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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04 Archives

October 21, 2004

세계 사진사

장-클로드 르마니, 앙드레 루이에 지음/정진국 옮김/까치/25000원

사진사를 기술하는 관점의 변화는 곧 사진의 위상의 변화를 의미한다. 초기의 사진사는 기술(技術)사의 형식을 따른다. 카메라 옵스큐라에서부터 시작하여 감광재료의 발명, 감광과 현상 시간의 단축 등 새로운 기술의 발명이 곧 사진의 역사를 이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사는 점차 그 중요성을 잃고 사진사의 핵심 논점은 사진이 예술의 영역에 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으로 옮겨간다.(물론 이 시기에 기술적 발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이미 확립된 기술적 원칙의 틀을 따르기 때문에 그것은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되지 못할 뿐이다) 사진은 재현인가 예술인가.

시간은 다시 흘러, 이제 사진이 예술인가를 묻는 질문은 사라진다. 이제 사진史는 당대의 예술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더 이상 사진이 예술인지 여부는 논쟁거리가 되지 못한다. 장르의 구분을 넘나드는 현대예술에서 사진은 작가의 영감을 구체화하는 중요한 소재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 책의 문제는, 별다른 설명없이 쉴새없이 언급되는 수많은 작가들의 이름 속에서 길을 잃기 쉽상이라는 것. 전부는 아니더라도 주요한 작가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이 덧붙여졌더라면 이해가 더 쉽지 않았을까 싶다. 아울러 독자가 문화이론에 대한 기본지식(아방가르드, 다다이즘 등)이 있다면 이해가 더 빠를 것이다.

October 27, 2004

야만인을 기다리며

존 쿳시 지음/왕은철 옮김/들녘/10000원

야만인은 오지 않는다. 아니, 야만인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제국은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건 단지 제국이 야만인을 "필요로 했다"라는 사실만을 웅변해줄 뿐이다. 제국은 점점 흉포해진다. 문명의 오만은 감춰두었던 야만성을 자신도 모르게 노출시킬 뿐이다. 결국 야만인은 문명 자신이었다.

오지 않는 야만인을 기다리며, 치안판사는 제국의 야만성에 절망한다. 하지만, 야만인들이 달콤한 잼 맛을 본다면 문명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그는, 그 역시 문명이라는 자기 기만 속에 살고 있음을 확인할 뿐이다. 매파든 비둘기파든, 야만과 문명이라는 폭력적 이분법에 물들어 있다.

오늘도 제국은 야만을 물리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라며 그들의 머리위로 폭탄을 쏟아붇는 이 제국은,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철저한 홀로코스트(인디언 학살)를 자행했던 그들이다. 그들에게 맞서 가장 용감히 싸웠던 한 야만인 부족의 이름은 지금 이라크에 폭탄을 쏟아붇는 전투헬기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오만, 이 위선, 이 뻔뻔스러움.

October 29, 2004

황홀한 쿠바

사석원 지음/청림출판/12000원

쿠바. 나는 쿠바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체 게바라, 시가,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하바나... 따지고보면 지극히 단편적인 인상들만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쿠바는 내게 설레임을 느끼게 한다. 언젠가는 꼭, 그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이 쿠바 여행기를 손에 들었다.

저자인 사석원씨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처음 가 본 낯선 장소를 제대로 담아오기엔 여행자의 그릇이 너무 작았다는 생각이 든다.(선입견이겠지만, 책머리에 초등학교 5학년짜리 딸을 영어 배우라고 캐나다로 조기유학 보냈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예측한 일이었다.) 그가 풀어내는 감상들은 대개 피상적이거나 자아도취적 낭만들로 점철되어 있을 뿐, 어느 하나 쿠바의 내음을 독자인 내게 전달해주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하바나의 구석구석을 짜임새있게 보여주지도 못하는 것 같다. 깊이있는 사색을 담은 여행 에세이도 못되고, 그렇다고 론리 플래닛처럼 자세한 정보를 주는 글도 못되고... 그 어정쩡함이 실망스러울 뿐이다.

어쨌거나, 그가 담아온 200여컷의 사진들은 그나마 쿠바에 대한 나의 갈증을 조금은 풀어주었다. 빔 밴더스의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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