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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존 쿳시 지음/왕은철 옮김/들녘/10000원

야만인은 오지 않는다. 아니, 야만인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제국은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건 단지 제국이 야만인을 "필요로 했다"라는 사실만을 웅변해줄 뿐이다. 제국은 점점 흉포해진다. 문명의 오만은 감춰두었던 야만성을 자신도 모르게 노출시킬 뿐이다. 결국 야만인은 문명 자신이었다.

오지 않는 야만인을 기다리며, 치안판사는 제국의 야만성에 절망한다. 하지만, 야만인들이 달콤한 잼 맛을 본다면 문명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그는, 그 역시 문명이라는 자기 기만 속에 살고 있음을 확인할 뿐이다. 매파든 비둘기파든, 야만과 문명이라는 폭력적 이분법에 물들어 있다.

오늘도 제국은 야만을 물리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라며 그들의 머리위로 폭탄을 쏟아붇는 이 제국은,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철저한 홀로코스트(인디언 학살)를 자행했던 그들이다. 그들에게 맞서 가장 용감히 싸웠던 한 야만인 부족의 이름은 지금 이라크에 폭탄을 쏟아붇는 전투헬기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오만, 이 위선, 이 뻔뻔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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