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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05 Archives

June 5, 2005

파문

이명원 지음/새움/16000원

사실, 공적인 영역에서의 논쟁은 엄청나게 피곤한 정신노동이다. 대개의 공적 논쟁에는 인신공격과 논점일탈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마련인데, 이런 함정들을 피해 논쟁의 진전을 이루어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의 저자인 이명원이 수행해내고 있는 역할 - 논쟁을 이끌어내고, 이끌어가는 - 은, 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만으로도 존경을 받을만하다고 생각된다.(강준만 교수 역시 그러하다)

한가지 의문점은, 과연 이 책을 읽는 독자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책의 논의 대상이 되는 창비논쟁이나 이문열 논쟁 등에 대해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아마도 상당수의 독자들은 그 논쟁의 경과와 내용을 자세히 모르고 있으며, 이는 이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물론 어떤 사건의 경과를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정리하는 사람의 주관적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책을 읽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무언가를 얻게 만들고 싶었다면 좀 더 풍부한 자료 제시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지면상 불가피했다면 On-Line으로라도 정리하여 제시가 가능했을 법도 싶다)

Anyway, 거시권력의 틈바구니에 찌들어있는 미시권력의 묵은 때를 벗기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June 14, 2005

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 르귄 지음/최용준 옮김/Gryphon Books/11000원

어떻게 보면 이 책에 실린 상당수의 단편들은 '땅바다(어스시 -_-)' 시리즈나 '헤인' 시리즈의 외전 격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그 방대한 세계에 기대지 않더라도 각각의 단편들은 그 자체로 충만해 보인다. 앞쪽의 단편들에서는 초기작다운 풋풋함도 엿보이지만, 역시나 그녀의 정신세계가 녹록치 않은 깊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르귄은 SF 작가로 분류되지만, 그녀의 작품은 SF를 하나의 상상력의 도구로 차용할 뿐이다. 판타지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에서는 은폐되어 있는 모순을 아주 쉽게 드러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르귄은 이 모순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 개개인과 그를 둘러싼 관계의 문제를 다룬다. 대중문학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SF 소설이지만, 그녀의 소설이 왠만한 순수문학 못지 않은 철학적 깊이를 가지는 이유다.

"파리의 4월"은 약간 성글지만 미소를 짓게 하는 낭만(?)적 상상력으로, "아홉 생명"과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는 관계의 문제에 대한 깊은 고찰으로, 그리고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혁명 전날"은 그녀가 꿈꾸는 무정부주의에 대한 헌사로 기억에 남는다.

June 18, 2005

자거라, 네 슬픔아

신경숙, 구본창 지음/현대문학/10000원

이 책의 기본 컨셉은 구본창 작가의 사진과 신경숙씨의 글이 어우러지게 한다.. 였겠지만, 사실 사진과 글의 거리는 그리 가까워 보이지 않는다. 구본창씨가 이 책을 위해 새로이 작업을 한 것도 아니요, 신경숙씬?글 또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뿐 사진에는 그닥 많은 시선을 주지는 않는다. 어설픈 기획.

어쨌거나, 신경숙씨 많이 착해(?)졌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둥글어진다고 했던가. 예전에 그녀의 글을 읽을 때 스멀스멀 밀려오곤 했던 짜증은 거의 찾을 수가 없었고, 오히려 추억을, 그리고 일상을 때론 즐거이 때론 차분히 관조하는 모습마저 엿보인다. 책의 제목만큼이나, 감정을 도닥일 줄 알게 된 것일까.

ps. 이 책은 꼭 좋은 조명하에서 읽기 바란다. 좋은 사진은 좋은 빛 속에서 그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기 마련.

June 22, 2005

지문 사냥꾼

이적 지음/웅진/10000원

너무나도 아름다운 피리(笛) 솜씨를 가졌던 들판의 신(Pan)은, 못생기고 심술궂고 장난이 심해 그가 나타났다하면 그 지역은 일대 혼란상태(panic)로 빠졌다고 한다. 가수 이적을, 그리고 패닉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쯤에서 입가에 미소를 한번쯤은 머금을지도. 후주 피리笛은 그의 예명 李笛에 대한 썰(?)에 해당하는데, 그의 피리는 노래뿐 아니라 이야기도 능수능란하게 뱉어내는 것 같다.

김영하의 평처럼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우리나라의 문학적 전통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글들"이다. 패닉 2집에 실린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라는 노래를 들어봤다면 "딱 그 분위기야"라는 말로 쉽게 전달이 되는데... 팀 버튼의 굴소년 이야기보다는 좀 더 온건하지만 비슷한 코드를 공유하는 것 같다.

"지문 사냥꾼"이 "그 어릿광대.."의 가사와 가장 가까웠던 것 같고,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든 이야기는 "제불찰 씨 이야기". 착한 이야기를 선호하지만 않는다면 하루 저녁 가벼운 독서로 읽어내릴만 하다. 그로테스크한 그림들도 나름대로 매력!

June 26, 2005

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최용만 옮김/푸른숲/8000원

1. 간혹 중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사람들 말하는게 전반적으로 동작이 크고 과장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소설을 보니 그게 반드시 드라마나 영화라서 그랬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대사를 읽으며 머리 속으로 장면을 그려 보는 것도 재밌는 독서 방법 중 하나가 되겠다;;

2. 사진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인물 사진에서 많이들 선호하는 기법으로 주피사체인 인물만 선명하게 나오고 배경은 흐릿하게 나오는 아웃 오브 포커스(out of focus) 기법이 있다. 이 기법은 인물을 강하게 부각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배경을 읽는 즐거움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근래 한국소설들이 대개 이렇다. 인물은 있지만 시대로부터는 애써 시선을 돌리는.. 반면, 심도가 깊은 사진은 배경이 주는 즐거움이 크지만, 자칫 인물이 묻혀서 잘 보이지 않을 수가 있다. 하지만 적당한 심도와 배치가 이루어진다면 훨씬 풍부한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관건은 이 균형을 어떻게 잘 맞추느냐 하는 것. 허삼관 매혈기는 그럭저럭 not bad.

3. 결국 위화는 휴머니스트다. 사람이 소중하고, 인간의 삶에 존중을 보낼 줄 아는 자세. 하지만, 탈이념의 시대에 유일하게 욕 안먹는 "이즘"인 덕에 너무 흔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는 없다.

4. 이 책의 최악의 부분은 책 말미의 해설. 글 쓴 사람에겐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솔직히 이딴 해설은 없느니만 못하다. 스토리 요약에 동음이의어로 별 의미도 없어뵈는 말장난이나 하고.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로 억지로 쓴 독후감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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