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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04 Archives

December 6, 2004

살인자의 건강법

아멜리 노통 지음/김민정 옮김/문학세계사/8200원

아멜리 노통이 25세에 발표한 그녀의 첫 소설이자, 그녀의 이름을 프랑스 문단에 널리 알린 계기가 된 센세이셔널한 소설이다. 이후 그녀의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시간의 옷", "적의 화장법" 이 대표적이다), 정신없이 치고 받는 대화형 서술이 첫 소설에서부터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번역의 순서가 작가의 필모그래피와는 전혀 따로 움직이는 출판 시스템 덕에 어느 정도 훈련이 된 상태로 글을 읽을 수 있어 충격이 덜했던 것 같다.(다행인가?)

뭐, 그녀의 다른 책들을 대부분 섭렵한 후에 읽어서인지 몰라도, 그녀의 악취미(이 쯤 되니 발랄하게까지 느껴진다)의 원류가 이 책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오후 네시"의 불청객, "로베르 인명사전"의 급작스런 결말,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에서 산산조각 내버린 유년의 환상...

어쨌든, 독서법에 대한 그들의 대화는 인상적이다. 책을 읽고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건 책을 읽지 않은 것이라는데... 워낙 극단적 단정이라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는 힘들지만, 방어막 뒤에 꼭꼭 숨어 책의 내용이 내면으로 접근하는 것을 원천봉쇄한 독서가 겉핧기에 그치기 쉽다는데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변화의 가능성, 즉 반성의 가능성을 부정한 이에게 그 무슨 교양이 필요하겠는가. 그 쯤 되면 교양은 그저 허위일 뿐이다.

이런, 프레텍스타를 닮아가고 있는건가.

December 20, 2004

티나 모도티

마거릿 훅스 지음/해냄/27000원

혁명의 시대가 있었다. 혁명가들은 이상의 실현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세계를 위해 싸웠다. 볼셰비키 혁명은 그들에게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고, 스페인 내전은 위대한 국제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비록 소비에트는 타락했고 스페인은 파시스트 프랑코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개인의 부귀영화가 아닌 이상을 위해 헌신한 혁명가들의 삶은 여전히 그 가치를 잃지 않는다.

티나 모도티. 기존의 남성중심적 인물사 관점에서 보면, 그녀는 에드워드 웨스턴의 연인이자 모델, 제자였으며, 살해당한 쿠바 혁명가 멜라의 아내였고, 스페인 내전의 "카를로스 사령관"이자 후에 트로츠키 암살을 주도한 비달리의 정치적 동반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그녀가 겪어온 삶의 굴곡을 말해줄 수 있을 지언정, 그녀 자신의 가치를 말해주지 못한다.

그녀는 에드워드 웨스턴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사진작가였으며, 혁명을 위해 투신한 혁명가였고, 스페인 내전의 전장을 누빈 여전사였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정확히 알고, 자신이 하고자 한 일을 불굴의 투지로 밀고나갔던 그녀는, 현대 사진사의 한 면을 장식할 작가였으며, 동시에 혁명의 시대를 당당히 밝힌 투사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온갖 오해와 평가절하 속에 파묻혔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건 그녀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리라.

이 책은 그 잊혀진 이름, 티나 모도티를 기리는 헌사이다.

December 22, 2004

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 지음/문학세계사/8000원

앙테크리스트 - 적그리스도
앙테크리스타 - 적크리스타(?)

자, 이런 말장난이야 어쨌거나 상관없고, 이번에도 아멜리 노통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적"을 등장시킨다.(사실, 이 책에 대한 서평에는 어김없이 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역자의 글이 너무 강하게 이미지를 규정해버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 적의 행위가 그다지 낯선 것만은 아니어서 당혹스럽지는 않았다. 덕분에 이번엔 책을 읽으면서 "적"보다는 적과 대면한 주인공의 변화에 고스란히 신경을 집중할 수 있었다.

싸우면서 닮는다는 말도 있지만, 가장 좋은건 아무래도 변증법적 발전이 아닐까. 발전은 모순에 직면했을 때 추동되는 것이니까. 단순히 내 앞의 적(크리스타)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반(앙테크리스타)이 아니라, 그 적을 끌어안아 입맞추는 기개가 멋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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