥 잊는다. 하지만 다음날 이 사건은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다시 나타나고, 그 다음 날은 새로운 사건으로 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사건들을 이 책에서는 "가짜(pseudo) 사건"이라고 부른다. '가짜'라는 말이 '거짓'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사'라는 번역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이 가짜 사건들은 실제 벌어져서 사건이 된 것이 아닌, 보도되지 않았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사건, 혹은 보도되기 위해 태어난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가짜 사건'은 '거짓 사건'이 아니다. 거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짜도 아니다. 그렇기에 그 사건들은 우리에게 '진짜' 실제 세계를 보여주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대개의 가짜 사건들은 아주 화려하고 극적이다. 오히려 진짜 사건들이 단순하고 평범하기 쉽다. 때문에 사람들은 진짜 사건에는 금방 싫증을 느끼지만, 가짜 사건에는 열광한다. 때로는 기사가 너무 선정적이라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TV를 켜거나 인터넷에서 뉴스 포털을 찾을 때면 우리는 뭔가 자극적인 사건이 우리를 맞아주길 기대한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가짜 사건을 통해 인식하는데 익숙해지는데, 그 결과 우리 생각 속에서 세상은 거대한 가짜 사건들의 복합체로 남게 된다. 심지어 진짜 사건들조차 가짜 사건들처럼 인식되고 받아들여진다.(이라크에서 폭탄 테러가 벌어졌다는 기사를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어느 회사가 홍보를 위해 누드 전시회를 기획했다는 기사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가?) 결국 우리는 세상을 하나의 '이미지'로 인식하게 된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어느새 우리의 인식을 대체한 것이다.

9.11 테러 직후 부시가 미국이 공격을 받은 것은 적들이 미국의 부와 자유와 이상을 시기하기 때문이라는 연설을 했을 때, 나는 미국인들이 정말 저 말을 믿을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이 그 말을 믿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저런 집단 최면(?)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그것이 바로 이미지의 힘이다. 이제 사람들은 광고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인식하고, 후보의 이미지를 정치적 선택의 근거로 삼는다.(선거 운동이 후보의 이미지 대결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이미지로 자신을 꾸미고 세계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실제 세계는 신경쓰지 않고 자신들의 환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매트릭스처럼. 하지만 우리를 이미지의 세계에 묶어두는건 기계들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 날카로운 책이 쓰여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40여년 전인 1961년이다. 저자는 이미지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는 당시 미국의 현실을 지적하고 있지만, 지금의 우리 모습을 지적하고 있는 듯한 뜨끔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저자 자신의 시각은 약간 귀족적 혹은 엘리트주의라고 할 정도로 보수적인 것 같지만, 그렇다고 이 책의 분석이 가지는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 무뎌지는 것은 아니다. 책이 전반적으로 너무 길다면 1장만 읽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될 듯 하다.

August 31, 2005

붐 그리고 포스트 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외 지음/송병선 옮김/예문/9500원

제목만 봐서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은 포스트 머시기에 관한 이론서가 아니라 중남미 작가 단편선집이다. 얼마 전에 마누엘 푸익의 "조그만 입술"에 관한 독서일기에서 중남미 문학이 보물 창고 같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바로 보물 창고로 가는 지도라도 발견한 것처럼 덥썩 집어든 책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에 소개된 작가들보다 옮긴이인 송병선씨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실제로 송병선씨는 요즘 출간되는 마르케스나 보르헤스를 비롯한 중남미 작가들의 책을 도맡아 번역하고 있는데, 국내에 중남미 문학을 소개하는 일등공신이 바로 그가 아닐까 싶다. 그가 번역한 책들을 쭉 찾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라틴 문학에 대한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책 말미의 옮긴이의 글은 라틴 소설의 역사에 관한 개괄이라고 할 수 있다. "붐" 세대와 "포스트 붐" 세대의 구분, 라틴 문학의 발전 등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책에 수록된 단편들을 읽는다면 훨씬 이해가 빠를 것이다.(본문을 먼저 읽어서인지, 전체적으로 좀 난해한 느낌이 들었는데 옮긴이의 글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포스트 붐" 소설들이 더 친숙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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