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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04 Archives

November 3, 2004

빼앗긴 자들

어슐러 K. 르귄 지음/이수현 옮김/황금가지/12000원

우라스와 아나레스.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이 두 쌍둥이 별은 각자 자신만의 사회 체제를 유지한채 마주하고 있다. 150년 전 우라스의 아나키스트들(소설 속에서는 오도니안이라 불린다)이 이주하여 아나키즘 사회를 건설한 아나레스는,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자신들의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힘겹게 싸우고 있는 곳이다. 반면 우라스는 풍족한 자연환경을 현명하게 유지하며 자연과 조화된 발전을 이루지만, 사회 자체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제3세계에 대한 억압을 통해 유지되는 사회이다. 이 두 별은 서로를 철저하게 무시하며 단절된 채 자신들만의 사회를 발전시켜 나간다. 소설이 아나레스의 우주항을 둘러싼 "벽"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 소설의 핵심 주제가 이 벽으로 상징되는 "단절"임을 잘 보여준다.

쉐벡이 우라스로 간 것은 바로 이 단절의 벽을 허물고자 하는 시도였다. 아나레스와 우라스를 시점을 달리하여 교차하여 보여주는 구성은 양쪽 사회를 모두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비록 작가가 아나레스에서 희망을 발견하긴 하지만, 우리는 양쪽 세계 모두가 불완전하며 결함을 가진 체제임을 알 수 있다. 아나레스에서는 알게 모르게 싹트는 관료주의의 위험이, 우라스에는 가진 자가 빼앗긴 자들을 짖밟고 올라서는 야만이. 아나레스의 희망은 그 결함이 깨어지지 않을 정도로 공고해지지 않았다는 이유에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불완전한 두 세계는 서로를 거울로 삼아 스스로를 반추해 볼 때 비로서 발전할 수 있었다. 단절은 그 반성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할 뿐이었다.

소비에트가 붕괴했을 때, 공산주의의 몰락이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증명한 것이라는 유치한 논리비약이 횡행하고 있을 때,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슬퍼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결코 소비에트 체제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다른 세계"의 존재가 우리 사회를 풍족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비에트의 몰락으로 자본주의의 야만성이 브레이크를 잃을 것이라는 그들의 슬픈 예감은 오늘날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아직 분단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남과 북은 마음의 빗장을 굳게 닫은채 서로를 괴물이라 헐뜯고 있다. 이런 사회, 국가보안법 하나 없애기도 쉽지 않은 이 사회에서, 북을 우리를 비출 수 있는 거울로 인정하자는 것은 아직 힘든 요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절은 자기 안의 모순만을 키워나갈 뿐이다. 너무 늦기 전에, 남과 북이 서로에게 눈감지 않고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부족함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배우기를 희망해본다.

November 10, 2004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황정하,손명희 옮김/바다출판사/12800원

저자는 전직 FBI 심리분석관으로 범죄자의 유형을 분류하는 프로파일링 기법 전문가이다. 미국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연쇄살인 사건의 형태와 범인 심리를 분석함으로써, 연쇄살인이 발생하였을 때 사건의 형태에 기반하여 추적할 용의자의 범위를 줄이는 것이 FBI에서 이 사람이 한 주요 업무였다.

91년에 씌여진 책이 지금에 와서 출판된 이유는 분명 유영철 사건 때문이리라. 출판사의 발빠른 상술이 얄밉기도 하지만, 체계화된 범죄 수사 기법이 거의 없다시피한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부러운 내용이 담긴 것은 분명하다. 잔혹한 범죄 묘사는 선정적이라는 비판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런 사건들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전문가가 체계적으로 육성될 수 있는 시스템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한국 경찰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하지만, 일반 독자인 나로서는 별 도움은 안되는 책이다. 얻은 성과라면 스릴러 영화에서 왜 범인은 대개 성도착증 환자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점 정도?

사실 저자는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용담 얘기하듯 자화자찬하며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도 좀 거슬리고, 무엇보다도 세상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양분하는 듯한 태도는 범죄수사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인간에 대한 옳은 태도는 아닌 듯 싶다. 가정과 사회의 관심이 연쇄살인범들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해결책으로는 연쇄살인범을 빨리 잡을 수 있는 시스템만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경찰 관료다운 발상인 것 같다. 사회학자가 같은 주제를 다뤘다면 보다 인간적인 접근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November 23, 2004

현대 사진을 보는 눈

한정식 지음/눈빛/15000원

철학이라면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그 중에서도 변증법하면 시대에 적응 못하는 "빨갱이"들이나 하는 소리로 치부되곤 하는 세상이지만, 역사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데 있어 변증법적 시각만큼 날카로운 이론은 아직 접해보지 못한 것 같다. 현재는 과거의 긍정이자 부정이라는 사실은 "역사"를 지닌 모든 분야에서 발견된다. 예술, 사진도 예외는 아니다. 그것이 바로 현대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 근대 사진, 19세기 사진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 사진이라는 것을 몇가지 특징으로 규정지으려는 시도는 헛된 노력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흐름을 이해하는 것. 사진이라는 매체가 그 탄생으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왔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과거에 대한 이해 없이 오늘날의 사진만을 바라보며 그 경향을 따르려 한다면, 당신은 흉내내기에 그칠 뿐일 것이다. 정반합의 변증법에서 합은 정의 부정이 아니다. 합은 정과 반을 모두 내면화하여 질적으로 전화해나간 결과물이다. 즉 정을 과거의 것, 뒤떨어진 것으로 타자화 한다면, 그것은 반에 그칠 뿐 합으로 발전해 나가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현대 사진에 대한 전반적인 개괄을 통해, 현대 사진이 어떻게 근대를 부정하며,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를 개괄한다. 이 책을 읽고 갑자기 현대 사진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지만, 적어도 어떤 자세로 접근을 시작해야 할 지는 배울 수 있다. 국내 서적인만큼 어설픈 번역 등과 같은 문제로 독해가 방해받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동성애를 에이즈와 연관시키며 타자화하는 저자의 관점은, 현대 사진을 바라볼 때 개방적 시각을 유지하는 논조와 엇갈려 계속 신경에 거슬린다.

November 26, 2004

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노옥재 옮김/황금가지/8000원

대학 때 빌려읽었던 책을 얼마 전에 구입해서 다시 읽었다. 그 때의 낯설음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정신 바짝 차리고 읽지 않으면 헷갈리는 책이다 -_-;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으면 거울을 봐야 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비록 좌우가 바뀌었지만, 그런 거울이라도 봐야 나는 내 머리가 삐쳤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거울 속 이미지를 보며 "이건 좌우가 바뀌었으니 비현실적이야!!"라고 외치는 것은 얼마나 우매한 짓인가.

그래서, 이갈리아는 인상적이다. 이 책을 읽으며, 모권제 사회라는 가정의 논리적 헛점을 찾으려 들지 말지어다. 중요한 것은 이갈리아가 우리 사회의 거울이라는 사실이다. 남성들에겐 당연한 것이 여성들에겐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간단한 사실조차, 이렇게 거울에 비춰보고서야 비로서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나는 결국 남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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